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내린 정부에 의료계도 호응하고 끝내자 [핫이슈]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했던 말이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4개월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 많은 국민이 이 말에 동감하게 됐을지 모른다. 정부가 윽박지르고, 사정 해도 굽히지 않는 의사·의대생들 투쟁력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전공의·의대생들 진로를 배려해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꿈쩍도 않는다. 정부는 의사 국시 횟수까지 늘리려 애쓰지만 전공의 95%가 국시를 보기 위한 개인정보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애초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가 취한 방식들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명 증원 숫자를 불가역적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발표해서 의료계와 타협할 여지를 없앤 것이 대표적이다. 또 의대 교수들을 배제한 채 총장 임의로 학교별 의대 증원 숫자를 제시한 것은 의대 교수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다. 정부가 2027년까지 필요한 신규 의대 교수 1000명에 대한 대학별 배분 계획을 조만간 낸다는데 이 역시 기존 교수들 의향을 묻지도 않는 정부 일방 행동으로 화를 자초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야 의대 교수들이 성심을 다해 명의를 길러내려 할지 의문이다. 증원이 돼도 지방과 필수분야 의사들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이에 처음엔 큰 소리 뻥뻥 치다가 꼬리내린 정부 태도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법과 행정절차 집행에 예외를 둬 엄격함과 공평함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에다 결과마저 처참하니 정부 위신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태를 끝내보려는 정부 노력에 계속 어깃장을 놓는 의료계 태도가 환자를 포함한 국민 입장에선 더 괘씸하다.
정부는 의료계가 집단행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출구를 수차례 제시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 미래를 감안해 내놓은 방안들을 보면 눈물겨울 정도다. 다른 직장인이나 타전공 학생들이 특혜나 차별대우라며 의료계처럼 반발하지 않는 게 다행일 뿐이다.
교육부가 10일 발표한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방안은 왠만하면 집단유급을 면해주겠다는 게 요지다. 많은 의대생들이 1학기 교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만큼 두 학기로 구분된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꿔 성적 처리 시한도 내년 2월 말까지 연장한다. 어떻게든 학점을 딸 수 있게 야간·원격·주말 수업도 가리지 않는다. F학점을 받아도 유급 대신 ‘미완’을 뜻하는 I학점을 줘서 2학기나 2학년에 가서 수강할 수도 있다. 올해 의대 정원 3058명이 전원 유급되면 내년 증원된 신입생 4567명을 더해 총 7600여명이 함께 수업 듣는 것을 우려한 조치다. 국민 건강을 다룰 의료인 양성을 위한 고육책이지만 이래도 복귀 않고 ‘콩나물 교실’을 택한다는데 정부가 뭘 더 걱정을 해주나.
의사들이 2000명 증원 저지엔 실패했어도 이 정도면 체면 구기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정부는 당근들을 제시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정부와 추가 논의를 하면 된다.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대책 패키지가 형편없다고 떠들 게 아니라 의료개혁 특위에 참여해 머리를 맞대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결정났지만 이후 정원 규모는 협의할 수 있다고 정부는 밝혔다. 의사 아니면 어떤 직종을 상대로 정부가 이같은 저자세로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할 만큼 했다. 정부를 쩔쩔 매도록 만들지 않았나. 하지만 환자들을 포함한 국민도 이젠 지쳤다. 누구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도 피곤하다. 정부의 온건한 대응도 어쩌면 이래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쯤 해서 끝냈으면 한다. 의사가 국민 생명을 다루는 매우 소중한 집단이지만 그들이 맡은 역할을 거부한다면 공동체 평안을 파괴할 뿐이다. 최근 검사들에 대한 야당의 탄핵 추진에 검찰이 억울하다고 태업으로 맞선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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