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元 ‘네거티브’, 부자 몸조심 韓 ‘민심론’ 꿈쩍 않는 ‘어대한’ 판세
나경원·윤상현, ‘관록의 노련미’ 보였지만 지지율에는 큰 영향 못 미쳐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당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비전과 능력의 경쟁으로 전환해 달라는 권고를 받았기에 모범을 보이겠습니다"(원희룡 후보), "네거티브하지 않겠다는 것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가족을 동원해 공천에 개입했다는 거짓말 한 것 사과하시죠"(한동훈 후보).
7월9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위한 첫 TV 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와 한동훈 후보 간에 오간 말이다. 원 후보는 그간 한 후보를 향해 거센 공세를 펴왔던 태세를 180도 바꿔 정책 토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고, 이어진 주도권 토론에서 한 후보에게 '물가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한 후보는 인신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 최근 근거 없이 '가족 동원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어떤 근거를 갖고 한 의혹 제기냐고 끈질기게 묻는 한 후보에게 원 후보는 끝까지 그와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원 후보의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당황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우물쭈물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실제로 '거짓 선동'을 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말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 후보는 토론회 직전까지 한 후보를 향해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대처를 비판하고 비례대표 '사천(私薦)'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네거티브→정책 질의→네거티브…바뀌는 元의 전략
더군다나 원 후보가 정책 경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인 7월10일 부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다시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그는 이날 한 후보를 향해 "혹시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끌려고 한 게 아니냐" "말이 안 되는 변명은 그만하라"며 비난하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재차 사천 의혹을 제기했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를 꺾고자 연일 '한동훈 때리기'에 나섰다가 오히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 태세 전환을 했지만 그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정적 장면이자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정치는 메시지와 일정, 전략 등의 총합으로 이뤄진 종합예술이다. 선거 때 이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중적 주목도가 높은 TV 토론회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4명은 '4인4색'이라 할 만한 메시지를 내놨다. 여기엔 각자의 속내와 전략이 깔려 있다.
2위인 원 후보는 사정이 급하다.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다 효과가 없자 '정치 초보' 한 후보를 공략하는 경제정책 질의를 내놨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 후보는 네거티브 공세를 차단하며 '민심' '혁신' 등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총선 패배 책임론,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등 리스크 있는 이슈는 최대한 멀리하면서 '부자 몸조심' 하는 전략이다. 자신이 보수 혁신의 적임자임을 부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무계파'를 강조하는 양측 모두를 공격하며 차별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원후보는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미디어 노출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한 후보도 3 대 1 구도로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원색적인 표현 등 공세의 강도가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았다. 7월10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원 후보를 향해 "제 가족이 공천에 개입했다고 말한 뒤 계속 도망만 다닌다"며 "오물을 끼얹고 도망가는 방식, 이것이 자랑스러운 정치냐"고 비꼬았다. 이어 "허위사실 유포는 심각한 범죄"라며 다시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김 여사 문자' 논란에 대해서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내밀한 문자를 공개하는 것은 대단한 구태정치"라며 "공작에 가까운 마타도어(흑색선전)"라고 재차 비판했다.
TV 토론회에서도 한 후보는 "형수님이 다섯 번이나 문자가 왔으면 '공적으로 논의해서 답을 드리겠다'라고 답이라도 하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는 윤상현 후보의 비판을 듣고는 경쟁 후보들을 향해 "저 말고 실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김 여사 사과 문제에 대해) 행동을 한 분 있었나"라며 "세 분 뭐 하셨나. 사과가 필요하다 생각했다면 그때 행동을 하셔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반격했다. 또 윤 후보가 "당시 우리가 인천에서, 동작을에서 열심히 선거를 치렀었다"고 답하자 한 후보는 "세 분 제가 전국으로 다니고 있을 때 왜 (총선) 지원유세를 안 하셨나"라고 공격해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험지'에서 애쓰는 후보들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이에 나경원 후보는 "저는 사과 요구를 분명히 했었다"며 발끈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나 후보와 윤 후보는 노련미와 관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로 '한동훈 대 원희룡' 구도의 언쟁으로 둘 간에 공격과 방어가 오가는 동안 나·원 후보는 방어 없이 두 후보를 공격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면서 점수를 딸 수 있었다.
도합 '13선'과 싸운 한동훈…韓의 당대표 적합도 45%
그럼에도 선수 합이 '13선'이나 되는 원희룡·나경원·윤상현 3명의 후보가 선출직 경험이 없는 한 후보에게 이기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동훈 vs 반(反)한동훈'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 구도를 감안할 때 한 후보가 경쟁 후보들을 상대로 무난히 방어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와의 문자 파동에도 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7월7~8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2003명 가운데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분류되는 1074명을 대상으로 당대표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한동훈 후보가 45%로 1위에 올랐다. 다음은 원희룡 후보 11%, 나경원 후보 8%, 윤상현 후보 1% 순었으며 나머지 세 후보의 적합도를 모두 합쳐도 한 후보에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한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61%가 한 후보가 적합하다고 답했다. 그 뒤로 원 후보 14%, 나 후보 9% 등 순이다.
TV 토론회와 합동연설 또한 결과적으로 '어대한' 기류 변화에는 큰 영향을 못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윤(친윤석열계)' 출격 선수인 원 후보가 첫 TV 토론회에서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최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흐름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 한동훈 후보가 총선에 지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타격을 줬을 테지만 한 후보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가 나쁘다는 방향으로 가면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차별화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메시지가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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