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를 그대로 놔두라[김유찬의 실용재정](42)

2024. 7. 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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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부동산 관련 세금 상담 안내문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켰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폐지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시장에서 중요한 정책수단이 속수무책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다.

부동산시장은 불안정성이 심한 시장에 속한다.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주택을 만들어 공급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수요는 미래 가격 전망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한다. 이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한 올바른 정책수단은 수요 조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쉽게 가열되는 수요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공급이 비탄력적이므로 거래량의 작은 변화에도 가격변화가 크다. 매매 가격의 변동성은 전·월세 가격에 영향을 끼쳐 서민들의 주거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시장의 상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자율 수준이다. 이것이 주택 보유의 비용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다만 이자율 수준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주택시장만 염두에 둘 수는 없다. 경제 전체 상황과 해외 이자율 수준을 고려해 금리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가격안정을 위해 금융 부문의 정책수단으로 금리보다는 대출 규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 자산 불평등 강화 기제로 작용”

대출 규제는 수요 규제에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 부동산시장의 단기적인 규제수단으로 적절하다. 문제는 금융기관들은 안전한 수익이 보장되는 주택담보대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 의지가 부족하거나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에 포획된 행태를 보이면 실효적인 대출 규제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기준에 의해 규제해도 대출받는 사람만 투자와 수익 창출 기회를 누린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차별적이다.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상승한 부동산 가치의 작은 일부분, 통상 1%에도 못 미치는 정도의 세금이 증가할 뿐이다. 조세정책은 이미 가열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잘 정착돼 납세자들의 머릿속에 ‘상수’로 자리 잡은 보유·양도·취득에 대한 적정 수준의 부동산 세제는 이자율 변화에 따라 안정된 시장이 불안정하게 변하는 길목에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투자자의 수익률 전망을 낮춰서 투자를 자제하게 한다. 취득세는 빈번한 거래에 부담을 주고 종합부동산세는 소득수준과 비교해 과도한 부동산 보유에 비용을 부과한다. 양도소득세는 양도소득이 실현돼야 과세하기에 납세자들은 양도세율이 완화될 때까지 기다리며 매각을 미룰 수도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그 부담이 보유 기간에 비례하는 속성을 통해 양도세의 취약점을 보완해준다. 중요한 것은 이 세제들이 납세자들의 의식 속에 착근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시장 안정의 가시적인 효과가 있으려면 10년 정도의 일관성 있는 조세정책의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대출 규제는 소득과 담보자산이 충분한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에 자산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성격을 가진다. 종합부동산세를 대체할 정책수단으로써 뚜렷한 단점이다.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종합부동산세로 인한 납세자들의 부담은 새롭게 종합부동산세 납세자가 되거나 세액이 급증한 사람들, 자산보다 소득이 취약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좋은 일과 세 부담 증가라는 불리한 일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데, 세금에 대한 놀라움과 낭패감만이 개인들에게 부각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부동산 소유자는 소득이 없어도 자산만으로 충분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판단될 수 있는 고가 부동산의 소유자다. 종부세의 부과 기준이 그렇게 설정돼 있다. 소득과 자산은 서로 독립적인 경제적 능력의 지표인 것이다.

부동산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는 정책당국자들은 부동산 보유에 부과하는 세금이 정책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필요 없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보유자의 담세능력을 보여준다. 부동산보유세는 소득세처럼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정책적 기능과 상관없이 존재 의미가 있다. 부동산시장에 자금이 몰려 가격급등 현상이 생긴 것이라면 부동산 가치에 부응하도록, 즉 보유자의 경제적 능력에 합당하도록 과세하면 시장의 가격안정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주체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판단기준으로서 소득과 함께 최근 재산이 점점 더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재산의 어떤 점이 경제적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일까. 재산의 소득 창출 능력과 사용가치가 그 원천이 된다. 소득 창출 능력이라면 우선 자산으로부터 소득을 파악해 과세하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예금이나 채권 형태의 자산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을, 주식에 대하여는 배당과 양도차익을, 임대주택에 대하여는 임대소득을 각각 과세하면 된다.

“부동산 안정화, 일관성 있는 조세정책 필요”

그러나 부동산 보유자가 직접 거주하는 부동산으로부터의 실물향유소득에 대하여는 소득세가 과세하는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가주택에 거주하는 개인은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월세 형태로 지불해야 하는 것에 비해 그렇게 하지 않고도 거주할 수 있어 동일한 소득을 갖고 있더라도 경제적 능력이 우월한 것이다.

대출 규제와 부동산세제는 특성을 구별해 활용해야 한다. 부동산세제는 입법을 통해 가동되는 정책으로 세율이나 공제 금액 등을 단기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경기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규범으로서 항구화시켜야 한다.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기존에 존재하는 세제를 바꿀 필요가 없다. 가격이 하락하면 세 부담도 가치에 연동해 줄어든다.

없던 세제를 새로 도입해 과열되는 부동산경기에 대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항구적인 보유 세제를 가지고 있으면, 가치 증가에 연동해 세 부담이 올라가면서 경기과열에 대한 제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책적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부동산자산은 그 자체로 경제적 능력의 대리지표이기에 상응하는 과세가 공정 과세를 실현하는 길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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