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알고리즘의 진화...로보어드바이저 찍고 'AI 투자'로

장서우,이상은 2024. 7. 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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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지배사회 (7)]
투자 저변 넓혔지만 승자독식 가속화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라톤에 사는 피에트로스 마네오스(44)씨는 시인이다. 간단한 코딩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그는 천생 ‘문과’다. 그런데 동시에 33%의 연 수익률을 내는 전문 투자자이기도 하다. 단 1대의 노트북으로 72개에 달하는 퀀트 투자(컴퓨터의 계량 분석에 기반한 투자) 전략을 동시에 실행한다. 그중에는 S&P500지수 상승분의 세 배 수익률을 가정하고 베팅하는 초고위험 전략(트리플 레버리지)도 포함돼 있다. 마네오스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마치 혼자만의 블랙박스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며 “나는 72개의 (투자) 전략을 가진 헤지펀드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초개인화 투자가 가능해진 건 알고리즘 덕이다. 컴포저, 알파카마켓, 퀀트커넥트닷컴 등의 온라인 트레이딩 플랫폼을 이용하면 아마추어 투자자들도 거대 헤지펀드에 맞먹는 돈을 어렵지 않게 굴릴 수 있다. 컴퓨터에 내재돼 있는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가격 추세를 예측해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 판다.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몇 초 만에 처리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미 투자회사 DBi의 앤드루 비어 매니징디렉터는 “이제 개인 투자자들도 퀀트 투자의 대가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시브 자금, 액티브 첫 추월

알고리즘이 바꿔놓은 미 월가 풍경이다. 고(故) 짐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 회장이 일으킨 ‘퀀트 혁명’은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기반한 인공지능(AI) 물결을 타고 또 한 번의 변혁기를 맞았다. 컴포저의 고객 수는 출시 3년 차인 작년 한 해에만 다섯 배로 불어났다. 4500명이 넘는 컴포저 유저들은 메시지 플랫폼 ‘디스코드’에 모여 투자 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소셜미디어(SNS) 업체 레딧의 주식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와 유사한 공간이 늘면서 시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알고리즘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개인 투자자들은 펀드 자금의 흐름까지 좌우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작년 12월 31일 기준 미국에서 패시브 전략 기반 펀드의 운용자산(AUM) 규모는 13조2900억달러(약 1경8473조원)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3년 이래 처음으로 액티브 펀드(13조2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익률도 더 우수했다. 대형주 중심 혼합형 펀드에서 패시브 전략이 1928억달러(약 268조원)의 순이익을 낼 동안 액티브 전략은 486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AI가 이끈 ‘패시브 전략 붐’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중심으로 미 증시가 활황세를 나타내고, 이들 종목이 편입된 ETF 등 투자 상품에 자금 쏠림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알고리즘 매매는 상승 곡선을 타는 지수를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저렴하게 추종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1976년 뱅가드가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내놓은 지 약 50년 만에 ‘패시브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닝스타는 “인덱스(패시브) 펀드가 공식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는 AI를 통해 반복될 것”이라고 짚었다. 향후 10년 내로 패시브 펀드의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길 거란 전망이다.

패시브 시장의 최선봉에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로보어드바이저(RA)가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RA 시장은 2021년 1조40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까지 연평균 18%의 속도로 불어나 2026년에는 3조1000억달러(약 4308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RA 시장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투자 일임 부문 시장 점유율 1위(약 56%)인 디셈버앤컴퍼니의 RA 서비스 ‘핀트’는 AUM 규모가 4년 만에 4배 넘게 급증했다.

 ‘시스템 리스크’ 위험 높이기도

알고리즘에 기반한 트레이딩 덕분에 시장 전반의 유동성은 한층 풍부해졌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투자할 주식을 고르고 매매 시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규칙성이 제거된 탓에 오히려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문가들이 보지 못한(혹은 보지 않으려 했던) 파생상품의 리스크가 누적되다가 터져나온 결과였다. ETF와 같은 패시브 펀드의 성장 역시 전 세계 금융시장의 동조화를 불러오는 만큼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충격을 빠르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여지가 있다.

시장을 이기기 위해 만든 알고리즘이 수없이 많아지면서 결국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에 수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강화되면 적정 주가로의 수렴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별 종목을 고르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자산군을 묶어서 시장 수익률 이상의 수익(알파)를 추구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승자독식' 가속화한 알고리즘

알고리즘의 등장으로 바뀐 것은 투자자만이 아니다. 투자금을 모아야 하는 기업들은 알고리즘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대규모의 자금을 매우 빠르게 끌어모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유망한 기업의 빠른 성장을 돕는 한편, 기업 간 편차를 심화시키는 ‘승자독식’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2일 시빌리스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증시(장외거래 포함)에서 상위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69.0%에서 지난해 말 82.8%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이 비중은 2019년(83.0%) 이후 5년째 80%를 웃돌고 있다. 상위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 규모도 2010년 말 17조달러에서 작년 말 50조8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전반적인 경제성장과 글로벌 금융위기 후 양적완화 통화정책 등이 두루 작용한 덕분이지만, 이 자금의 상위 기업에 대한 쏠림현상이 발생한 것은 알고리즘을 활용한 트레이딩이 가속화하고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패시브 펀드가 활성화되면서 뛰어난 기업들이 더 많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액티브 펀드와 달리 기업을 일일이 고를 필요가 없는 패시브 펀드는 낮은 수수료율을 바탕으로 투자의 저변을 넓혔다. 투자자들은 기업 정보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더 큰 금액을 더 적은 비용으로 투자하면서 액티브 펀드와 유사한 수준의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형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핵심 투자자 10명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이들의 전략을 추종하는 1만명이나 10만명의 자금을 받아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재무학자들은ETF의 등장으로 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질적으로도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를 여럿 발표했다. 

대신 패시브 펀드는 특정 지수에 포함된 기업에 더 많은 투자자금이 쏠리게 한다. 지수에 포함된 종목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다른 기업들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수요 쏠림은 시장 전체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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