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근진' 벗어던진 클래식 음악감상실에 온 듯 편안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어떤 음악이든 무손실 고음질로 즐길 수 있는 시대지만, 요즘 도심 근교의 '음악감상실'은 대기 줄을 서야 들어갈 정도로 붐빈다.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차분함, 손때 묻은 LP판 특유의 감성, 다른 사람과 신청 곡을 공유하는 우연한 만남까지 갖춘 휴식 공간으로 주목받으면서다.
이렇게 전문적이면서도 편안한 음악 감상이 유행하면서 엄격·근엄·진지함을 벗어던진 '의외의' 클래식 공연이 이목을 끌고 있다. 대형 콘서트홀을 쥐락펴락하는 전문 연주자들도 무대 아래로 내려와 소규모여도 내실은 탄탄한 공연, 전문적이면서도 쉬운 해설을 곁들인 이색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13일 경기 파주에 있는 LP 음악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현악 사중주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을 개최한다. 1930년에 만들어진 대형 빈티지 축음기와 1만여 장의 클래식·재즈 LP판을 갖춘 공간과 클래식 현악 사중주단의 협업이다. 최근 국립심포니 단원들이 클래식을 주제로 대화하는 유튜브 콘텐츠 '어라운드 클래식'도 만들고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기획됐다. 올해 '체코 음악의 해' 100주년의 의미를 담아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일부,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일부를 뽑아 들려준다. 국립심포니 측은 "예술 소비 방식이 다채로워진 새로운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즐거운 첫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작은 공간에서 밀도 높은 공연으로 유명한 더하우스콘서트는 이달 31일까지 매일 '줄라이 페스티벌'을 진행 중이다. 더하우스콘서트는 2002년 작곡가 박창수의 연희동 집에서 시작해 현재는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매주 월요일 열리는 공연. 7월 한 달 동안은 한 작곡가를 주제로 매일 실내악, 성악 등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문지영, 정규빈, 호르니스트 김홍박, 테너 김성호 등 총 204명의 연주자가 함께한다. 단의 차이 없이 연주자와 청중 모두 같은 바닥 위에 있다는 게 이 공연의 묘미다. 아담한 공간 특성상 연주자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고, 연주자의 해설 등 직접 소통이 이뤄지기도 한다.
음악에 해설과 이야기를 곁들여 음악 감상의 문턱을 낮추는 것도 이들 공연의 순기능이다.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 공연은 '난해하다'는 꼬리표가 붙는 현대음악만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인데도 어린이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까지 350석이 꽉 찼다. 보통 2000석 내외인 콘서트홀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그래서인지 이 공간 안엔 어색할 틈도 지루할 틈도 없다. 1시간 남짓한 공연은 지휘자 최수열의 해설, 관객과의 소통, 수준급 연주로 채워졌다. 지난해 2회 공연 후 올해에도 선보인다.
보통 연주 준비가 모두 끝나면 무대 위로 유유히 등장해 객석을 등지고 연주하는 여느 지휘자와 달리, 이날 해설과 지휘를 모두 맡은 최수열은 마이크를 들고 핀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첫 번째 순서인 라헨만 '구에로'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않고 건반 위나 아래를 긁거나 몸통 속 현을 뜯으며 소리를 내는 전위적 작품. 해설 없이 맞닥뜨린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최수열은 유머를 곁들인 설명으로 관객을 새로운 음악 세계로 이끌었다.
또 무대 위엔 진은숙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과 게임 모음곡 연주를 위해 유리잔, 깡통, 포크 등 이색 악기들도 등장했다. 최수열은 "아마 리사이틀홀이 생긴 이래 무대 위에 가장 많은 악기가 놓여 있다"며 "좁은 곳에서 포화 상태로 연주될 때의 '압력'을 관객 여러분께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조용한 관람 매너가 요구되는 여타 클래식 공연과 달리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소통했고, 연주 중에도 객석 조명을 밝게 유지해 "프로그램 북 내용을 읽으면서 보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도 만족감을 표했다. 정후인 씨(33)는 "지휘자 선생님이 어렵지 않게 분위기를 풀어주고 설명도 잘해주셔서 음악에 몰입해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작곡과 전공생 송예권 씨(24)도 "해설이 생각보다도 더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수열의 해설과 연주는 11월 7일 베리오, 굴다 등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찾아온다.
입담 좋은 해설가의 취향을 따라 좋은 곡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극장과 음악감상실의 장점을 결합한 마포아트센터의 '음악공간: 플레이리스트' 공연이다.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월 1회 주제별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음악평론가 임희윤이 약 1시간의 해설을 주도하는데, 음악·역사·영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어 수다 타임처럼 친근하다. 불멸의 음악가를 무대 위로 소환해 관객과 대화하는 것도 이 공연만의 특징. 이어지는 3시간은 해설가가 선곡해온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200석 규모의 소극장 곳곳엔 은은한 조명이 설치돼 안락한 다락방 분위기를 풍기고, '열린 객석'이라 언제든 드나들 수 있다. 책을 읽어도, 잠을 자도 상관없이 말 그대로 음악과 함께하는 공간이다. 9월 25일, 10월 31일, 11월 27일 각각 클래식과 K팝, 앰비언트 뮤직, 보헤미아 등으로 이어진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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