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절대로 될리 없어" 학계 멸시 속에 개발한 mRNA 코로나 백신
헝가리 공산당 체제서 출생
미국·독일 쫓겨다니며 연구
"읽으면 새 질문이 생기고
질문은 새로운 실험을 낳아
아직 발견할 것 너무 많아"
"염기 변형 mRNA로 채워진 바늘이 내 피부에 들어갈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정으로 겸허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 일부였던 것이 영광스러웠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출신의 생화학자 커털린 커리코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69)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자서전 '돌파의 시간'에서 처음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이 시작됐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학계가 DNA에 열중할 때 홀로 RNA의 가능성을 믿고 연구에 몰두하며 mRNA 백신을 개발하기까지 수많은 멸시와 조롱을 견뎌낸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동료들조차도 "절대로 될 리가 없다"고 했던 일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돌파의 시간'은 헝가리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과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독일로 떠나 연구를 이어가고, 노벨상을 수상한 현재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회고록이다. 가난했던 유년기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학자로서 기초를 쌓은 경험, 미국에 건너온 후 소수자로서 겪었던 어려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의 우연한 만남 등을 소개한다. mRNA 연구에 대한 집념,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에 대한 믿음, 그리고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도 그가 놓지 않았던 희망이 담겨 있다. 늘 연구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루고 소중한 딸 수전을 사랑으로 키워낸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준다. 노벨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와이스먼 교수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커리코 교수에 대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기반이 된 mRNA 연구의 선구자로, 미국에서만 300만명의 죽음을 막는 데 기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2020년 팬데믹 당시 독일 바이오 기업 바이온텍의 부회장으로 mRNA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었던 커리코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인 '코미나티주'를 화이자와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코미나티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접종된 mRNA 방식의 세계 첫 백신이다.
커리코 교수는 "2020년 한 해의 긴박함과 에너지를 이 책에 모두 담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용기와 전문가적 결단력, 정확성이 필요한 실로 놀라운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라며 "그해에 바이온텍이 화이자와 함께 성취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헤아리지 못할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커리코 교수가 과학자가 되고 연구를 이어오기까지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의 농촌 지역인 솔노크에서도 TV, 냉장고가 없을 정도로 풍족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부모님은 과학에 문외한이었지만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포부도 야무졌다. 1973년 그는 세게드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첫 2년 동안 최고의 성적을 받았고, 3학년 때는 헝가리 인민공화국 학업 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공산당에 반기를 들어 체포된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명단에서는 삭제되고 만다.
능력이 특출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그는 1978년 생물학연구소 BRC에서 RNA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는 순조롭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집으로 찾아온 비밀경찰은 연구자 중 외국 첩보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감시하고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의 압박에도 커리코는 한 번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BRC에서 일하는 7년 동안 한 번도 연구원 이상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1984년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연구비를 지원하던 제약회사도 그의 인건비만 갑자기 끊었다.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1985년, 커리코 교수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더 큰 역풍이 몰아쳤다. 첫 직장인 템플대 연구실에서 연구책임자로 만났던 미국 생화학자 로버트 수하돌닉(1925~2016)은 매우 강압적인 상사였다. 펜실베이니아대(유펜)의 제안으로 이직하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미국 정부에 그를 불법 체류자라고 허위 신고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연구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자 대학은 나가지 않으면 강등하겠다고 했고, 연구를 계속하고자 했던 커리코 교수는 강등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학에 남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유펜은 헝가리 출신의 여성 과학자인 커리코 교수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2013년 그를 내쫓았다. 그렇게 커리코 교수는 17년을 몸담았던 유펜을 떠나 독일 바이온텍으로 이직했다. 놀랍게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바이온텍에서 이뤄낸 성과다. 커리코 교수는 "과학의 핵심은 인류의 지식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이미 좀 더 조용한 곳을 향한 끌림을 느낀다. 혼자 앉아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읽은 것들은 새로운 질문을 불러올 것이고, 그 질문은 새로운 실험을 낳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 발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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