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조, 매니악 독자… 서울국제도서전 '변화의 도가니'
2024 서울국제도서전 ‘명암’
전년 대비 15% 늘어난 방문객
출판사에 들어간 정부지원 예산
작가 권리 보호 미흡하단 지적도
달라진 운영에 고민 깊어진 출판사
고정화한 독자층이 불러온 고민들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은 블랙리스트 가담자인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는 문인과 예술가를 물리적으로 막아서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올해엔 출판계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작가 노동자 선언이 있었고 15만명이라는 기록적인 방문객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국내 최대 도서 축제다. 1954년 전국도서전시회로 출발해 1995년 국제도서전으로 규모를 키우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다만, 올해 서울국제도서전(6월 26~30일)은 이보다 훨씬 더 큰 함의를 띤 채 열렸다.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가담자였던 오정희 소설가를 홍보대사로 선정해 논란을 빚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해 의견서를 전달하러 왔던 문인과 예술가들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서울국제도서전 폐막 이후엔 불편한 문제도 터졌다. 그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대출협)가 도서전 수익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며 윤철호 대출협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등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대출협도 "보조금 관련법률 시행령 7조 8항에 따르면 입장료와 부스 사용료는 수익금이 아니기 때문에 반환할 이유가 없다"며 문체부 공무원을 맞고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국제도서전의 밑단엔 도서·출판·문화계의 민낯이 숨어 있다. 올해엔 어땠을까.
■ 빛 : 흥행 성공 =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은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난 15만명이 참여했다. 주축은 20대에서 40대 사이의 여성으로, 5일간 15만명이 참여했으니 굉장한 열기였다. 여기엔 시사점도 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간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는 2023년 문체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와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독서인구 자체는 줄었지만, 독자의 팬심은 여전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빛 : 정부 지원 =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엔 '변화한 정부 지원책'도 한몫했다. 문체부는 지금까지 서울국제도서전의 보조금을 주최 측인 대출협에 지원해왔다. 올해는 예산 10억원을 대출협이 아닌 문체부 산하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배정했다. 이 예산은 다시 도서전에 참가하는 각 출판사에 300만원씩 직접 지원됐다. 예산을 지원받은 출판사들은 홍보와 판촉물을 제작할 여유를 얻었고, 이는 흥행의 밑거름이 됐다.
■ 그림자 : 작가노동자 선언 = 빛만 가득했던 건 아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이 블랙리스트 가담자의 홍보대사 임명 문제를 항의하면서 시작했다면 이번엔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의 "글쓰기도 노동이다"란 외침으로 출발했다. 작가노조 준비위는 원고료의 현실화, 고료 제시간 입금, 제대로 된 계약서, 불공정한 매절(일종의 바이아웃) 계약 금지 등 출판사와 대중에게 작가의 권리를 요구하며 노동자임을 선포했다.
■ 그림자 : 참가비와 불통 =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는 출판사들이 내야 할 비용이 올랐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독립출판사 대상의 책마을 섹션 참가비는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30% 올라갔다. 참가비는 인상됐지만 독립출판사가 지원받은 게 테이블 1개와 의자 2개가 전부였다는 건 불만을 키웠다.
주최 측의 소통 부재도 지적을 받을 만하다. 서울국제도서전 주최 측은 올해 "2개 이상의 출판사가 하나의 부스를 사용하는 '공동부스' 운영을 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출판사들의 원성을 샀다. 영세 출판사들은 '공동부스' 불가 소식만 접한 뒤 참가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 고민 : 취향군중 =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갈수록 뚜렷해지는 독서 인구의 편향성이 눈에 띄었다. 주요 독자들의 나이와 성별이 굳어진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독서 문화에 쏠림 현상이 강해졌다는 거다. 20대부터 40대 여성이 많았던 덕분에 서울국제도서전은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를 반대로 보면 출판계가 특정 독자와 유행에 목을 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수의 출판사는 경향성 쏠림 문제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지 않았다. 도서출판이 매니악한 취향 독자를 위한 문화로 향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나타난 '도서출판 시장'의 달라진 트렌드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