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민주’만 남고 ‘공화’는 사라진 민주공화국

전영기 편집인 2024. 7.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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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전영기 편집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열두 글자는 1948년 제헌국회 이래 우리 헌법 1조1항이다. 7월17일 제헌절을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다. 요즘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민주공화국 조항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통치"라는 의미의 '민주'는 살아있다. 이재명 차기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거야가 지금 다수의 힘으로 저지르고 있는 몽골기병식 국회 운영은 건국 이래 볼 수 없었던 황폐한 풍경을 낳았다. 다수결의 원칙 즉, 민주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의 '몽골기병식 국회 운영'으로 정국 황폐화

그러나 헌법상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듯 위태롭고, 소수 의견이 일방성과 압도성에 숨을 죽여야 하는 민주당 내 전체주의적인 문화를 접하면서 그들이 집권할 경우 펼쳐질 일들에 대해 섬뜩하고 불길한 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공동으로 화합하여 정무를 시행한다"는 뜻의 '공화'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화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라면 '권력의 자제'를 꼽을 수 있다. 권력의 자제에서 겸손과 타협, 공공의 선을 위한 사익의 양보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헌법 1조1항에 따르면 '다수의 통치(민주)'와 '권력의 자제(공화)'는 몸과 영혼처럼 붙어있어야 한다. 영혼 없는 몸은 맹목이고, 몸 없는 영혼은 공허하다. 비슷한 비유를 쓰자면 공화 없는 민주는 맹목이고, 민주 없는 공화는 공허하다. 민주 없는 공화의 극단적 사례로 동족의 40%를 노비로 부렸던 조선시대의 사대부 정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공화 없는 민주의 극단적 사례는 북한이나 중국식 인민민주주의다. 권력의 자제 혹은 삼권분립이 사라진 곳에서 '다수의 통치'가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되는 건 시간문제.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회가 행정부·사법부의 일부 기능을 상시적으로 마비시키거나 무효화하려는 행동들은 맹목적 민주로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요한다. 이재명의 민주당에선 권력의 자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런 풍토가 여야 정치권에 병균처럼 확산되지 않길 바란다. 나라 전체가 공화 없는 맹목의 민주주의로 빠질까 걱정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8일(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현악 4중주 문화 공연를 관람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정치'의 혼란, 그 태반은 김건희 문제에서 비롯

국민의힘 전당대회와 '디올백' '해병대원 사망' 사건에서도 권력의 자제가 없었다. 김건희 여사가 총선 전에 자신의 사과 문제를 놓고 한동훈 당권 후보에게 보냈다는 다섯 차례 문자의 전문이 6개월 만에 공개된 것은 누가 흘렸든 김 여사 승인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김건희의 승인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가 거대한 권력 행사다. 문자 유출로 누가 유리할지는 표를 까봐야 알겠지만 의도에서는 '한동훈 낙마'를 노린 게 분명하다. 한때 형수와 시동생 같았다는 김건희-한동훈 관계에서 사적인 문자가 오가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것이 특정 시점에 정치적 의도를 갖고 공적인 무대에 폭탄처럼 투하됐다는 게 문제다.

대통령 부인의 권력은 공문서상에 없지만 실체적으로 대통령에 버금가는 힘으로 존재하는 게 인간정치의 현실이다. 영부인의 행동엔 책임이 따르며 엄중한 시스템 속에 관리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던 배경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 부부만큼 권력의 자제가 요구되는 자리도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대통령 정치에 혼란이 일어나고 국민 신뢰나 지지율이 바닥인 이유의 태반은 김 여사와 관련된 사안 때문이다. 여사 본인은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유의했으면 한다. 권력의 자제에 무심하면 몇 배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권력자의 역사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 왔다. 이재명의 민주당과 김건희의 대통령실이 겸손과 배려를 회복하고 공익을 위해 권한 행사를 자제하면 국민이 기뻐할 것이다.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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