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기 위해, 하기 위해… 세상을 변화시킨 ‘욕망’[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7. 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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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에 대하여
서울대 인문대학 엮음│사회평론아카데미
인문대 교수들이 탐구한 욕망
춘향전의 사랑, 신분극복의 힘
소유욕은 한국 車산업 일으켜
금욕은 사회활력 떨어트릴수도
욕망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대상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삶, 나아가 인간의 역사는 ‘욕망’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먹기 위해, 갖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식욕, 색욕, 재욕, 명예욕, 수면욕 등 욕망의 다양한 형태는 삶의 원동력이자 삶의 의미다. 이강재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필두로 13인의 서울대 인문대 교수가 참여한 이 책은 욕망이 인간의 영원한 화두이자 인문학의 주제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에 관해서 탐구한 책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욕망은 인간 그 자체이다.”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에서 욕망은 흔히 ‘사랑’과 연결된다. 정길수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운영전’의 궁녀 운영과 ‘춘향전’의 기생 춘향을 모두 사랑의 욕망으로 사회의 제약을 극복해야 했던 인물로 제시한다. 소설에서 춘향은 사또 변학도의 만행과 2년이 넘는 감옥 생활에도 어사 이몽룡을 기다렸고 당대 현실에서는 불가능했을 이몽룡과의 결실이라는 행복에 도달한다. 반면 안평대군의 궁녀였던 운영은 김 진사와의 사랑을 꿈꿨으나 끝내 이를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서로 다른 결과에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욕망이 지닌 폭발적인 힘과 순수함, 그리고 체제 너머를 상상하게 만들었던 힘이다. 안재원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프쉬케와 쿠피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다룬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욕망 밖에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화 속 프쉬케는 강렬한 욕망인 호기심에 굴복해 ‘죽음과 같은 잠’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뛰어넘어 쿠피도가 쏜 화살에 맞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화살에 엄지를 찔러서 쿠피도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가장 폭발적인 욕망인 동시에 욕망 그 너머에 있는 숭고한 감정으로 역사 속 인물들의 마음에 존재했다.

관념적인 차원에서 머물 수 있는 욕망은 ‘소유욕’의 형태가 됐을 때 우리 사회에 보다 가까워진다. 고태우 역사학부 교수가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짚어낸 한국인의 자동차 소유 욕망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미군이 남긴 지프를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던 한국은 내 차를 갖고 싶은 ‘마이카 욕망’에서 출발해 이제 연간 3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1980년대 초반까지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자동차는 ‘마이카 열풍’에 힘입어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졌고 이 시기부터 국내에서는 자동차 여행부터 외식, 쇼핑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캠핑과 주말 외식, 대도시 외곽의 아웃렛 쇼핑 문화는 모두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에서 욕망이 산업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은 조금 더 와 닿게 된다.

책의 3부는 특히 욕망의 대척점에 있는 ‘금욕주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과욕이 부패와 타락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금욕’ 또한 우리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플라톤의 엄격한 금욕론에서 시작해 산업 발전기에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일해야 부유해지고 사회와 국가가 발전한다는 생각”의 잔해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복지와 생활 수준 개선의 속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 특히 금욕주의라는 주제가 실제와 이상이 가장 심하게 부딪히는 영역인 만큼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면, 금욕주의 역시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생각하게 한다.

책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필진이 썼음에도 강하게 묶여 있다. ‘욕망’이라는 키워드의 응집력과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철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말한 ‘욕망’은 스페인 영화의 대부인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로 이어지고 동양의 고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 이야기에 오를 수 있다.

욕망의 사전적인 정의는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는 “가지거나 하고자 하는” 행위를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소비를 쉽게 ‘낭비’로 여겼다. 고급 스포츠카, 호화로운 식당, 최고급 와인 등에 ‘과시’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욕망하는 인간을 살펴보자. 신화 속 프쉬케의 순수했던 사랑의 마음과 마이카를 꿈꿨던 인간의 노력에는 “간절함”이 있다. 이 간절함이야말로 욕망이 갖는 가장 순수하고 가치 있는 속성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안 교수의 말처럼 인간은 과욕과 금욕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방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절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방황할 가치는 충분하다. 468쪽, 2만78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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