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과 농림부 '물가 논쟁'서 빠진 것 [추적+]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소장, 김정덕 기자 2024. 7. 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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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한은과 농림부, 농산물로 설전
국민 삶 개선 위한 건설적 논쟁
다만 근본적 문제 함께 짚어야
조사에 따라 달라지는 농민 수
베일에 가린 비효율적 농업예산
바른 데이터에서 바른 농정 시작

얼마 전 한국은행과 농림축산식품부가 흥미로운 논쟁을 벌였다. 주제는 물가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고물가 국면에서 벗어나려면 농산물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우리나라 농식품 물가 수준이 높은 건 아니다'고 반박한 게 발단이었다. 민생을 살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처간 논쟁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논쟁에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 아쉬움이 남는다. 그 핵심 쟁점을 얘기해보려 한다.

올바른 통계가 있어야 올바른 농업정책도 나올 수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식료품ㆍ의류 등 필수소비재 가격은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높은 생활비 수준을 낮추기 위해 어떤 구조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해볼 때가 됐다."

지난 6월 18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같은 날 한은은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도 내놨다. 보고서엔 대략 이런 내용을 담았다.

"우리나라의 전체 물가 수준은 주요 선진국의 평균 정도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가격 수준이 현저히 높거나 낮은 품목이 많다. 의식주 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매우 높고, 공공요금은 매우 낮다. 이런 가격 격차는 예전보다 확대됐는데, 여기엔 낮은 생산성과 개방도(과일), 거래비용(농산물ㆍ의류), 정책지원(공공요금)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 총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보고서로 제시한 셈인데,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의 고물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게 한은의 주장이다.

그러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반박에 나섰다. 송 장관은 다음날인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농업 전문가는 아니다"면서 "농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비판했다.

송 장관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통계를 들어 "우리나라 농식품 물가 수준은 38개 OECD 국가 중 19위"라면서 한국의 식료품 가격이 OECD 평균보다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특정 시점(2015=100) 대비 2022년의 물가변화를 따져봤더니 그 상승률이 높지 않았다는 거였다.

물론 두 주장 모두 한계는 있다. 한은의 데이터는 각국의 소득 수준을 반영하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물가를 서울을 기준으로 추정해 물가가 과대 추정됐을 수 있다. 한은이 개방도(수입 개방의 정도) 지표를 거론하면서 수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지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교우위와 비교열위에 있는 사업을 고려해 역대 정부들이 농산물 수입을 제한해 농업을 보호해온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농산물 논쟁은 의미가 있다.[사진=뉴시스]

송 장관이 제시한 근거도 한계가 적지 않다. 송 장관이 제시한 FAO 통계는 물가지수의 상승률을 비교한 거다. 따라서 상승률이 같다고 해도 실질적인 물가 수준이 다를 수 있음을 간과했다.

예컨대 A국가와 B국가의 사과 가격이 각각 1000원과 2000원인 경우, 똑같이 50% 올라도 A국가에선 1500원, B국가에선 3000원이 된다. 상승률이 같다고 해서 가격도 같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논쟁을 정책 충돌이나 혼선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한은이 다양한 입장에서 의견을 표명하고 논쟁을 이끌어내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어떤 정책이 국민에게 이익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한은과 농림부의 논쟁은 결국 정부의 농업정책 전반을 둘러싼 갑론을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전에 좀 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통계의 문제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우리나라 농민 수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통계가 없진 않다.

통계청이 4월 발표한 '2023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 수(2024년 4월 기준)는 99만9000가구다. 2010년 117만8000가구에서 10년여 만에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통계청은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난 농민들이 늘어나면서 전년 대비 2만4000 가구가 줄었다"면서 "농가 수가 100만 가구 아래로 내려온 건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49년 이래 최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자료에 따르면, 농업경영체(농가) 수는 2023년 기준 182만2483가구에 달한다. 자신들이 '농업을 하고 있다'고 신고한 가구가 그만큼이라는 거다. 농가 수 통계가 이처럼 차이 나는 건 농지 규모에 따라 기준이 달라져서다. 통계 기준을 잡고 명확한 통계를 내야 그에 맞는 정책을 펼 수 있는데, 통계 기준조차 합의한 적 없으니 통계가 부실해지는 셈이다.

둘째는 농업예산의 비효율성 문제다. 2024년 예산안에서 농업예산은 18조3392억원(농림부 예산 기준)이다. 농업 관련 기금은 8조4428억원이다. 기금별 여유자금까지 포함하면 올해 기금 규모는 이보다 훨신 큰 12조8726억원이다. 중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여유자금을 쌓아두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농업 분야는 세금 감면도 적지 않다. 2024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면세농산물 등 의제매입세액 공제 특례(일정액을 매출세액에서 공제해주는 제도)'에 3조6593억원, '농ㆍ축ㆍ임ㆍ어업용 기자재 부가세 영세율(매출세액을 0으로 계산해 매입세액을 환불받는 제도)'에 2조4789억원, '자경농지 양도소득세 감면'에 1조3822억원 등 총 7조5204억원의 세금을 감면해준다.

물론 국내 농업의 자생을 위한 지원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말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을 펴려면 진짜 농업을 하는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산업적 의미의 농민을 지원하고, 소규모 농민은 복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현재 정부는 농가 차량의 경우 세금을 면제해주고 있지만, 텃밭을 경작하는 이들까지 혜택을 보면서 상당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누수를 막아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아울러 보조금과 수입장벽이 농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현실에 맞게 정책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은과 농림부의 논쟁은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농업정책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소장
jcs619@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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