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뜬다]⑥ 씹지 않아도 되는 고기에 분말 죽까지…'고령친화식품'의 변신

화성=이채린 기자 2024. 7. 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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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홈 고령친화식품을 소개하는 홍보 사진. 아워홈 제공

[편집자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지식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여기에 인간 수명까지 늘어나면서 건강을 개선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개인 맞춤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원 낭비는 줄이고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 산업도 주목됩니다. 식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조리 및 외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도 각광받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 모든 것을 현실화하는 ‘푸드테크’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푸드테크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이 푸드테크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혜안을 모색해 봅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화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달하는 경우를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6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총 인구의 30%, 2050년에는 무려 40%를 넘는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한국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하는 수치지만 역설적으로 산업계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먹거리 시장이 부상하는 신호로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을 씹거나 삼키는 데 불편함이 있는 고령층을 위해 개발된 식품인 '고령친화식품' 산업이 주목받는다. 고령층 대부분이 겪는 섭취 기능 저하로 건강상태가 안 좋아지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령친화식품은 '시니어 케어푸드', '실버푸드', '시니어 푸드'라고도 불린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국내 케어푸드 시장이 2021년 2조5000억원에서 2025년 3조원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도 고령친화식품 확산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령친화산업 중 식품 분야를 유망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2021년 5월부터 '고령친화우수식품 지정제도'를 운영해 현재까지 약 100개 제품을 고령친화우수식품으로 지정했다.

고령친화우수식품 지정제도는 제품의 경도·점도, 영양성분, 고령자 배려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물성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해 우수식품으로 지정·관리하는 제도다. 한국산업표준(KS) 기준에 따르면 식품은 치아 섭취 가능하면 1단계, 잇몸 섭취 가능하면 2단계, 혀로 섭취 가능하면 3단계로 나뉜다.   

● 씹지 않아도 고기 '꿀꺽' 

고령친화식품에는 음식을 입에 넣고 씹기 힘든 사람을 위한 '연화식'과 근육이 약해져 음식을 삼키는 행위가 곤란한 경우 이를 돕는 음식인 '연하식'이 있다. 
 

국내 기업 중 연화식에 집중하고 있는 곳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다. 2016년부터 '케어푸드'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연화식 개발에 나섰다. 2017년 국내 최초로 B2C 연화식 브랜드 '그리팅 소프트'를 론칭했다. 고령층이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잇몸이나 혀로도 부서질 만큼 연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아워홈도 마찬가지다. 아워홈은 일반식과 동일한 수준으로 맛과 식감이 살아있는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워홈이 집중한 고령친화식품은 육류다. 육류 식재료들은 고령층으로부터 선호되고 영양학적으로 필수 권장되고 있다. 노화에 따른 치아 및 소화기능의 약화로 인해 고령자들이 취식에 애로를 겪는 대표적인 품목이기 때문이다.

아워홈은 2017년 육류의 물성을 조절하는 기술 특허를 출원 및 등록했다. 국내 최초로 아워홈이 개발한 효소를 활용한 연화기술이다. 연화기술은 연화식을 만드는 데 쓰인다.

오지영 아워홈 연구개발(R&D)원 원장은 "이 기술은 프로테아제(Protease) 효소를 감압방식으로 고기에 침투시켜 육질의 부드럽기를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원하는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며 "육질이 질긴 소고기, 돼지고기 등 모든 적색육에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공 공정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기존의 열로 쪄내는 증숙 방식에 비해 영양 손실도 적다. 또 부드럽기를 균질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소화에도 용이하다. 아워홈은 이 기술을 이용해 제육불고기, 우불고기 등 육류 고령친화식품을 만들었다. 

아워홈 고령친화식품. 아워홈 제공

● 삼킴 장애 겪는 고령층 위한 음식

연하식 시장도 뜨겁다. 신세계푸드는 2020년 연하식 전문 브랜드 ‘이지밸런스’를 출범했다. 식품업계 차세대 먹거리로 여겨지는 케어푸드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이지밸런스의 ‘소불고기 무스’, ‘닭고기 무스’, ‘가자미구이 무스’, ‘동파육 무스’, ‘애호박볶음 무스’ 등 제품은 쉽게 삼키거나 혀로 가볍게 으깰 수 있을 정도로 경도, 점도 등을 조절한 식품이다. 

복지유니온의 효반에서 출시한 '야채죽'. 복지유니온 제공

죽이 대표적인 연하식이다. 2014년 사회적기업 '복지유니온'은 삼킴장애 노인들을 위한 연하도움식 브랜드 '효반'을 출시했다. 효반의 제품은 음식물의 삼킴 속도가 느린 노인들을 위한 식품이다. 특히 죽 제품은 일반죽보다는 되고 밥보다는 묽은 형태로 만들었다. 죽은 저열량에 물 비율이 높아 고령층이 삼킬 때 기도로 넘어기 쉽다.

문제는 일부 고령층은 뇌기능 문제로 기도에 죽이 들어가도 그냥 넘어가기 쉬워 폐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염증이 생겨 폐렴까지 겪는 경우가 있다. 복지유니온은 입안에 넣어도 고체 형태가 유지되고 삼킨 뒤에도 구강 내에 잔여 음식물이 거의 없도록 농도와 점성을 조절했다. 

이필수 푸른가족 대표. 이채린 기자

중소기업 '푸른가족'도 고령층을 겨냥해 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7년 말 국내 고령친화식품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령친화식품 KS를 마련했다. 죽 전문 고령친화식품 개발 기업인 푸른가족은 고령친화식품 KS 인증을 국내 최초로 받은 ‘1호 기업’이다. 1999년 창업한 푸른가족은 2010년부터 고령친화식품 개발에 나섰다. 

푸른가족 고령친화식품. 푸른가족 제공

이필수 푸른가족 대표는 2010~2012년 연구한 끝에 분말 형태를 기반으로 죽을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식품공학 전공'으로 학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쌓은 지식과 10여 년간 식품 대기업에서 일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진한 결과였다. 수백 번 직접 죽을 끓이며 실험하며 통곡물, 곡물가루, 탈지분유, 영양분 등을 적절히 배합해 죽 식감을 살리면서도 영양도 잡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죽 제품처럼 액상 형태의 죽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고 요양원이나 가정에서 직접 건강하게 죽을 만들 수 있도록 분말 형태의 죽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지표로 나타낸 '수분활성도'를 조절해 방부제가 없지만 1년 동안 세균이 번식하지 않아 유통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죽을 만드는 시간을 단축하도록 푸른가족의 제품을 넣기만 하면 죽이 제조되는 기계도 개발했다. 푸른가족은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이 기술을 '우수기술'로 인정받아 10억원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도 했다.

● 고령층 저작 능력 훈련용 식품 나온다

연화식과 연하식 외 최근에는 고령층의 인지기능을 향상시켜주는 고령친화식품도 등장하고 있다. 아워홈은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고령자의 씹는(저작) 능력을 강화해주는 훈련용 식품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화여대, 연세대 치과의대 등과 고령자의 저작 능력 데이터를 수집하고 개인별 저작 및 연하 능력에 따른 맞춤형 식이설계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단계별 훈련용 식품을 상용화 한다는 계획이다. 훈련 단계는 △영양 밸런스에 초점을 맞춘 1단계 '무스식' △저작 기능의 점진적 강화 및 영양 밸런스에 초점을 맞춘 2단계 '영양균형식' △고령자 저작 기능과 입마름 개선을 위한 3단계 '영양간식'이다.

지난해 풀무원은 노화로 감소된 인지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뉴런'을 내놨다. 풀무원의 R&D 센터인 풀무원기술원은 20년간 연구 끝에 흰목이버섯효소분해추출물이 기억력과 실행능력 등 인지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현재 여러 고령친화식품 기업들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을 대상으로 수출 시장을 넓히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고령친화식품 산업이 더욱 발전하려면 실수요자가 많은 요양원, 병원, 무료급식소 등에 고령친화식품이 납품되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고령친화식품이 아무리 중요해도 수요가 적다면 기업 입장에서 해당 산업에서 이익을 내기 어렵다. 

수요를 가로막는 것은 비용이다. 특히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요양원 식대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고령층이 요양원 등 시설에 입소할 때 지원해주는 사회보험 제도다. 단 현재 입소비, 요양보호사의 간병비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부담하나 식대는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 대표는 "일부 요양원에서 식대를 아끼기 위해 잔반을 모아 죽을 만들기도 한다"면서 "식대를 정부에서 보조해주면 요양원이 고령친화식품처럼 우수함을 인정받은 식품을 제공하는 분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성=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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