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시대 들어섰지만…노사 충돌은 격화할 듯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두고 국회서 '입법전쟁' 전망
'특고·플랫폼 임금 별도 설정' 새 이슈로…논의 계속될 듯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최저임금제 시행 37년 만에 시급 1만원대에 들어섰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표결로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1만30원으로 정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2013년부터 11년,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이 처음 시급 1만원 요구안을 내놓은 2015년 이후 9년 만에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앞까지 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이 때보다는 5년이 늦었다.
'1만원 시대' 열었지만 인상률 낮아…노사 충돌 격화 전망
'1만원 이상'이라는 상징성만 제거하면 내년 최저임금액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올해 최저임금 대비 인상률이 1.7%로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인상률(9.0%)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들어 인상률보다 낮아서다. 재작년과 작년 사이엔 최저임금이 5.0%, 작년과 올해 사이엔 2.5% 올랐다.
앞으로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노사에 충돌은 더 격해질 전망이다.
경영계는 1만원대에 진입한 점을 들어 이른바 '안정화'를 주장하며 인상을 막고 노동계는 낮은 인상률에 초점을 맞춰 더 올려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최저임금 1만원 돌파가 엄청난 것인 양 의미를 부여하지만, 인상률은 역대 두 번째로 낮았으며 실질임금은 사실상 삭감됐다"라면서 "1만원이 넘었다고 역사적이니 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하는 문제와 플랫폼 종사자 등 '도급제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 수준을 별도로 설정하는 문제를 두고 충돌도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 최저임금 영향은 '노동자 15%'지만…사실상 전 사회에 영향
공식적으로 최저임금에 영향받는다고 분류되는 노동자는 올해 기준 334만7천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5.4%이다.
다만 노동자 15%만 최저임금에 영향받는다고 볼 수는 없다.
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 850만명에게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의 상한선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입한 생활임금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맞춰 오를 때가 많다.
서울시의 서울형 생활임금은 2015년부터 작년까지 연평균 6.7%가 인상돼 같은 기간 최저임금 인상률(연평균 7.1%)과 비슷했다.
임금이 최저임금을 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내년 임금 인상률 하한선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 최저임금 심의자료를 근거로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이날 교원 기본급을 10%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규 초등교사 임금 실수령액이 최저임금위가 조사한 비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에 못 미친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최저임금은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최저임금을 '사회임금', 최저임금 심의를 '노사의 대표가 벌이는 사회적 임금협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최저임금에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 경영난·저출생에 '구분적용' 주장 강해질 듯…'입법전쟁' 예고
경영계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자고 예전부터 주장해왔다.
최근 들어선 최저임금을 달리할 업종을 제시하면서 이전보다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심의에선 한식·외국식·기타간이 음식점업과 택시 운송업, 체인화 편의점에 최저임금을 구분해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이 고율로 인상되고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이들 업종 최저임금 지급 능력이 한계에 달해 다른 업종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영계 주장이다.
정부가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킬 대책으로 '임금이 낮은 돌봄인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최저임금 구분 적용 도입 주장을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올해는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돌봄서비스 인력난과 사용자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돌봄서비스업 최저임금을 다른 업종보다 낮게 설정하자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최저임금 심의 전부터 구분 적용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저임금 노동자 최저 임금 수준 보장과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의 취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 업종은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히며 사양이 가속화돼 사업주로서도 좋은 것이 없다는 주장도 노동계는 펼친다.
이번 최저임금 심의에서 구분 적용 방안은 표결에서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가 나와 부결됐다.
민주노총은 표결 직전까지 표결에 반대했다.
구분 적용이 최저임금제 취지에 맞지 않아 법에 어긋난다는 것이 내세운 이유였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이 부결에 표를 행사할지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공익위원 대부분이 이번 정부 들어 새로 위촉됐다.
차기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구분 적용과 관련된 논의는 최저임금법상 근거 조항을 삭제할지를 두고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 주장은 최저임금법 4조 후단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라는 규정에 근거한다.
노동계는 1988년 최저임금이 처음 시행됐을 때만 구분 적용이 이뤄지고 이후 '단일 최저임금 체제'가 유지된 만큼 '사문화'된 근거 조항을 없애자는 입장이다.
제21대 국회 때 최저임금 구분 적용 근거를 삭제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으며 22대 국회 들어서도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야당에서 같은 취지 법안을 발의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최저임금을 반드시 업종별로 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정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한다'라고 명시됐다.
'특고·플랫폼 최저임금 별도 설정' 논의 계속될 듯
이번 최저임금 심의 때 노동계는 특수고용직노동자(특고)나 플랫폼 종사자 등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수준을 별도로 설정하자는 주장을 처음 꺼냈다.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진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들고나온 것이다.
도급제 최저임금 별도 설정은 배달노동자 등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법 밖에 놓인 노동자를 법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경영계는 도급제 최저임금 별도 설정이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 사항에 없고 노동자성은 개별적으로 판단돼야지 최저임금위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순 없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플랫폼 종사자가 급증하는 추세인 데다가 노동부가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설정을 최저임금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해석을 밝힌 터라 앞으로 심의에서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노동계가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설정을 경영계의 구분 적용 주장을 상쇄할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번 심의에서 공익위원 중재안을 노사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설정 논의가 마무리됐다.
이후 최저임금 구분 적용 논의 때 민주노총은 표결에 반대하며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설정 논의는 공익위원 중재안을 수용해 종결된 점을 강조했다.
공익위원들은 법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된 도급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를 나눠 의견을 제시했다.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법 5조 3항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와 관련해 구체적인 유형·특성·규모 등 실태 자료를 노동계에서 준비해주시면 올해 최저임금 심의를 종료한 후 논의가 진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노동계가 요청하는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 등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 최저임금 적용 확대는 제도개선 이슈로 최저임금위가 아닌 실질적 권한을 지닌 국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하길 권유한다"라고 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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