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가상승률 못미친 최저임금 인상, 이러고도 ‘민생’ 입에 올리나
내년 최저시급이 올해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월급 기준 209만6270원)으로 결정됐다. 인상률 1.7%는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고,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2.6%)에도 못 미쳐 삭감이나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지난해까지 연평균 9.0%를 기록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2022년 5.0%, 2023년 2.5% 등으로 급락했다. 이러고도 윤석열 정부는 민생을 위해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가.
최저임금은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결정한다. 현 정부 들어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노골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고 있다. 이번에도 노동자안(시급 1만120원, 2.6% 인상)과 사용자안(1만30원, 1.7% 인상)이 맞섰지만 다수결로 사용자안이 채택됐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중재안의 근거도 일관성이 결여됐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국민경제생산성 상승률(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취업자증가율)’에 따라 최종 표결안을 도출했지만 이번에는 상한선 근거로 활용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 폭 자체가 축소되고 인상률도 낮아졌다. 정부가 암묵적으로 정한 최저임금 범위에 중재안을 꿰맞추기 위해 사후적으로 논리를 동원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최저임금제도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특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국가가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노동자 생활을 안정시키고 사기를 올려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내수 진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 측은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억누르기 위해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 간의 대립을 부각하는 등 사회적 약자 간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구태를 반복했다. 자영업자 경영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낮은 최저임금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아르바이트생의 노동력을 착취해야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면 옥석 가리기를 거쳐 구조조정되는 것이 맞다. 자영업자 문제는 중장년층 일자리를 늘리고, 임대료나 프랜차이즈 가맹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서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이 배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용자 측은 가사·돌봄 노동이나 음식점업 등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목적은 노동자 차별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은 앞으로 더욱 확장돼야 한다. 헌법 제32조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프리랜서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850만명에 이른다.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의 헌법적 권리를 누리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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