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합억제’ 전략에 적극 동참한 윤 대통령…한반도 안보 불안정 가중 우려
미국의 ‘통합억제’ 전략에 한발 더 깊이
한반도 정세 악화 및 중국 관계 불편 우려
“위험 분산, 이익 극대화 전략 고민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 파트너국 정상으로 참석해 북·러 군사협력 비판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가 연계돼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나토와의 협력 강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구체적 방안에도 합의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통합억제’ 전략에 한층 더 깊이 발을 들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통합억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겨냥한 미국의 핵심 국방전략이다. 대통령실은 북·러 군사협력에 대응하는 공조 체계를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한국이 유럽 안보에 깊이 관여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한·중 관계 관리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여러 양자 및 다자 회담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자리마다 북·러의 군사·경제협력을 규탄하면서 나토와의 협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북한의 군사협력은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동시에 위협한다”라며 “유럽의 안보와 아시아의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번에 초청받은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IP4)과 나토의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22년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 참석했을 때부터 나토와의 협력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그해에는 ‘가치 공유’를 주된 이유로 들었고, 2022년에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유럽도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엔 북·러의 밀착을 협력의 주된 논리로 강조했다.
한국은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사용되는 북한산 무기와 관련해 나토와 정보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또 20여개 나토 회원국 등이 참가하는 국제사이버훈련(APEX)도 오는 9월 서울에서 개최한다. 지난해에는 나토와 11개 분야 협력을 제도화하는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를 체결한 바 있다. 한국 등 IP4 차원에서도 나토와 협력 수위를 끌어올리기로 했다. IP4는 나토와 우크라이나 지원, 사이버, 허위정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점협력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양측 간 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해양안보, 사이버안보, 비확산, 대테러 분야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미국이 적극 추진하는 ‘통합억제’ 전략에 더 적극 동참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통합억제는 미국의 핵심 국방전략으로 2022년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와 국방전략서(NSD) 등에 실려 있다. 미국이 군사력과 비군사력(경제제재·외교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동시에 동맹·파트너국의 역량을 집결해 억제력을 행사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전략에는 미국이 중국, 러시아 등을 견제하는데 우방국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가 실려있다는 해석이 많다.
통합억제를 위해 미국은 ‘격자형’ 안보 구조 구축을 추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에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주요 동맹국들과 양자관계를 맺는 ‘중심축(미국)과 바큇살(동맹국)’ 구조를 추구했다. 격자형 구조는 3~4개 동맹·파트너국을 묶은 소규모 협의체를 여러 개 꾸리고, 나아가 협의체끼리도 유기적으로 연결해 보다 촘촘한 포위방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 합의로 대표되는 한·미·일 3각 협력, 오커스(미국·영국·호주 군사동맹),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등이 그 예다. 오커스는 핵심 기술을 공동개발하는 ‘필러2’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IP4와 미국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향후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도 통합억제 가동 전략과 맥이 닿은 것으로 풀이된다. IP4가 제도화되면 미국이 구상하는 역내 소다자 협의체가 될 수 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0일 “한·미·일 3각 협력뿐 아니라 다른 외교적 관여에 한국을 참여시킬 기회를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앞서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에서 미국의 동맹국을 통합하고 강화된 협력 수단을 개발하고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나토와 인·태 지역 동맹국을 ‘연맹’, 즉 네트워크로 엮어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라며 “미국이 이를 통해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대응하겠다는 방향성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런 정책에 동조할 때 발생할 손해가 더 클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유럽 안보에 관여하면서 오히려 북·중·러 등과의 대치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 “단기적으로 보면 북한에 어떠한 메시지를 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긴장과 위협을 더 고착화할 수 있다”라며 “동북아에서 전쟁의 연루 가능성을 높이는 등 위기가 고조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잃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미국이 동맹국 등에 안보비용을 전가하는 등 우방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는 지적도 그간 제기돼 왔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다시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나토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정치적·물질적으로 돕는 “결정적인 조력자”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한·중은 지난 5월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외교안보대화를 재개하는 등 고위급 소통·교류를 재개한 상태다. 다만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지 않은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축소되면서 외교적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많은 국가들이 위험은 분산시키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며 “한국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는 있으나, 다른 한 쪽에서는 동북아의 안보 딜레마를 낮출 수 있도록 북·중·러와 대화 노력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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