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 ‘고삐 풀린’ 비방전 국힘서 제재…당원도 “비전 보여달라”
대구 간 네 후보, ‘박정희·박근혜’ 언급 민심 호소
“당과 정책, 국민을 위해 투쟁해야지 서로 인격모독하면서 싸우면 되겠어요?”
12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만난 국민의힘 당원 김시대(80)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당원들은 분열이 아닌데, 당대표가 되겠다고 서로 비방하는 건 옳지 않다”며 “(비방전은) 당과 국가를 위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당원 이광후(72)씨도 “‘내가 대표가 됐을 때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비전 제시를 했으면 싶은데 그게 없다”며 “상대를 비방해서 무너뜨리고 내가 일어선들 제대로 되겠나. 전당대회는 당의 축제인 만큼 축제로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당대표 후보들의 비방전으로 얼룩지자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 지도부뿐 아니라 일반 당원 사이에서도 “전당대회 이후에 당이 화합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원희룡·한동훈 후보가 전날 방송토론회에서 공정경쟁 의무와 비방·흑색선전·인신공격 금지 등을 규정한 당헌·당규 조항들을 위반했다며 ‘주의 및 시정명령’ 제재를 했다고 밝혔다. 두 후보는 지난 11일 엠비엔(MBN) 토론회에서 서로에게 색깔론 등을 제기하며 ‘막말’에 가까운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원 후보는 한 후보의 이모부에 대해 “민청학련 주동자, 통일혁명당 신영복 추모사와 기념사에 앞장선 분”이라며 한 후보를 공격했고, 한 후보는 “원 후보야말로 극렬 운동권 출신 아닌가”라며 맞받았다. 같은 날 두 사람은 에스엔에스(SNS)에서 서로를 향해 “진짜 구태 정치는 ‘한동훈식 거짓말 정치’”(원 후보), “노상방뇨하듯이 오물을 뿌리고 도망가는 거짓 마타도어”(한 후보)라며 비난한 바 있다.
이에 한 후보는 12일 대구아트파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에서 “제가 원 후보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한 게 단 하나라도 있나.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으면 그냥 다 경고하냐”며 반발했다. 원 후보도 기자들에게 “한 후보가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을 들이미는데, 아직도 검사인 줄 아는 것 같다”고 응수했다.
상호 비방이 격화되자 당 지도부도 나섰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요즘 국민께 제일 걱정을 많이 끼쳐드리고 있는 것이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의힘 전당대회라는 말이 들려온다. 선거보다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각 후보자와 그 캠프의 화력은 거대 야당의 무도한 폭거와 싸우는 데 쏟아내야 한다”며 ‘네거티브 자제’를 촉구했다.
한편 이날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네명의 당대표 후보는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보수 민심에 호소했다. 국민의힘 전체 당원의 20.6%가 대구·경북에 있다. 윤상현 후보는 “무에서 유를 만든 진취적·혁신적인 박정희 정신으로 수도권으로 진격하자”고 했고, 한 후보는 “총선 기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 뵀는데 너무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한동훈 후보에 대한 공격도 이어졌다. 원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나. 누군가는 인생에 화양연화였는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지옥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후보를 겨눠 “바보같이 아직도 채 상병 특검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채 상병 특검이 뭐겠나. 뭐라도 걸어서 대통령 탄핵해보겠다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경원 후보는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을 두고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이라 말한 한 후보를 향해 “자기 살자고 당무 개입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루됐던) 국정농단이니 이런 금기어 함부로 쓰는 분 큰일 난다”고 말했다. 나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도 “한동훈 후보는 정말 위험한 후보”라고 적었다. 한 후보는 사전 배포된 연설문에 있던 “원희룡의 정치는 청산해야 할 구태 정치이고, 승리를 위해 넘어서야 할 난관 그 자체” “쌍팔년도식 색깔론과 더러운 인신공격, 한 방에 날려주자” 등의 격한 표현을 실제 연설에서는 쓰지 않았다.
‘보수의 심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답게 연설회장에는 당원 3500명이 몰려 손팻말과 펼침막을 흔들며 경쟁적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행사장에 못 들어간 이들은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사회자가 행사 시작 전 “후보자 연설 도중 현수막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했지만, 지지자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후보가 연설할 때 현수막을 흔들거나 환호성을 질렀다. 세번째 순서였던 한동훈 후보가 연설을 마친 뒤 원 후보가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르자, 한 후보 지지자들이 단체로 자리를 뜨는 신경전도 벌어졌다.
대구/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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