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고재판소 “고액 헌금하고 ‘반환소송 않겠다’고 한 각서는 무효”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의 대법원 격)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고액 종교 헌금은 개인의 자유 의사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예컨대 토지를 팔거나 빚을 내면서 낸 헌금은 위법성이 있어 손해 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재판소는 헌금을 낸 신자가 ‘헌금과 관련된 반환 소송을 하지 않겠다’와 같은 각서를 썼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무리한 고액 헌금을 요구하는 일부 종교단체의 행태에 엄한 판례를 세운 것이다.
12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종교단체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하 가정연합)을 상대로 전(前) 신자의 딸이 제기한 6500만엔(약 5억6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 종교단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의 재판관 5명이 전원일치로 원고 승소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종교단체 헌금과 관련한 최고재판소의 첫 판결 사례다.
소송은 고인이 된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낸 고액 헌금을 두고 60대 딸이 제기했다. 2021년 91세로 사망한 어머니는 2005~2010년에 남편 명의의 금융 자산을 해약하거나 토지를 매각해 1억엔(약 8억6500만원) 이상을 헌금했다. 2015년엔 공증사무소에서 ‘헌금의 환불이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절 제기하게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했다. 종교단체 간부 앞에서 “헌금은 내 자유 의사로 했다”는 동영상도 찍었다. 7개월 뒤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딸은 2017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쟁점은 각서의 효력이었다. 최고재판소는 “가정연합의 신자들이 주도해 체결한 이 각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를 제약한다”며 “각서 합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앞서 각서를 근거로 ‘소송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한 1·2심을 뒤집은 것이다. 최고재판부는 헌금 모집 행위와 관련해서도 작년 일본 국회를 통과한 ‘부당 기부 권유 방지법’을 인용했다. 악질적인 권유에 따른 기부 행위로 위법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파기환송심에서 도쿄고등법원이 헌금 권유 행위의 위법성이나 종교 단체의 책임 여부를 심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선 현재 179명의 전(前) 신자와 가족들이 가정연합을 상대로 유사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청구액은 모두 합치면 53억엔(약 460억원)이다. 일본 지지통신은 “피해 변호단에는 700건 이상의 상담이 접수된 상황”이라며 “앞으로 손해배상 소송은 확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정연합에 고액 헌금한 신자들 가운데는 이번 소송과 유사한 각서·합의서를 쓴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지카 하지메 긴키대학 교수(헌법학)는 “고액 헌금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판결”이라며 “앞으로 헌금 피해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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