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100km 입자가속기 구축계획,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제네바= 문세영 기자 2024. 7.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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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가장 왼쪽)와 제이슨 리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가장 오른쪽)가 CMS 검출기 제작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제네바=문세영 기자.

중국이 초대형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구축할 예정인 차세대 입자가속기보다 빠르게 저렴한 비용으로 더 크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중국의 초대형 입자가속기 건설 가능성에 대한 CERN 연구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중국은 2027년 100km 길이의 입자가속기 ‘원형전자양전자충돌기(CEPC)’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7일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종합기술설계보고서’를 통해 2027년부터 10년간 CEPC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가장 큰 입자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 CERN 본부에 위치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로 둘레가 27km에 달한다. 입자가속기는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충돌시킨 뒤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거나 원시 우주를 재현하는 등 물리학 과제를 해결하는 장치다. 

CERN은 2040년대 중반 차세대 입자가속기인 91km 둘레의 '미래원형가속기(FCC)'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FCC는 LHC보다 길이가 3배 이상 길 뿐 아니라 최대 출력도 7배 높아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은 입자가속기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CERN보다 더 빨리 더 크게 더 비용 효율적으로 초대형 입자가속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CERN의 FCC는 2단계를 거쳐 완성될 예정인데 첫 단계인 'FCC-ee'에서만 170억 달러(약23조원)가 들 예정인 반면, 중국은 CEPC 구축 비용으로 52억 달러(약7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CERN에서 만난 이매뉴엘 체스멜리스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는 현재 FCC 설계를 추진하고 있고 2027년 말이나 2028년 초에 사업 승인을 받아 2030년대 초부터는 FCC 건설이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대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입자가속기가 있는 CERN의 연구자답게 중국 정부의 발표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CERN 연구자들이 클린룸에서 업그레드될 검출기에 들어갈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제네바=문세영 기자.

CERN 외의 기관에서 초대형 입자가속기가 만들어진다는 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 고정환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사이언스 커뮤니티에서 동일한 역할을 하는 장비가 서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건 강점이 될 수 있다”며 “CERN에서 나온 물리적인 결과를 상호 검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로, CERN 내에서는 ATLAS 검출기와 CMS 검출기가 서로 검증하는 역할을 하지만 대륙을 건너 다른 나라에 있는 가속기를 통해 같은 결과 또는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다면 과학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100k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가속기가 비슷한 시기에 2개나 건설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가속기 2개가 만들어지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현재 LHC 가속기 연구에 중국 물리학자 및 기술자들을 포함한 전 세계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음 FCC 건설에도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자와 기술자 수는 한정돼 있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가속기를 건설하게 되면 인력이 분산돼야 한다”며 “둘 중 하나는 건설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교수도 “CERN의 LHC만 해도 한 나라가 만들 수 있는 규모가 아닌데 차세대 가속기는 훨씬 규모가 크다”며 “CERN은 가속기를 70년간 만들고 운영해온 경험이 있고 또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기술, 인력, 재원 확보가 유리해 상대적으로 가속기 건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중국도 가속기를 가지고 있고 중요한 결과를 내왔지만 기술 면에서는 후발주자”라며 “FCC가 목표로 두고 있는 100테라전자볼트(TeV) 충돌 에너지를 내는 가속기는 인류가 아직 만들어본 적이 없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기술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물리학자 입장에서는 CERN과 중국 양쪽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초대형 입자가속기가 건설되길 바란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이슨 리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국이 실제로 빠른 시일 내에 CEPC를 만들 수 있다면 물리학자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라며 “은퇴 전에 100TeV 출력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으니 욕심이 날 수 있다. 중국은 한국과 거리가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도 한국 물리학자들의 높은 참여도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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