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내전’에 둘로 쪼개진 與… ‘보수의 심장’ 영남은 尹·韓 중 누구 손을 들어줄까
‘韓 배신자 프레임’부터 ‘박근혜 탄핵 재현 우려’에 ‘김건희 동정론’까지 각양각색 민심
(시사저널=대구·부산=변문우 기자)
보름도 남지 않은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예기치 못한 '메가톤급 변수'가 발생했다. 6개월 전 총선 정국에서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사과 의향이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냈으나 무시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해당 논란이 계파 간 '책임론' 공방으로 번지며 당 안팎을 시끄럽게 하는 가운데, 전당대회 당락을 결정할 '영남' 당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보수의 심장인 영남의 당심이 이 변수에 흔들렸을지, 오히려 선택이 더 쉬워졌을지에 따라 판세도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7월9~10일 이틀간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영남 당원들을 만나며 '문자 파동' 전후 달라진 분위기를 접하고 왔다.
정국 뒤덮은 金 여사 문자…與 전쟁 같은 내홍 불거져
여권을 강타한 '김 여사 문자 논란'은 최근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정치권 전체 화두로 급부상했다. 지난 1월 중순,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의사를 당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동훈 후보에게 문자로 여러 차레 보냈지만 한 후보가 이를 '읽씹(읽고 무시)' 했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당시 김 여사는 "모든 게 제 탓이다.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리면 따르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한 후보는 "사적 연락에 응했다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해당 문자들을 무시했다는 것이 사태의 요지다.
해당 논란은 트로이 전쟁 때의 '황금사과'처럼 일파만파 커지며 여권을 그야말로 전쟁터로 만든 모양새다.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한동훈 후보는 7월10일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등에서 문자를 흘린 배후로 친윤(親윤석열)계 세력을 지목하며 "오로지 절 낙선시키기 위해 (반대 측에서) 6개월 전 문자를 공개했다.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작심 비판했다. 반면 한 후보의 경쟁자들은 해당 이슈를 연일 도마에 올려 "정치적 판단 미숙" "사실상 해당(害黨) 행위"라며 한 후보를 타깃으로 '배신자 프레임' 공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쟁 같은 진흙탕 공방전에는 원내 계파 세력들은 물론 원외 인사들까지 참전했다. 이에 여권은 '제2 연판장' 사태 직전까지 갈등이 치달았다. 문자 논란이 확산하자 일부 친윤계 원외 당협위원장은 7월7일 한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선관위의 경고로 회견이 취소되자 한 후보는 "여론이 나쁘다고 취소하지 말라"며 정면으로 맞받았다. 원내에서도 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는 권성동·김기현 의원 등이 "한 후보의 사과를 촉구한다"며 공개적으로 나서자, 친한(親한동훈)계 인사들은 "자해극을 하지 말라"며 받아쳤다.
진흙탕 형국이 이어지자 여권 내부에서도 "오히려 카운터파트인 더불어민주당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꼴"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과 비슷한 시기에 전당대회를 치르는 민주당은 최근 이재명 전 대표의 이례적 당권 연임으로 '일극 체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스스로 당내 논란을 생산해 부정적 여론을 흡수하면서 민주당의 논란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분위기다. 결국 지난 총선에 이어 전당대회에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 덕분에 '반사이익'을 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자 논란'이 여권 전당대회 표심 기류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앞서 여권 전당대회는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가 짙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는 부동의 차기 당권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문자 논란을 기점으로 당내 각 세력은 '아전인수'식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친윤계에선 "'한동훈 총선 책임론'에 쐐기를 박을 것"으로 보는 반면, 친한계에선 "논란 배후로 의심되는 친윤계가 자충수를 둔 격"이라며 '어대한' 기류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자 파동 지켜본 영남 민심…'한동훈 대세론' 밀까, '대역전극' 쓸까
특히 이들이 눈여겨보는 지역은 바로 '영남'이다. 전당대회에서 당원 투표를 80% 반영하는 만큼, 전체 당원의 약 40%가 결집된 영남은 경선 당락을 결정지을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친윤계 후보들은 영남 당심을 확실히 잡아 '어대한' 기류를 바꿔놓겠다는 계획인 반면, 한동훈 후보 측은 영남까지 잡으며 '대세론'에 쐐기를 박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이 동상이몽을 꾸는 상황에서 '문자 논란'은 영남 당심에 어떤 바람을 일으켰을까.
"김건희 여사가 우리 서문시장에 오든 말든 좋아할 사람 별로 없어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을 텐데 자꾸 '문자' 논란까지 부스럼을 만들어서 대통령이 가는 길을 막잖아요. 그렇다고 대통령도 이재명이 저렇게 날뛰는데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논란만 만들고 있으니, 대구 사람들은 속에 천불이 나지요. 그나마 이재명에 맞서줄 다음 '보수의 희망'으로 한동훈씨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있어요."(대구 서문시장 상인 정모씨)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수차례 찾은 대구 서문시장. 시사저널이 7월9일 이곳에서 만난 'G 잡화점' 상인 정씨(여성·50대)는 최근의 여권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해당 가게는 지난해 김 여사가 직접 방문해 양말 등을 구매한 곳임에도 김 여사에 대해 박한 평을 내린 것이다. 윤 대통령이 들렀다 간 'H 국수점포' 상인 이모씨(여성·60대)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정치를 끊으려 하고 있다. 보수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맞나 싶다"고 작심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7월2~4일 전국 유권자 1002명 대상 진행)에서 TK 지역 유권자들의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3%에 그치며 부정평가(59%)와 오차범위(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밖인 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통상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최소 과반 지지율을 먹고 시작한다'는 정계 불문율마저 통하지 않은 셈이다.
낮은 尹 지지율 '반사효과' 누리는 韓, '배신자 프레임'은 부담
TK 당원들이 윤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국회 입법권 독주를 하고 있는 '이재명 대항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이 주로 거론됐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당권 주자 중 한동훈 후보가 그나마 보수를 살릴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문시장 상인 이씨는 "물론 이재명 전 대표가 너무 강력하게 버티고 있고 야당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한 후보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기대는 해볼 수 있다"며 "시장 사람들도 임팩트 있는 한동훈 후보를 많이 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총선 막판까지 승기를 장담할 수 없었던 PK 지역에선 윤 대통령과 친윤계에 대한 비토가 한층 더 강하게 나왔다. 18석이 걸린 부산의 경우는 앞선 총선에서 '낙동강벨트'를 비롯해 최대 5곳 이상이 뒤집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바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북구갑 1석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구 방어전에 성공했으나, 당초 예상대로 PK에서 8곳만 민주당에 더 넘어갔어도 국민의힘은 탄핵 저지선인 '100석'마저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총선 결과를 봐도 '낙동강벨트'인 사하갑(0.8%포인트)은 물론, 보수세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중·동부산에서도 부산진갑(5.57%포인트), 해운대갑(9.09%포인트) 등 민주당 후보와의 표차가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지역이 상당수 있었다. 두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성국·주진우 의원은 직간접적으로 한동훈 후보 캠프에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해운대 지역 당원협의회 관계자도 시사저널에 "윤석열 대통령이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든 한동훈 후보로 갈아탈 준비가 돼있다. 그것이 보수정당 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PK의 당심"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기류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윤석열 정권에 실망한 영남권 당원들이 윤석열 이후 정권을 생각할 것"이라며 "그 수단으로서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한동훈 후보가 적합하다고 볼 것이다. 이미 다른 당대표 후보들도 영남권에 연고가 대부분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문자 논란은 오히려 친윤계에 전혀 득이 될 게 없는 '자충수'였다. 이번 일로 '한동훈 대세론'에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고 평가했다.
"원래 한동훈 팬이었다가 이번에 김 여사의 사과 문자를 무시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어요.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예의가 없잖아요. 나중에 당대표 돼서 대통령과 대립하면 민주당과 어떻게 싸우겠어요. 저러다가 대통령 탄핵되면 또 '박근혜 시즌2' 되는 게 아닌가 걱정되지요. 아직도 보수층에는 '탄핵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데, 지금이라도 '한동훈 당대표'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대구 국민의힘 책임당원 전병남씨)
영남 일각에서는 이처럼 정반대의 당심도 함께 감지됐다. 보수층을 타깃으로 한 '김 여사 동정론'이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산 해운대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당원은 시사저널에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도 사실 다른 정치인들은 마누라(부인)에게 몇천만원짜리 가방도 사주고 그러지 않나. 특히나 야권에서 함정을 파놓았던데 그걸 가지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도 문제다. 또 거기에 동조해 문자를 패스한 한동훈 후보도 민주당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韓에 실망…韓에 맞설 3자 단일화 요구 커"
여기에 영남권에선 여전히 '탄핵의 강'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만큼, 한동훈 후보가 대표가 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구 국민의힘 책임당원 전씨는 "한 후보 쪽으로 돌아선 원내 사람들이 많은 만큼 탄핵 저지선도 넘길 수 있다"고 염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 후보에 실망한 일부 당원들이 원희룡·나경원·윤상현 단일화를 목표로 결선투표 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최근 당원들의 분위기도 함께 전했다.
이들의 의중을 반영하듯 영남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연일 '한동훈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다. 홍 시장은 한 후보에게 "주군에게 대들다 폐세자가 된 황태자" "집권당 총선을 유례없이 말아먹은 그를 당이 다시 받아들일 공간이 있을까" "문재인 사냥개 노릇 하던 얼치기 검사 출신"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여왔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도 "아무리 급해도 할 때가 있고, 참고 견딜 때가 있다"며 한 후보 저격에 가세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한동훈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된다면 당정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준석-윤석열' 갈등 시즌보다 더 엄청난 이벤트가 벌어질 것이다. 차기 권력과 현 권력의 굉장한 다툼이 벌어지는 셈"이라고 봤다. 이어 "특히 '채 해병 특검법'에서도 여권 이탈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후보가 채 해병 특검 내용을 바꿔서 추진한다면 원내에 많이 포진된 친한계 의원들이 이탈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전당대회 후보들은 7월11일 진행된 PK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느낀 영남의 당심 기류에 대해 각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으며 여론전을 펼쳤다. 한동훈 후보는 같은 날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보수 세력의 중심이고 심장과도 같은 영남에는 거대 야당과 맞설 수 있는 사람, 보수 재집권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기대감이 있다"며 본인의 강점을 어필했다. '한동훈 러닝메이트'로 꼽히는 진종오 청년최고위원 후보도 같은 날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영남 당원들은 그 누구보다 당의 방향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 보수의 심장은 언제나 옳았다"고 기대했다.
반면 반한(反한동훈)계 후보들도 '문자 논란' 등을 고리로 영남 기류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자신하는 분위기다. 원희룡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전한 인요한 최고위원 후보는 같은 날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영남에서 우리 쪽으로 아주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낀다"며 "영남 당원들이 보기엔 원희룡 후보 외에 다른 후보들은 정도를 가는지 의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원 후보가 소통을 가장 잘한다. 윤석열 정부와도 소통을 가장 잘해서 남은 임기 3년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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