미 핵자산, 한반도 임무 상시 배정…핵무장론 잠재울까

박민희 기자 2024. 7. 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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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핵 지침’ 성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의 핵 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해 북한 핵에 대응하는 ‘일체형 확장억제’를 담은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승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지침에는 미국 핵자산에 전시와 평시 모두 한반도 임무를 배정할 것을 확약하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 복원에 준하는 새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의 안보 불안이 커지고 일각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한·미의 움직임이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공동대표인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는 지난 6월 마련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 문서에 이날 서명했고,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지침을 승인했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 따라 7월 한·미 핵협의그룹이 발족한 지 1년 만이다.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의 토대가 완성됐다”고 말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미국 역량으로 뒷받침된다”고 말했다. ‘일체형’이란 핵·재래식의 통합이라는 의미로,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첨단·재래식 전력이 통합되어 북핵을 억제하고 북핵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기존의 억제가 미국이 결정하고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한반도 핵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조직, 우리의 인력, 우리의 자산이 미국과 함께하는 확장억제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미 동맹이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수십쪽 분량의 ‘한-미 한반도 핵작전 지침’에 북핵 위협 억제와 유사시 대응을 위해 미국 핵자산에 한반도 임무가 전시와 평시에 모두 배정될 것임을 확약하는 내용이 처음으로 명시됐다고 강조했다. 김태효 차장은 “미국이 동맹국 한국에 제공하는 특별한 공약”이라며 “우리 군이 미군과 한반도 핵 운용에 관해 정보공유·협의·기획·연습·훈련·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실전적 핵 대응 능력과 태세를 구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확장억제 제공’이라는 큰 틀의 약속 아래 전략폭격기와 핵추진항공모함 등 전략자산 전개를 미국 쪽이 결정하고 임박해서 한국에 통보해주는 식이었지만, 앞으로는 특정 한반도 상황에서 미국의 어떤 핵자산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을 미리 설정해두고 해당 자산 전개를 한·미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간다는 것이 ‘한반도 임무 전·평시 배정’의 큰 줄기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미국 전략자산 전개의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고, 미 전략자산과 연계해 한·미 핵·재래식 통합(CNI) 훈련을 시행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기존 미국 확장억제 공약이 북핵 ‘억제’에 중점을 둔 선언적 수준이었다면, 이번 지침을 통해 최초로 북핵 ‘대응’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이번 한미 정상 공동선언과 ‘핵 작전 지침’으로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이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전 오사카 총영사)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워싱턴선언으로 핵협의그룹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한국 핵무장론을 어느 정도 잠재웠다고 판단했는데, 최근 북러 조약으로 다시 핵무장론이 높아지니까 한미 연합사가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공동 작전을 하되 어떤 상황이 되면 미국이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구체적 내용을 담은 지침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핵 무장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이 나토식 핵공유 전단계까지 가는 노력은 한 것이지만,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오면 이런 지침의 의미는 약화되거나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전직 정보 당국자 출신의 외교 전문가는 “전술핵이 배치돼 있는 국가의 재래식 무기에 전술핵을 탑재해서 보복한다는 것이 핵 공유의 개념인데, 전술핵이 한반도에 배치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과 어떻게 통합 운영한다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하다”면서 “미국은 확장 억제는 확고하니 한국은 핵 무장 생각하지 말라고 다시 단속한 셈이지만,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미국이 힘의 투사를 줄이고 동맹의 비용 증가만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런 내용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워싱턴/이승준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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