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탄핵’ 민주당, ‘릴레이 거부권’ 대통령…삼권분립이 흔들린다
출구 없는 행정-입법권력 ‘강 대 강’ 충돌…檢은 ‘이재명 부부 소환’ 예고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권력을 가진 모든 자는 그 권력을 남용하려 하고, 권력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이를 행사하려 한다." 삼권분립의 모태가 된 몽테스키외의 오랜 명언이 최근 대한민국 정가에 회자되는 모습이다.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삼권분립의 두 축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면서다. 당초 야권 주도의 법안 강행 처리,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대표됐던 입법·행정부의 강 대 강 충돌 양상은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카드' '청문회 공세'와 맞물려 더 거칠어지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촉구' 국회 국민동의청원 심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정부·여당이 '삼권분립의 훼손'이라고 반발하는 가운데 검찰은 이 전 대표 부부를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맞불을 놨다. 검찰을 필두로 한 행정부와 총선 후 몸집이 커진 거야(巨野), 이 두 권력을 대표하는 윤석열과 이재명. 과연 누가 '권력을 가진 자'이며 누가 '권력을 남용'하려는 것일까.
巨野, 21·22대 국회에서 18개 탄핵안 무더기 제출
윤석열 정부 들어 여야의 대치는 심화됐다. 협치 성과가 전무했다. 이 탓에 정치가 실종됐다는 혹평도 나왔다. 그러는 사이 입법부와 행정부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야당의 법안 단독처리→대통령 거부권→재투표' 대치가 쳇바퀴처럼 계속됐다. 그 결과 불명예스러운 신기록이 쓰였다.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임기 2년 만에 14번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노태우 대통령(7번)보다 두 배 많다.
22대 국회 역시 같은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첫 법안부터 거야가 단독 처리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순이 되풀이됐다. 윤 대통령은 7월9일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해병의 안타까운 순직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야권의 '정략적 입법'을 의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문턱에 법안이 연거푸 가로막히자 민주당은 '릴레이 탄핵'으로 맞불을 놓는 양상이다. 그간 야권에서 탄핵은 '칼집에 든 칼'에 비유됐다. 탄핵은 입법부의 가장 강력한 행정부 견제 장치지만 그 칼을 빼드는 순간, 정치의 공간은 사라지고 '전쟁 같은 정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협치를 위해 탄핵만큼은 언급을 삼갔다. 그러나 최근 탄핵은 야권 최후의 보루이자 금기의 단어가 아닌, 최선의 무기이자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와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무려 18개의 탄핵안을 제출했다. 이 중에서 절반인 9개가 원안대로 본회의를 넘어 곧바로 '직무정지'가 이뤄졌다.
거야의 '탄핵 열차'가 폭주하자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사실상 별다른 제동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 대상자의 '자진 사퇴'였다. 21대 국회에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22대 국회에선 김홍일 방통위원장이 탄핵안 처리 이전에 사퇴하고 대통령이 재가하는 방식으로 입법부의 탄핵 시도를 무력화했다. 사법부의 구제로 탄핵 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도 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책임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그럼에도 야권의 탄핵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신기록'만큼 야권의 '탄핵 소추 신기록'도 계속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윤 대통령이 후임 방통위원장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지명하자, 야권은 다시 탄핵을 예고했다. 방통위는 6월28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를 비롯한 공영방송 3사 이사 선임 계획안을 의결해 놓은 상태다. 현재 이에 따른 이사 후보 공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후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미룰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해당 안건 의결을 시도하는 즉시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검사 탄핵, 법의 테두리 넘어섰다"
민주당의 탄핵 타깃은 비단 임명직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7월2일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대상은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엄희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등 현직 검사다. 본회의에서 제안 설명에 나선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검찰 조직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쥔 채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이런 행태를 막기 위해 오늘 발의한 검사 탄핵안을 국회법 130조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제안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밝힌 검사 탄핵 사유 대부분이 이 전 대표 수사와 무관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4명의 검사 모두 이 전 대표와 관계된 '대장동·백현동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사들이다. 이 탓에 여권을 중심으로 검사 탄핵이 사실상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어용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당장 이원석 검찰총장이 검사 탄핵이 부당하다고 나섰다. 이 총장은 7월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권력자를 수사했다고 그 검사를 탄핵한다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탄핵은 위헌, 위법, 검사와 법원에 대한 보복, 헌법을 위반하고 법률을 위반하고 검사에게 또 법원에 보복과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고, 사법을 방해하고 지연해 오직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는 방탄 탄핵"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번 검사 탄핵 과정이 법의 테두리를 넘어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탄핵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개최를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이해충돌 아니냐는 시각이다. 법사위원 가운데 박균택 의원의 경우 이 전 대표의 변호인을 맡았고, 이건태 의원은 이 전 대표 측근인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을 변호한 이력이 있다. 사실상 피의자의 변호사가 수사 담당 검사를 탄핵하려 하고, 조사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게 정당하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검사 탄핵 찬성파'는 이를 '정치 검찰'을 향한 입법부의 정당한 견제라 해석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유독 검찰의 정치권 수사가 이 전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인사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는 명백한 수사권 남용이자 삼권분립 훼손으로, 검사 탄핵 절차를 통해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다.
검찰총장 "野, 방탄 탄핵"…이해충돌 논란도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7월2일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원석 검찰총장과 대검찰청이 (검사 탄핵안 발의를 두고) 계속 조직적 저항을 하고 있다"며 "우리(민주당)가 탄핵(안)을 가결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탄핵 대상의 의혹이 진실인지 아닌지 규명하겠다는 것 아닌가. 본인들이 법사위에 출석해 소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김건희의 애완견 아니냐'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데 왜 김건희 여사를 단 한 번도 소환하지 못하고 있느냐"며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민주당이 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이라면 (검찰의) '김건희 방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라고 꼬집었다.
변호사인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검사의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해 국회는 탄핵소추권으로 견제할 권한이 있다. 검사가 수사할 권한을 가지듯 각 헌법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갖는 것"이라며 "검사가 반발하려면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과연 공정했는지 검찰청법 제4조를 읽어보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짚었다. 검찰청법 제4조 3항에 따르면,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검사까지. 민주당의 '탄핵 열차'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정치권에선 그 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7월9일 전체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 탄핵안 발의 청원'에 대한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의 건 등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은 6월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청원자는 윤 대통령의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및 주가조작 의혹 등 5가지 법률 위반 혐의를 사유로 제시했다. 7월10일 기준 동의자가 130만 명을 넘어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은 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도록 하는 제도다.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청문회가 열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법상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제65조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 등에 필요한 경우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청원 심사와 관련해 '청원인이나 이해관계인 등으로부터 진술을 들을 수 있다'(제125조)는 규정도 있다. 민주당은 또 김건희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39명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7월19일과 7월26일 증인들을 법사위에 출석시켜 윤 대통령 탄핵 청원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청문회 여파로 22대 국회 개원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부터 개원식이 열리지 않은 적은 없다. 당초 개원식은 7월5일 진행하기로 했으나, '채 해병 특검법' 처리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개원식 불참을 선언하면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이후 여야는 개원식 등 의사일정을 논의해 왔지만, 야당이 '윤 대통령 탄핵 청문회'를 강행 처리하면서 협상은 어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尹 대통령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중우정치' 문제 드러나"
탄핵을 앞세운 민주당의 압박 속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치는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7월4일 이 전 대표와 그의 배우자 김혜경씨 측에 이달 중 업무상 배임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을 것을 통보했다. 이 전 대표는 7월10일 당권 연임 도전을 선언하며 "검사 탄핵소추를 가지고 말이 많은데,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검사만큼 많은 권력을 가진 공직자는 없다"며 "검찰이 권력 자체가 돼서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니까 국회가 가진 권한으로 조금이나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바로 탄핵"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과 야당의 관계도 악화일로다. 앞서 영수회담 등을 통해 협치를 모색했던 윤 대통령이지만, 최근 야당의 '특검·탄핵 공세'에 맞서 다시금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서를 통해 "소수의견을 존중하려는 노력 없이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중우정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과 검사, 국회와 정부의 끝없는 대치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갈린다. "대통령 탄핵 청문회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 의사를 밝혔기에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전망과 "야권의 노림수가 무엇이든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요구는 탄핵이 아니라 민생과 협치"(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라는 분석이 공존한다.
"법의 방어막 아래,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보다 더 잔혹한 독재는 없다." 1748년, 삼권분립을 주장한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시 2024년 대한민국. 입법권을 쥔 거야와 검찰을 앞세운 정부, '탄핵 선봉장'이 된 이재명 전 대표와 '무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누군가는 법의 방어막 아래서, 정의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정치 실종의 시대, 국민은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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