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플레이스의 대명사, ‘키스Kith 서울’ 오픈 뉴욕 키스보다 큰 규모, 성수동서 문 열어
유명 스토어이자 브랜드인 ‘키스Kith’가 드디어 서울에 상륙했다.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에 이어 키스까지. 심지어 키스는 본거지인 뉴욕보다 더 큰 규모다. 인파로 붐비는 키스 서울의 입구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주요 브랜드들의 스토어를 다 가진 서울과 키스(kiss)한 그 브랜드들의 입지에 대한 생각이 컸다. 과연 그들은 적절할 때 서울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3대 스트리트 브랜드의 서울 입성
만일 당신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경험해봤을 것이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을 여행할 때 해외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 스토어를 무조건 들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경험 말이다. 스트리트 패션의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슈프림 스토어에 가기 위해 도쿄, 오사카 등의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런던, 뉴욕, 도쿄에 머물면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매장을 꼭 가야만 했었다. 꼭 브랜드 스토어가 아니어도 베를린, 시드니 등의 도시를 여행할라치면, 발 도장을 꾹 찍는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들이 있었다.
예전엔 한국에는 없고, 그곳에만 있으니 일단 희소성이 있었다. 또 그곳에 (꼭 구매하지 않아도) 들렀다 오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종의 트렌드세터가 되는 환상도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슈프림 쇼핑백, 스티커 하나를 가져오면 뿌듯하고 충만한, 그런 마음 상태가 되는 걸 보라. 허세라고 해도 좋고, 동경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그곳에서 브랜드들의 스토어를 경험했다는 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향유했다는 의미도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2023년 5월. 서울 도산공원 근처에 슈프림 매장이 문을 열었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스트리트 브랜드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돌았었다. “세계의 도시는 슈프림이 있는 도시와 없는 도시로 나뉜다”라는, 우스꽝스럽지만 상징성 가득한 이야기. 서울은 이제 슈프림 스토어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우리가 해외 여행을 떠나 그 도시에서 브랜드 스토어를 찾아 방랑했듯,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행하는 또 다른 유럽 및 아시아의 여행자들에게 그 매장 방문이 하나의 버킷리스트로써 기능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2024년 2월, 서울은 또 하나의 매장 오픈으로 들썩거렸다. 뉴욕발 슈프림에 이어 런던발 슈프림으로 회자되던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서울 스토어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조금 식상해진 마니아들에게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등장은 또 하나의 역사였다.
슈프림에 비해 론칭이 한참 늦었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이 스트리트 브랜드의 명성은 리셀 시장에서 꽤나 유명했다. 이러고 보니 이제 서울은 한참 전에 문을 열었던 스투시 스토어 외에 슈프림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라는 스트리트 패션 3대장의 모든 스토어를 가진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K팝을 위시한 K컬쳐의 글로벌 선양에 힘 입은 것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명품 브랜드를 위시해 돈 씀씀이가 꽤나 커진 한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려서일까? 명품이 한국에서 유독 잘 팔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소비자들의 스투시,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열정이 적지 않았던 이유도 작용을 했을 터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의 한정판 스니커즈가 불티나듯 팔리고, 심지어 웃돈 얹어 사고 파는 ‘리셀’ 시스템마저 완벽하게 갖춰진 도시 서울. 이곳에 저런 스토어들이 없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긴 하다.
키스와 키스하다 ‘키스Kith 서울’ 성수동 오픈
그리고 2024년 5월 31일. 또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에 ‘키스(Kith)’가 문을 연 것이다. 키스가 어떤 곳이냐고? 흔히들 여러 브랜드들을 셀렉해 판매하는 편집숍으로 잘 알고 있는 키스는, 뉴욕 퀸즈 출신의 로니 파이그가 설립한 브랜드다.
키스의 첫 출발은 여러 브랜드 제품을 모아 놓은 편집숍이었고, 또 그 브랜드들과 컬래버레이션하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국내의 무신사를 떠올려보자) 그래서 키스는 스토어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컬렉션 디자인을 제품화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키스는 2011년 설립 후 세계 4개 대륙에 총 1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뉴욕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힙 플레이스였던 그런 키스가 드디어 ‘키스 서울’로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대한 규모로 말이다. 서울은 이제 ‘키스 서울’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지금 ‘없는 게 없다’. 10 꼬르소 꼬모, 분더샵, 비이커 같은 해외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편집숍들이 즐비한 데다,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 스투시를 넘어 키스라는 웅장한 성전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키스 서울의 오픈은 꽤나 서울을 중요하게 만든다. 지금 성수동 키스 서울 매장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창립자 로니 파이그가 그간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들이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고, 서울 한정판을 구매할 수 있다. 심지어 키스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트리츠(Kith Treats)’도 있고, 프렌치 토스트 맛이 기가 막힌 레스토랑 ‘사델스 서울(Sadelle’s)’도 함께 문을 열었다. 게다가 4층 규모로 만들어진 키스 서울은 본거지 뉴욕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입구에는 입장을 위한 긴 대기 라인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서울이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발전한 만큼, 과거와 같은 해외에의 동경은 줄어들었다. 한국에도 있는 장소를 굳이 해외까지 가서 일일이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 그런데 말이다. 이 필요 없음의 행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서울에 있어서도 찾아갈 필요가 없지만, 지금 그 브랜드 자체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뉴욕 슈프림 매장 앞에는 엄청난 대기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새로운 제품이 드롭되는 목요일이면 온라인 예약자 아니고선 무조건 줄을 서야만 했다. 그 줄이 길 건너 건너까지 계속 이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슈프림 매장 앞에는 그런 줄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매장 내의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하기에 발생하는 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 필자가 파리 슈프림 매장에 들렀다 놀란 건, 슈프림도 파리 세일 기간에 세일을 한다는 점이었다. 무려 40%나!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때의 슈프림이 아니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웹매거진 「하이스노비어티(HIGHSNOBIETY)」에는 ‘Maybe SUPREME Really Is Dead’라는 흥미로운 타이틀의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이건 많은 스트리트 패션 마니아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슈프림은 죽었다’는 내용이다. 동시에 이건 슈프림을 위시한 스트리트 패션 자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브랜드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슈프림을 포함한 스트리트 브랜드의 아이콘들이 과거와 같은 정체성을 보유하지 못하는 ‘오리지널티의 감소’를 말하는 것이다. 슈프림이 (반스 등을 보유한) VF 컴퍼니로 인수되었던 건 업계의 유명한 뉴스였다. 그런데 지금 이 모기업이 다시금 슈프림을 시장에 내놨다고 한다. 동시에 스트리트 웨어 시장이 디자이너 브랜드 및 하우스 명품 브랜드로 이전되면서 기존 스트리트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가 낮아진 것도 이와 같은 상황에 부합된다.
서울을 찾는 여행자의 새로운 좌표로 등장
팬데믹 이전의 키스와 지금의 키스는 많이 다르다. 현재 키스 서울은 패션 대기업과 미국 본사의 합작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과연 키스 서울은 잘 될까? 업계 관계자들에게 키스 서울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면 반반의 긍정과 부정이 돌아온다. 여기에서 교집합을 형성하는 건 “그래도 1년 정도는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을까?”라는 것. 왜냐하면 키스에서 제품을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키스 서울의 트리츠와 사델스 서울에 대한 수요 역시 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키스 서울의 전망이 조금이나마 밝은 건 여전히 창립자 로니 파이그를 중심으로 한 컬래버레이션 영역의 힘이 크다는 점이다. 국내 리셀 시장에서 키스와 함께 협업한 뉴발란스 등의 스니커즈들이 여타 협업 브랜드 제품에 비해 좋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키스는 조금 더 프리미엄 패션을 추구하는 스토어이자 브랜드라는 점 역시 차별화를 띤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더 크다. 그건 몇 년만 더 빨리 ‘서울과 키스’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다. 슈프림이 여전히 힘을 가지고, 팔라스 스케이트보드가 맹렬한 에너지를 펼치며, 키스가 패셔니스타들의 성지로 군림하고 있었을 때 서울에 입성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미래를 점치게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줄곧 여행자로서 그래왔듯, 이제 서울을 찾는 여행자들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스토어들의 좌표를 찾아 헤맬 것이다. 이제 당당하게 말해도 좋다. 내가 사는 서울에는 키스 스토어가 있다고. 서울은 그런 도시가 되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