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쇼에 등장한 항공 승무원 유니폼...경쟁사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4. 7. 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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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해외여행좀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중동지역 항공사를 이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항공업계에서 보통 ‘중동 빅3’라고 하면 보통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를 기점으로 하는 ‘에미레이트 항공(Emirates airline)’, 아부다비를 기점으로 하는 ‘에티하드 항공(Etihad airways)’, 그리고 카타르 도하를 기점으로 하는 ‘카타르 항공(Qatar airways) ’, 이렇게 세 항공사를 일컫는다.

중동 ‘빅3’중 하나인 UAE 에미레이트 항공의 에어버스A380 / 사진=에미레이트 항공 홈페이지
이들 항공사는 보유하고 있는 기단도 많고 노선도 촘촘하고 세계 정상급 서비스를 지향한다. 당연히 복지나 연봉 혜택도 좋아서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우 좋은 직장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이들 항공사들이 가끔 개최하는 오픈 채용데이에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지원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중동 ‘빅3’중 하나인 카타르항공의 객실 승무원이 승객을 맞이하고 있다 / 사진=카타르항공 홈페이지
이런 빅3의 과점은 2010년대 이후 여러 항공사 투자에서 연달아 실패한 에티하드 항공이 주춤한 사이 에미레이트 항공과 카타르 항공이 치고 나가 기존 빅3에서 양강 싸움으로 재편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현재는 ‘2강 1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에티하드 항공사 역시 2030년까지 항공기단을 현재의 두 배 가까이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다시금 경쟁이 시작될 듯한 모습이다.
리야드 항공의 도전장…“다 덤벼!”
그렇지만 영원한 권력은 세상에 없는 법.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를 기점으로 하는 사우디 ‘리야드 항공(Riyadh Air)’이 지난해부터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공고한 기존 ‘빅3’에도 균열이 갈지 주목되고 있다. 리야드 항공은 기존 사우디아 항공(Saudia Airline)에 이은 사우디의 두번째 국영항공사다.
리야드 항공(Riyadh Air) 관계자들이 자사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리야드항공 홈페이지
리야드 항공에 대해 기존 중동 빅3이 두려운 눈길로 보는 부문은 바로 리야드 항공의 뒷배경이다. 리야드 항공을 처음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Mohammed bin Salman Al Saud) 사우디 왕세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등 ‘비전2030’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는 물류를 담당하는 리야드 항공의 성공이 필수적이다.

2023년 3월 빈 살만 왕세자는 공식적으로 “사우디의 물류혁신과 비전2030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최신 국영 항공사인 리야드 항공을 설립하겠다”고 직접 발표한 뒤 지원중이다.

리야드 항공의 든든한 뒷배경인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모습 / 사진=리야드항공 홈페이지
여기에 자금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이 리야드 항공을 소유하고 있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항공업은 어느정도 ‘규모의 경제’가 통하는 곳이기에, 자본을 쏟아붓고 투자를 대대적으로 하는 쪽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리야드 항공의 성공을 위해 사우디 정부는 리야드 신공항 킹 살만 국제공항 건설계획까지 발표했다. 현재 킹 칼리드 국제공항은 연간 여객 3500만명을 수용하는데 2030년 완공 예정인 신공항은 연 1억2천만명 규모로 지어진다. 리야드를 UAE 두바이 같은 국제 비즈니스 중심 도시로 키우고 저탄소 스마트 도시인 네옴시티를 건설해 미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나는 데에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파리 패션쇼를 사로잡은 ‘보라빛 향기’
이러한 가운데 최근 리야드 항공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오뜨 꾸뛰르 위크(Haute Couture Week in Fairs) 기간에 자사 승무원 유니폼을 독점 공개해서 주목을 끌었다. 오트 꾸뛰르 위크 패션쇼에서의 항공사 유니폼 공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앞으로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오뜨 꾸뛰르 위크(Haute Couture Week in Fairs)에서 모델들이 리야드항공의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워킹을 하고 있다 / 사진=리야드에어
색깔 자체는 리야드 항공을 의미하는 보라색으로 단장했다. 은은한 보라색에 단정한 복고풍이 섞인 유니폼이 참으로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트, 드레스, 바지, 신발, 모자는 물론 선글라스와 가방까지 남성과 여성을 위한 15가지 룩을 선보이며 대담하고 현대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이정도면 항공사 유니폼만으로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항공사의 새로운 유니폼은 사우디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모하메드 아시가 설립한 패션 브랜드 아시 스튜디오(ASHI Studio)와 협력하여 제작됐다. 아시는 2023년 파리 Federation de la Haute Couture(프랑스 패션 연합회)에 합류한 아랍 지역 최초의 ‘쿠튀리에(고급 여성복을 만드는 프랑스의 의상 조합에 속한 디자이너)’가 된 인물이다. 그는 항공사 유니폼 제작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2002년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색깔은 리야드 항공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단장했다. 코트, 드레스, 바지, 신발, 모자는 물론 선글라스와 가방까지 남성과 여성을 위한 15가지 룩으로 대담하고 현대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사진=리야드항공
토니 더글러스 리야드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신생 항공사가 파리의 오트 꾸뛰르 위크에서 새로운 패션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것은 리야드 항공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며 “이 패션 라인이 곧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승무원들이 뉴욕 JFK 공항과 같은 주요 공항 터미널을 지날 때, 사람들이 주목하고, 군중 속에서 정중하게 눈에 띄고, 우아한 패션 매력을 과시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실 항공사가 패션업계와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싱가포르 항공의 유니폼을 디자인한 쿠튀리에 피에르 발망, 버진 애틀랜틱 항공의 유니폼을 새롭게 디자인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일본 최대의 항공사 그룹인 전일본공수와 협업한 프라발 구룽 등 많은 디자이너가 작업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영국의 재단사이자 디자이너인 오즈월드 보아텡이 20년 만에 영국항공의 새로운 유니폼을 공개하기도 했다.

모델들이 리야드 항공의 남성 승무원과 파일럿 유니폼을 선보이고 있다 / 사진=리야드항공
유니폼 공개를 보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의상이 참 예쁘기는 한데 전문 모델이 입어서 예쁜건지, 과연 10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노동해야하는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핏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파일럿 복장도 마찬가지다. 저걸 입으면 마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될 것만 같은데 그렇게 보이는건 순전히 저 옷을 입은 남자 모델이 키크고 잘생겨서 그런게 아닐까.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일 것이다.
‘빅3’ 애써 태연…한편으로는 씁쓸
리야드항공의 광폭행보에 기존 빅3의 반응은 어떨까. 겉으로는 별 다른 논평도 없고 애써 다른 의식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직 리야드 항공이 정식 취항하려면 1년 이상 시간도 남았고, 이미 기존 빅3이 이뤄놓은 단계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크기의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을 100대 넘게 보유하고 있는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매년 스카이트랙스 선정 최우수 항공사 1~2위를 다투는 카타르 항공이 보기에는 리야드 항공은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보잉 B787 드림라이너에 칠해진 리야드 항공의 도장 / 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은근 신경은 쓰일 수 밖에 없다. 중동의 허브를 차지하려는 이들 패권 경쟁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은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빼가기도 문제다. 리야드 항공의 파격적인 패키지(연봉 조건및 복지혜택)이 최근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항공 인력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당장 내 주위에도 ‘부르면 바로 간다’, ‘이미 지원서 냈다’고 말하는 크루들도 여럿 보인다. 모두 다 기존 항공사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사실 현재 리야드 항공의 CEO인 토니 더글라스 본인도 빅3중 하나인 에티하드 항공 출신이다. 그는 이전에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에티하드 항공의 CEO였다. 또한 아부다비 공항 회사 (2013~2015)의 최고경영자였으며, 그 전에는 영국 국방부(2015~2017)의 국방 장비 및 지원 부서의 최고경영자였다. 기존 빅3의 항공경영 노하우를 그대로 물려받아 새회사를 빠르게 키우겠다는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리야드 항공의 CEO인 토니 더글라스 본인도 사실 ‘빅3’중 하나인 에티하드 항공 출신이다. / 사진=PIF
현재 리야드 항공은 보잉의 최신기종인 보잉B787 드림라이너를 40대 가까이 주문한 상태다. 여기에 향후 30대 정도를 더 주문하고 필요하면 에어버스의 최신기종인 A350 도입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광동체뿐 아닌 3-3열의 협동체 기종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말해 다양한 기단을 보유한 멀티 캐리어 군단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30년까지 전세계 100곳이 넘는 취항지를 가는 것이 목표다.

사실 리야드 항공은 중동 뿐 아니라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도 눈여겨 보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소비자 입장에서 항공사 간 경쟁은 좋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리야드 항공이 성공적으로 잘 안착해서 소비자에게 좋은 가격에 항공권을 제공하고 다양한 선택권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야드 항공의 포부는 계획대로 잘 될 것인가.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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