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냐, 여자냐 그것은 문제 아냐 '공주' 햄릿 만나다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7. 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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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어도 고전이 계속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관객을 맞은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각색 정진새·연출 부새롬)은 후자에 해당된다.

작품 내내 권력을 좇는 햄릿을 결국 관객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원작에서 남자였던 햄릿을 여자로, 여자였던 오필리어를 남자로 각색한 '햄릿'은 성별의 경계를 지우는 콘텐츠가 문화예술계에 많이 등장하던 2019년 제작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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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바꾼 국립극단 '햄릿' 29일까지
실존의 고뇌 그린 원작 버리고
권력 암투 정치극으로 다시 써
이봉련의 다층적 연기 돋보여
일차원적 갈등 구조는 아쉬워
국립극단 연극 '햄릿'의 한 장면. 국립극단

시대가 바뀌어도 고전이 계속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각색한 작품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고전의 탁월한 요소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품. 다른 하나는 고전을 모티프로 삼아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류다. 최근 관객을 맞은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각색 정진새·연출 부새롬)은 후자에 해당된다. 죽음과 복수 앞에서 실존적 갈등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던 원작을 이 '햄릿'은 정치물로 바꿨다. "왕이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계승자 햄릿을 보고 싶었다"는 부새롬 연출가의 말처럼 '햄릿'은 권력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원작에서는 생략되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들이다.

연극은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왕국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로 시작된다. 새롭게 왕좌에 오른 선왕의 동생 클로디어스는 조사위원회의 판단으로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늘 자신이 왕이 될 거라 기대했던 선왕의 딸 햄릿은 불만을 터뜨린다.

"약한 자의 자리는 항상 악한 자에게 빼앗기지. 악한 자여, 그대의 실체는 무엇인가.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왕궁은 정말 최악이다."

연극은 복수심에 불탔던 원작의 햄릿을 권력을 욕망하는 세속적 인간으로 묘사한다. 작품 내내 그는 "(왕좌는) 원래 내 자리였다"며 분노하고 "내가 왕이 되면…"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등 왕위에 집착을 보인다.

그의 욕망을 특히 선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살해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유령을 연기하는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여타의 '햄릿' 공연과 달리 이번 '햄릿'은 후드를 눌러 쓴 여러 명의 배우가 무대에 나타나 햄릿에게 복수를 지시한다. 유령이 아니라 마치 햄릿 안의 욕망이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연극은 다른 인물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도 자세히 제시한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것이 햄릿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총리 폴로니어스가 왕가의 견제를 피해 가문의 힘을 키우려 하는 맥락, 선왕 못지않게 조카 햄릿을 아꼈던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왕위를 찬탈한 이유 등이 소개된다. 모두 원작에는 없는 내용들이다.

연극의 주된 갈등을 죽음과 복수 등 실존적 차원에서 정쟁의 차원으로 전환한 것은 주인공 햄릿의 성격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느냐 죽느냐'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등 근원적 갈등을 하던 주인공이 그저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 원통해하는 인물로 전락한다. 작품을 지배하는 갈등이 일차원적이어서다. 이봉련 배우가 햄릿의 분노와 광기를 여러 층위에서 탁월하게 연기하지만 각각의 인물이 나름의 현실적 명분을 가진 이 정치 드라마에서 권력을 잃은 햄릿은 단순히 정치력이 부족한 무능한 인물이 된다.

작품 내내 권력을 좇는 햄릿을 결국 관객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정치를 의식하지 않는 오필리어에게 햄릿이 "너무나도 순진해서 온몸에 힘이 빠지는군"이라고 지적할 때는 오히려 햄릿이 안쓰럽게 느껴지고, 복수할 능력이 없는 그가 야심 차게 뱉는 대사 "착한 공주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악한 공주는 뭐든지 할 수 있지" 역시 공허하다.

원작에서 남자였던 햄릿을 여자로, 여자였던 오필리어를 남자로 각색한 '햄릿'은 성별의 경계를 지우는 콘텐츠가 문화예술계에 많이 등장하던 2019년 제작된 작품이다. 2020년 관객을 맞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립극장 온라인 극장에서만 공개됐다. 이번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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