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공격 대응 실패’ 첫 보고서… 여론은 “네타냐후도 조사받으라”
“사전 대비 못하고 군 병력 투입도 지연”
일부 의혹엔 면죄부… “의문 여전” 비판도
국방장관 “총리 조사하라” 네타냐후 직격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군의 작전·정보 실패 탓이라는 취지의 첫 번째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책임이 군에 있음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당장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에게 ‘안보 실패’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다.
“군, 작전 않고 수시간 대기… 주민들이 하마스와 싸워”
11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하마스 공격 당일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한 군 조사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음 달 말 전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10·7 공격’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베에리 지역에만 한정한 내용을 우선 공개한 것이다.
보고서는 베에리 주민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하마스 무선통신 내역, 항공 촬영 영상, 생존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일련의 과정에서 군의 실패가 드러났다고 시인했다. 애초에 하마스의 대규모 동시다발 공격에 대응한 시나리오를 짜놓지 못했고, 공격 이후 대응도 안일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격은 오전 6시 30분쯤 시작됐는데 오후까지 제대로 된 지휘가 없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군 병력이 베에리에 진입하지 않고 입구에서 수시간을 명령 대기 상태로 허비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사이 무기를 든 베에리 주민들이 소수의 보안요원들과 함께 하마스 대원 수백 명에 맞서 7시간가량 싸웠다고 한다. 그날 이곳에서는 민간인 100여 명이 죽고 32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TV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군이 주민 보호 임무에 실패한 것”이라면서도 “(조사 결과 발표가) 군과 국민 간 신뢰를 회복하고 재건하는 긴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질 사망한 ‘탱크 포격’에는 면죄부
다만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미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오히려 당시 베에리 작전을 총괄했던 바라크 히람 준장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도 담겼다. 한 건물 안에서 자국민 14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던 하마스 대원들을 향해 탱크 포격 명령을 내린 것이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결단”이었다고 밝힌 대목이다. 당시 인질 대부분이 사망해 군이 자국민 생명을 경시한 채 진압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인질들이 포격이 아닌 하마스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베에리 주민들은 성명을 내고 "군의 책임 인정은 환영하나 이번 조사가 '중요한 의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 주민은 AP통신에 “보고서에 대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국방장관 “총리까지 조사할 국가 위원회 필요”… 네타냐후 저격
향후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조사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안보 실패 원인을 규명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 승리가 우선이라며 국가 차원의 조사를 거부해 왔다. 이 때문에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조사에 참여한 인물 중에는 베에리 전투 당시 히람 준장의 참모로 근무했던 인물도 포함돼 있다고 꼬집었다.
정권 내에서도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치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이날 군 신임 장교 임관식에서 “국가 조사위원회를 꾸려 ‘10·7 사건’을 초래한 우리 모두를 조사해야 한다”며 “국방장관인 나를 포함해 총리, 참모총장, 신베트(정보기관) 수장, 군과 정부 산하 모든 기관이 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갈란트 장관은 내홍을 빚다 끝내 해체된 전시내각 3인방 중 한 명이었다.
이스라엘, 가자 북부 공세 고삐… “피란도 포기한 주민들”
한편 휴전 협상과 별개로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 공세는 지속되고 있다. 전날 이스라엘은 작년 10월 이후 9개월 만에 북부 가자시티 전역에 대피령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전쟁 초기와 같은 피란 행렬은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자지구 어느 곳이든 사실상 안전지대가 없다는 공포 탓이다. NYT는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가자 주민들은 또한 대피 경로가 안전하다는 이스라엘의 보장도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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