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먹고 춤추는 것도 명상…‘노는 것’도 깊이가 있어야죠”[M 인터뷰]

박동미 기자 2024. 7. 12. 09: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M 인터뷰 - 홍대 거리서 ‘게스트하우스 사찰’ 운영하는 준한스님
친구 의식불명 모습 본 후 출가
16년 산사있다가 2022년 하산
‘명상게하’만들어 MZ들에 인기
기쁨도 슬픔도 깨어나야 할 꿈
‘순간에 충실한 삶’을 배웠으면
세상 힙한곳마다 분원 만들고파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에 자리한 ‘명상 게스트하우스’ 저스트비에서 만난 준한 스님(맨 앞)이 합장하고 있다. 그 뒤에 선원을 함께 이끄는 여러 스님과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손가락 하트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콘셉트’로 아시는 분들도 첨엔 많았죠. 근데 여기는 엄연한 절이에요. 조계종 소속 사찰이고, 세계 최초 ‘명상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알고 왔어도, 익히 들었어도, 처음 마주하는 낯설고 흥미로운 풍경에 눈이 좀 커진 걸 알아차렸던 걸까.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저스트비 홍대선원’에서 만난 준한 스님(46)은, 2022년 선원 개원 후 수없이 반복해 ‘공식’ 소개말처럼 된 인사를 먼저 건넸다.

◇춤추고 먹고 ‘노는’ 선원… “삶 자체가 명상이 되면 고(苦)도 없지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5분. 절이자 명상센터, 찻집이며 숙박시설인 ‘저스트비(just be)’. 청춘들이 집결하는 동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형 사찰이다. 고요한 산사는 아니지만, 최근 불교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며 주목받는 곳 중 하나다.

문을 열자 커다란 테이블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사람들이 합장을 하며 반긴다. 일본, 멕시코에서 온 스님들과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 숙박객들이 어우러져 차를 마시고 있다. 이질적인데 자연스럽고, 새로운데 또 평범하다. 이런 순간이 바로 ‘Just Be(그저 존재하라)’인가. 무리에 원래 있던 사람처럼 슬쩍 끼어들어 준한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노는 것에도 깊이라는 게 있어요. 여긴 그걸 깨닫는 공간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래서 여긴 노는 곳인지, 깨닫는 곳인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와 같은 원초적 질문과 함께 무장해제 된다.

“걷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명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순간에 충실한 삶을 배우고, 또 전하는 절입니다.” 이 말에 저스트비의 운영 철학과 지향점이 담겨 있다. 스님은 “누구나 슬픔, 외로움, 괴로움을 안고 산다. 그걸 다스리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선원은 법회도 열고, 그림을 그리고, 태극권도 하고, 춤추고, 책읽고, 걷고, 먹고, 수다 떨고 ‘논다’. 대충 그냥이 아니라 전심으로,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스리는 실제 행위로서의 명상 프로그램도 있지만, 스님은 ‘노는 시간’을 강조한다. “뭐가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명상이거든요. 잘 노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엔 불교는 ‘도(道)’라고 여기는 스님의 철학이 반영됐다. 스님은 “한마디로 ‘way of life’, 즉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게 요즘 20∼30대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요. 불교 인기는 한국뿐 아니라 수년 전 해외에서 시작된 흐름이기도 합니다.”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 겪고 귀의…“나를 구하고 남도 살리고 싶었어요”

스님이 이런 형태의 사찰(이자 숙박시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20여 년 전 미국 유학 생활 때다. ‘모태 불자’였던 스님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 대학 시절 큰 교통사고를 겪었는데, 당시 동승한 친구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후 수행의 길로 들어섰고, 하버드대 출신으로 잘 알려진 현각 스님을 은사로 모시며, 2006년 정식 출가했다.

스님은 “사실 나부터 살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모든 순간을 명상처럼 받아들이는 구도자의 삶을 살지만, 당시 그에게 삶은 고(苦)였고, 그것이 그저 깨어나면 그만인 ‘꿈’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 기쁨도 슬픔도 불안과 근심, 걱정도 모두 ‘꿈’, 그러니까 ‘가짜’였다. 깨어나고, 깨어버리면 그만인 것들. 스님은 “그걸 알고 난 후 이제 남을 살려야지 결심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려워진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했고, 사찰로 탈바꿈시킨 후 다시 청년들이 모이게 했다. 과거와 다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머무는 동안 표정이 바뀌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기쁘죠. 삶이 바뀌었다는 숙박 후기는 읽고 또 읽는답니다.” 현재 연간 6000여 명이 저스트비를 다녀간다.

저스트비는 스님에게 또 다른 ‘수행’이기도 하다. 스님에겐 북적대는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상이 산사에서의 수행보다 난도가 높다. “저는 자연에서 홀로 지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인터뷰를 엿듣던 직원들이 이 말에 웃는다. ‘스님 MBTI가 ESFP인데 무슨 말씀이시냐’는 것. 찾아보니,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저스트비에 딱 맞는 성격 아닌가 싶지만, 스님은 “매일 여기가 수행터”라고 했다. 그렇지만 “수행은 어려울수록 좋은 것이고, ‘대중살이’야말로 진짜 공부다”라고 했다. 대중살이의 어려움은 이웃 주민과의 관계에서도 빚어진다. 스님은 사찰 공사 당시 소음과 길고양이 문제 등으로 이웃들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덕분에 동네의 격이 높아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가족, 이웃과 잘 못 지내면서 명상하고 수행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저스트비의 법회에선 불자가 아닌 이웃을 배려해 목탁 소리를 내지 않는다. 또 전 세계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환영하지만, 술과 혼숙은 엄격하게 금지한다.

◇화도 집착도 없지만 꿈은 있어…“부처님 고향에 게스트하우스 차리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느냐, 내가 꿈꾸던 사업모델과 닮았다, 나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 다양한 동기와 목적을 품고 저스트비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상과 감탄, 견해와 바람 등을 풀어놓곤 한다. 그중 스님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으니, 바로 ‘분원은 언제, 어디에?’라는 것. 좋은 것이니, 더 많이 퍼졌으면 하는 이들이 많다.

“글쎄요. 사찰이 아니라 내 마음부터 늘려야 할 텐데요.” 홍대선원의 일차적 목적이 ‘자기 구제’에 있다고 한 스님은, 이번에도 자신의 마음부터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세상이 ‘힙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곳마다 ‘저스트비’ 같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양양·송도·해운대·전주·이태원 같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은 ‘국제적인’ 지역들 말이다. 스님은 지금 딱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둔 건 아니라고 했으나, 홍대선원의 사례를 보면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것이 만들어낼 흥미로운 풍경이 벌써 머리에 그려진다. 그런데 스님은 “사실 피를 끓게 하는 꿈은 따로 있다”며 이번엔 달뜬 표정이다. “히말라야에 가고 싶어요. 부처님 고향인 네팔 룸비니 동산엔 세계 각국의 절이 있는데, 아직 한국 절은 없거든요.”

2006년 출가 후, 16년을 산사에서 수행한 스님은, 그 기간 중 1년 반을 네팔에서 보냈다. 안나푸르나 아래 룸비니 동산을 누볐고, 해발 1000m에 위치한 포카라에서 수개월을 살았다. 불자들뿐 아니라 산과 자연을 갈망하는 이들의 최종 목적지, 성지 같은 곳. 스님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며 “그곳에 한국 절이 생긴다면, 홍대선원 같은 게스트하우스 사찰이면 좋겠다”고 했다.

화도 집착도 없다는 구도자가 발설하는 ‘뜨거운 소망’. 욕망 아니냐 물으니, 이 열망은 그저 ‘꿈’이라고 한다. 모든 게 꿈이니까 깨어나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니, 스님은 “그러다 허무주의 된다”며 웃는다. “어차피 꾸는 꿈, 의미 있게 꾸면 좋지 않겠냐”는 반문이다. 동문서답인지, 현문우답인지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데, 스님은 “ 확실한 건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다. “이왕 살아있으니, 재미있게 살자는 겁니다. 순간에 집중하고, 온전하게 즐기자는 겁니다. 인터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죠? 그 시간도 벌써 과거가 됐네요. 이제 이 순간도 흘려보냅시다.”

◇‘힙’ 불교의 ‘힙’ 스님?…“때가 왔고, 각자 할 일을 할 뿐”

선원이 알려지면서 준한 스님의 이름도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또 최근 2030세대와 호흡하며 불교가 ‘힙’ 컬처로 떠오르면서, 스님은 관련 행사에도 얼굴을 자주 드러내게 됐다.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이라는 MBTI 검사 결과가 자꾸 떠오른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최근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인 선명상 보급, 이른바 ‘K-명상 세계화 프로젝트’에서도 정예 멤버다. 진우 스님이 소집하는 관련 회의에 출석하며, 늘어나는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 사찰 미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에서는 청춘 남녀들을 명상의 세계로 안내했고, 불자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들의 모임인 ‘정각회’에서도 선명상 법회를 이끌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더니, 이쯤 되면 상당히 ‘조직 친화형’ 아니냐 했더니, “한때는 불만도 많고, 비판도 많이 하는 편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뭐라도 하려는 마음들을 알게 되면서 점점 ‘대승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에 부응하자, 우리가 쌓아온 모든 걸 중생의 마음 건강을 위해 쏟아붓자, 라는 일념이 요즘 불교계 전반의 공통된 감각이에요. 저도 힘이 되고, 나누고 싶어요. 때가 이르렀고,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해야지요.”

홍대선원 1층 티 테이블에 모인 준한 스님과 직원들. 윤성호 기자

“자꾸 화나고 욱한다면… 10~20분 ‘멍 때리기’부터 시작해보세요”

■ 준한스님이 전하는 명상 tip

“한번 해보세요. 또 한번 해보세요. 그래도 어려우면 그냥 ‘저스트비’로 오세요.(웃음)”

준한 스님은 자꾸 화나고, ‘욱’하고, 그래서 마음에 늘 파도가 치는 현대인들을 위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명상법을 소개했다. 그런데 스님은 방법보다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몇 번을 강조했는데, 바로 “명상은 절대 강제적이거나 조건적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쓸데없는 생각을 줄이는 거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생각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스님은 우선 자신의 명상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시작은 10∼20분 정도, 말 그대로 ‘멍’한 상태로 있어 보는 것이다. ‘멍때리기’ 대회가 있을 정도로 우리의 머릿속은 멈추고 비워지는 때가 없다. 스님은 “1분 동안에도 온갖 상념과 상상과 걱정, 근심이 몰아칠 것이다”라면서 “그걸 그대로 두지 말고, ‘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군’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라”고 했다. “잘 안 되면 호흡에 집중해 보세요. 따뜻한 바다에서 스노클링 해보신 적 있나요? 물속엔 나의 숨소리와 눈앞에 헤엄치는 열대어들만 존재하잖아요. 그런 순간처럼 말이에요.”

눈을 감고 귀를 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님은 “바람 소리, 공사 소리, 음악 소리, 말소리…. 그렇게 ‘세상의 소리’를 들어본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잡생각’이 아니라 의식과 의지가 반영된 ‘진짜 생각’을 오가는 ‘자유’를 터득하게 됩니다.” 또한 스님은 “목표를 낮게 잡고 시작하라”면서 “첫 명상은 1분, 그리고 3분 식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명상이 유행하고, 불교계의 선명상 보급이 본격화된 요즘, 각종 명상 프로그램들이 불교라는 ‘도’를 가볍고 납작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 하니, “열 사람 중 두 사람만이라도 깊고 좁은 길을 찾는다면, 그걸로 됐다. 그게 다음 ‘길’로 이어지는 인연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