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더 뛴다"… 뒷심 센 주식으로 서학개미 '전력질주'
자신을 '테슬람'(테슬라를 추종하는 투자자)으로 소개한 직장인 김 모씨(36)는 최근 테슬라 주식을 사모으고 있다. 김씨는 "작년 초 테슬라 수익률이 -40%까지 가 마음고생이 심했다. 앞으론 주가 급락 시에만 매수할 것"이라면서도 "테슬라는 전기차 사업이 부진해도 인공지능(AI) 시대 에너지 사업 부문이 성장해 보완하는 관계여서 결국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하루 테슬라 주가는 8%나 떨어졌지만 최근 한 달 기준으로 보면 41%가량 상승했다. 이로써 테슬라는 지난 5월 엔비디아에 내줬던 '서학개미 보유 1위 주식'이란 왕좌를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왔다.
AI 시대를 주도하는 미국 주식으로 올 들어 '서학개미'들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 특히 매 분기 실적까지 체크하는 '스마트 개미'들은 올 하반기(3·4분기)에 매출이 더 늘어날 정도로 '뒷심'이 센 미국 주식들에 선별 투자하고 있다.
11일 블룸버그 기준으로 이 같은 매출 성장주에는 테슬라, TSMC, 일라이릴리 등이 꼽힌다. 이 중 TSMC와 일라이릴리는 배당주로서 주가 조정 시 배당금으로 버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올 상반기 서학개미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학개미들은 올 상반기(1~6월)에 엔비디아 주식을 가장 많이 샀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 기간 순매수 결제금은 17억8300만달러(9일 환율 기준 약 2조4700억원)다. 그다음이 테슬라(10억7900만달러)이지만 서학개미 주식 보관액 기준으로는 테슬라가 1등이다.
테슬라, 中악재 털고 ESS사업 대박
테슬라는 올 상반기 내내 전기차 수요 부진에다 중국 업체의 저가 차량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하반기에는 매출이 다시 정상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전망은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 대비 23.5% 늘어날 것이란 월가 실적 추정치에 담겨 있다. 월가는 최근 한 달 새 테슬라 목표주가를 상향하면서 주가를 띄우고 있다. 경쟁사를 꺾은 전기차 실적과 에너지 사업 부문 성장, 중국 악재 해소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일단 지난 2분기(4~6월) 테슬라는 41만1000대를 생산해 44만3956대를 고객들에게 전달(판매)했다. 순수 전기차 판매량에서 중국 BYD(42만6000대)를 제쳤다. 테슬라의 판매량이 생산량보다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재고 차량이 줄었다는 뜻이다. 이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비용 절감과 향후 실적 상승을 예감하게 한다.
작년까지 매출액 중 5% 수준에 불과했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매출이 꾸준히 늘면서 테슬라의 사업 다각화 전략이 통할 것이란 예상도 쏟아진다. 테슬라의 ESS 사업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으로 얻은 에너지를 배터리로 저장했다가 필요시 다시 이용하는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를 뜻한다. 테슬라는 2분기에 ESS 설치 용량이 9.4기가와트시(GWh)라고 밝혔는데 이는 직전 분기(4.1GWh)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최근 AI 수요로 미국 내 전력난이 심화되면서 ESS 사업의 마진도 높아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테슬라 ESS 사업의 매출총이익률은 3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1분기 테슬라의 전체 매출총이익률(17%)보다 2배가량 높다. 애덤 조너스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생성형 AI 수요 증가로 올해 테슬라의 ESS 매출은 작년보다 20%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테슬라가 중국 정부에 전기차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역대급 호재'로 인식된다. 테슬라 주력 제품 '모델Y'는 중국 장쑤성의 관용차 조달 목록에 포함됐는데 외국 브랜드로서는 유일하다.
다른 미국 빅테크들이 올해 예상 매출이 작년 대비 20% 이상 성장하는 것과 달리 테슬라는 고작 2% 성장이 예고됐다. 그럼에도 올해 말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02.65배에 달한다. 또 다른 고평가 주식인 엔비디아(47.24배)를 크게 웃돈다.
한편 11일 주가 급락을 이끈 것은 테슬라의 신사업 연기 소식 때문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테슬라의 '로보택시'(자율주행 무인택시) 공개가 8월 8일에서 10월로 연기될 것으로 예상했다.
TSMC, 하반기로 갈수록 매출 쑥쑥
AI 수혜로 TSMC 매출은 4분기로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상·하반기로 구분해보면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보다 19.6%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엔비디아가 AI 칩을 설계하고 TSMC가 실제 생산을 맡는 구조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애플이나 메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들의 파운드리(위탁생산) 품질 수준 요구를 제대로 맞추고 있는 곳은 TSMC가 유일하다. TSMC의 AI 칩 생산 점유율은 99%로 사실상 독점이다.
이 반도체 회사는 대만 기업이지만 미국 뉴욕거래소에도 'TSM'이란 이름으로 상장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뽐내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첨단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TSMC가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를 이달 시험 생산한 후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양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단위다. 선폭이 좁을수록 소비전력이 줄고 처리 속도는 빨라진다. TSMC가 2나노까지 실험하고 있지만 실제로 양산하는 기술로는 3나노가 가장 앞서 있다.
월가에선 TSMC가 올해 하반기에 더 많은 AI 관련 고성능컴퓨팅(HPC)과 스마트폰에 3나노 공정 제품을 이용해 빅테크들의 눈높이를 맞출 것으로 예상한다. TSMC의 올해 3나노 생산 시설은 작년 대비 3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하반기로 갈수록 매출 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가는 미리 움직이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11% 가량 상승했다. TSMC 시가총액은 8일 장중 한때 1조달러를 찍기도 했다. 올해 말 예상 PER은 26.08배로, 다른 미국 빅테크 대비 저평가됐으며 배당수익률은 이날 기준 1.42%다.
일라이릴리, AI로 비용절감 성공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올 하반기 매출은 242억1800만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상반기(187억8100만달러) 대비 28.9% 증가한 수치다.
일라이릴리의 2023년 주당이순익(EPS)은 9.15달러였는데 올해는 13.72달러로 예상돼 EPS 증가율이 49.9%에 달할 전망이다.
EPS를 높이려면 제품을 비싸게 팔거나 자기 주식을 사서 소각하면 된다. 이처럼 단순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려면 엄청난 매출 증가와 비용 통제, 주주 환원 의지를 갖춰야 하는데 일라이릴리는 모든 요소를 충족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서학개미 상반기 순매수 톱10 중에서 일라이릴리는 유일한 제약·바이오 주식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TSMC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곳이 바로 일라이릴리다.
하반기로 갈수록 힘을 내며 작년 대비 올해 예상 매출 증가율이 26%에 달할 만큼 성장하는 일라이릴리는 이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 8일 '모픽 테라퓨틱'을 4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 그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모픽은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만든다.
일라이릴리가 주목받은 것은 비만 치료제 덕분이다. 9일 발표된 '미국의사협회지 내과학(JAMA Internal Medicine)'에 따르면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는 경쟁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면에서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라이릴리가 챗GPT로 유명한 오픈AI와 협력해 항생제 내성(AMR)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항균제 개발에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기로 한 것도 호재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AI는 주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용되고 있다.
다만 실적 대비 주가가 너무 비싸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라이릴리의 올해 말 예상 PER은 66.93배에 달해 노보노디스크(41.81배) 대비 고평가돼 있다는 분석이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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