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빠진' 신축 59㎡ 몸값 더 높아진다
청약·매매시장 지각변동 이끄는 중소형 아파트
최근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비슷한 가격의 A지역 34평(전용면적 84㎡) 아파트와 B지역 25평(전용 59㎡) 아파트 중에서 '어디를 사는 게 좋냐'는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때 B지역이 A지역보다 이른바 '상급지'로 분류되는 사례가 많다. 4~5년 전만 해도 답변은 'A지역 34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B지역 25평'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3인 가족이면 25평을 추천한다' '25평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핵심지로 진입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답변이 많다.
과거 4인 가족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의미에서 34평 아파트를 일컫던 말인 '국민 평형'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올해 새 아파트 청약에서 전용 60㎡ 이하 소형 평형 경쟁률이 84㎡가 포함된 중형의 4배를 넘고, 기존 아파트 거래에서도 소형 비중이 늘고 중형은 줄어드는 추세다. 1·2인 가구 비율이 꾸준히 증가한 데다 건설사들이 아파트 평면 설계를 효율화하면서 평수가 작아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아파트 가격 자체가 비싼 서울 및 수도권에 집을 보유하고 싶다면 25평 아파트를 고려하는 것이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청약 신청을 받은 아파트의 평형별 경쟁률을 분석한 결과 전용 60㎡ 이하가 29.4대1로 가장 높았다. 60㎡ 이하의 90% 이상이 전용 59㎡다. 84㎡가 포함된 중형(60㎡ 초과~85㎡ 이하) 경쟁률은 6.59대1로 소형에 크게 못 미쳤다. 작년보다 경쟁률이 높아진 타입도 60㎡ 이하뿐이었다.
가격 변동률을 봐도 전용 40㎡ 초과~60㎡ 이하 아파트가 전용 60㎡ 초과~85㎡ 이하 아파트보다 나쁘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이 5월 서울 아파트 가격동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두 면적 모두 전월 대비 같은 가격 상승률(0.2%)을 기록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포함된 서울 동남권의 경우 소형 아파트 상승률이 0.34%로 중형 아파트(0.32%)를 앞선다.
기존 아파트 거래에서도 소형 평형 비율은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 중 60㎡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32.9%에서 지난해 38.5%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60㎡ 초과~85㎡ 비중은 54.5%에서 51.3%로 떨어졌다.
25평 아파트가 인기를 누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인구 구조 변화가 꼽힌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수는 올해 3월 1002만1413가구로 사상 처음 1000만가구를 돌파했다. 전체 가구의 41.8%다. 2인 가구(590만9638가구)까지 더하면 전체의 66.4%를 차지한다. 4인 가구가 대세라 아파트 크기도 그에 맞췄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세 집 중 두 집이 소형 아파트의 잠재적 수요층인 셈이다.
물론 소형 아파트 수요가 높아지더라도 편의성이 떨어지면 매력은 낮아진다. 설계 기술이 발전해 공간 활용도가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도 중형 아파트에서 소형 아파트로 수요를 전환시킨 이유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가 30평대 중형 아파트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된 이후부터다. 발코니 면적을 바닥면적 계산에서 제외해 '서비스면적'으로 인정하면서 거실·방·주방 등 실내 주거공간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이 공식 허용된 것이다.
발코니를 바닥면적 계산 대상에서 제외하면 그만큼 실제 사용면적이 넓어지는 효과가 난다. 이 때문에 대부분 건설사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발코니 확장을 전제로 평면을 그린다. 전용 59㎡의 발코니 크기는 대개 17~18㎡다. 이를 확장하면 실사용 면적은 76~77㎡ 안팎까지 늘릴 수 있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 이전의 전용 84㎡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확대되는 셈이다.
이 같은 이유로 2000년대 이전 건설된 25평형은 방 두 개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에는 전용 59㎡도 방 3개에 화장실 2개가 일반적이다. 평면을 어떻게 잘 뽑느냐에 따라 드레스룸이 있는 사례까지 있다.
최근에는 전용 59㎡보다 더 작은 면적에서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방 3개, 화장실 2개' 구조가 등장하면서 25평 아파트 평면 설계 수준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59㎡ 미만 초소형 아파트에서는 방 2개 이상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깨진 것이다.
실제로 GS건설이 올해 초 공급한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 전용 49㎡는 방 3개, 화장실 2개가 포함된 구조로 화제가 됐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서울 동대문구 래미안 라그란데(이문1구역 재개발)도 전용 55㎡에 방 3개, 거실, 욕실 2개 구조를 갖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혼희망타운은 2018년부터 방 2개에 가변형 벽체를 사용해 알파룸, 욕실 2개를 구성할 수 있는 평면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거실과 각 방의 크기는 전반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A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방의 크기가 작아져도 각각의 공간 구분을 확실하게 하고 개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게 트렌드"라며 "1인 가구부터 3인 가구까지는 실거주하기에 괜찮은 평면으로 수요자들이 인정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고금리와 원자재 값 상승 여파 등으로 아파트 분양가가 고공 행진하는 상황인 만큼 25평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기준 올해 5월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3863만원이었다. 전용 59㎡라 해도 10억원에 육박한다. 자금이 부족한 30·40대 부부라면 소형 평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B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용 59㎡ 미만 대부분이 임대 물량으로 배정됐는데 이젠 분위기가 다르다"며 "59㎡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그 아래 평형도 일반분양으로 나오는 사례가 늘고, 분양 성적 역시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C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전용 59㎡가 부동산 하락기에는 가격 방어력이 좋고, 상승기에도 인기가 중대형 못지않게 많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도 전용 84㎡처럼 평면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형 아파트 인기를 수요보다 공급이 이끈 측면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으로 짓는 아파트에서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줄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구 수를 쪼개다 보니 소형 평형이 많이 등장했고, 수요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구구조 등을 고려할 때 소형 아파트가 대세로 떠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토지가 한정돼 주택 공급 자체가 어려운 대도시일수록 이 같은 트렌드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뉴욕 도쿄 등 글로벌 대도시도 도심에는 소형 평형 공급이 월등히 많다.
게다가 지금까지 소형 아파트 수요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구매력 있는 60대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래서 향후 진행할 1기 신도시 등 노후 아파트 재건축에도 가구 분화에 따른 설계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으로도 소형 아파트 몸값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최근 3년간 수도권에서 전용 60㎡ 이하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은 전체 공급 물량의 29.5%(7만7548가구)에 불과했다. 올해는 소형 아파트 공급량이 더 줄어든다. 연말까지 예정된 수도권의 전용 60㎡ 이하 공급량은 3887가구(전체의 4.9%)에 그친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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