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영자’와 ‘사자’
이 모두가 다 맞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이상할 정도로 ‘자’ 자로 끝나는 단어들이 많다. 과거 수업 시간에 ‘여자(女子)’라는 단어와 ‘계집’이라는 단어가 동일하다고 했더니, 많은 여학생들이 의아해 하는 것을 보았다. 자기들의 느낌에는 ‘계집’보다는 ‘여자’가 듣기 좋은 것 같은데, 어찌 그 의미가 같을 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다시 바꿔 생각해 본다면 ‘늙은이’와 ‘노인(老人)’이라는 단어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을 정도로 같은 말이다. 하지만 ‘노인’는 그런대로 들어 줄만 하지만 ‘늙은이’는 뭔가 거북함이 있다. 실제로 필자에게 어떤 젊은이가 “늙은이 어디 가세요?” 하고 물으면 기분이 나쁠 것이고, “노인장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나마 화가 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어르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직은 ‘늙은이’ 소리 듣기 싫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적인 사대주의 사고는 뒤로 미루고 ‘자(子)’ 자의 쓰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어휘는 ‘무의미 형태소’라고 하는 것이다. 우선 예를 몇 개 보도록 하자. 의자, 액자, 사자, 주전자, 탁자 등의 단어를 살펴보면 모두 ‘자’ 자 돌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단어도 아닌데 모두 같은 말로 끝나는 것이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억지로 두 글자나 세 글자로 만들기 위한 흔적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한자로 된 단어는 한 글자로 된 것보다는 두 글자나 세 글자로 된 것이 많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냥 ‘개’라고 해도 되는데, 한자로 쓸 때는 ‘견자(犬子)’라고 표현해 왔다. “참으로 개 같은 놈이다.”라고 할 때 ‘眞 犬子로다’와 같이 표현하였다. ‘獅(사)’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사자(獅子)’라고 표기하였다. 위에 예로 든 모든 단어들이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쓰인 ‘아들 자(子)’ 자는 무슨 의미로 쓰인 것일까?
바로 이러한 것을 전문용어로 ‘무의미 형태소’라고 한다. 단어를 분석할 때 때 형태소의 개념은 중요하다.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지, 형식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따라서 발음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옷이’라는 말과 ‘옷안’이라는 말을 보면 똑같이 ‘ㅅ’ 다음에 모음이 연결되는데, 하나는 [오시]라고 발음하고, 하나는 [오단]이라고 발음한다. 처음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한테 ‘옷안’을 읽어보라고 하면 100% [오산]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모두 [오단]이라고 읽는다. 이와 같이 발음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형태소이다.
형태소란 ‘의미를 가지는 언어 단위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형태소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를 말한다. 여기에는 자립형태소와 의존형태소라는 것이 있다. 단독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자립형태소이고, 반드시 다른 형태소와 결합해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의존형태소라고 한다. 위에 예를 든 ‘이’라는 단어는 다른 말에 붙어서 주어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안’은 홀로 쓰일 수 있는 단어다. 그러므로 발음할 때 뒤에 모음이 나타나더라도 하나는 본음이 그대로 연결되고, 하나는 잠시 휴지(쉼)를 거치기 때문에 ‘옫’ 하고 발음했다가 ‘안’과 합하여 [오단]으로 발음하게 된다.
그 중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하나의 의미처럼 사용하는 것을 ‘무의미 형태소’라고 한다. 위에 예로 든 단어가 ‘자’로 끝나는 것은 대부분 이와 같은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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