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 더 과감해져야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2024. 7.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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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tory] 보수적이고 신중한 경영

● 낡은 본업+新성장동력 미비
● 필요하면 리스크 감수해야 하는데…
● “공격적 투자에 약하다”
● 4세 경영 본격화, 혁신 이뤄질까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여수공장 모습. [GS칼텍스]
4월 29일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2박3일 일정으로 미국 시애틀에서 해외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엔 허태수 회장을 비롯해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홍순기 ㈜GS 사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정찬수 GS EPS 사장, 김석환 GS E&R 사장, 이영환 GS글로벌 사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총출동했다.

이 자리에서 허태수 회장은 "사업 환경이 크게 요동하고 있지만 움츠러들기만 하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엔 신성장동력 모색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나타난다. 허태수 회장은 2020년 GS그룹 회장 부임 이후 지속적으로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 GS건설, GS리테일 등을 중심으로 신성장동력을 끌어올리고자 몇 번의 인수합병(M&A)을 시도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5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GS그룹은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재계 순위가 한 단계 추락하며 8위에서 9위가 됐다. 8위가 된 HD현대는 신규 선박 수주에 따른 계약 자산 증가의 영향으로 공정자산 총액 규모가 84조7920억 원으로 늘었다. GS의 그것(80조8240억 원)과는 4조 원가량 차이가 난다.

재계 순위가 하락했다고 해서 GS그룹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허태수 회장 부임 이후 GS그룹의 성장세는 이전보다 더 기록적 수준으로 눈부셨다. 2019년 GS그룹의 매출은 17조7860억 원이었으나 지난해 25조9784억 원으로 46%가량 증가했다. 영업이익 증가 폭은 더 컸다. 2019년 2조331억 원에서 지난해 3조7179억 원으로 무려 83%나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기록한 영업이익은 2022년 대비 27.4% 감소한 수치다. GS칼텍스의 부진,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사고와 수주 악화, GS리테일의 신사업 실적 악화 등 때문이다. GS그룹의 성장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 이유다.

판 뒤집는 모습 못 보여

GS그룹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주된 요인은 신성장동력 미비다. 올해는 GS그룹이 2004년 LG그룹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지 20년이 된 해다. 2004년 분할 당시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은 LG정유, LG유통, LG건설 등 세 개의 굵직한 계열사를 분리해 내는 방식으로 성공적 출발을 했다. 하지만 GS그룹은 여전히 이들 3개 계열사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GS칼텍스)·건설(GS건설)·유통(GS리테일)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GS그룹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노력은 LG그룹과 분리한 후부터 멈추지 않고 이어져왔다. 허창수 회장 재임 시절이던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시작으로 현대오일뱅크, 대한통운 등 인수전에서 유력한 원매자로 거론됐으나 모두 고배를 마시거나 중도 포기했다. 이외에도 2012년 웅진코웨이, 2015년 KT렌탈을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2020년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하다 포기하기도 했다.

M&A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허태수 회장 취임 이후 바뀌었다. 허태수 회장은 GS그룹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위기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20년 GS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지주사 내 사업지원팀의 명칭을 미래사업팀으로 바꾸고 그룹 차원에서 M&A 검토, 신사업 발굴, 미래 전략 등을 맡게 했다. 또 오너 일가 4세 경영인들을 내세웠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뉴 투 빅(New to Big)' 전략을 발표하며 새 주력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실리콘밸리에 투자회사 GS퓨처스와 GS비욘드를 설립했고, 2022년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GS벤처스를 설립해 펀드 결성까지 마쳤다.

이를 통해 GS그룹은 다수 지분투자 및 인수를 진행했다. GS칼텍스와 GS에너지는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했다. GS리테일은 메쉬코리아, 펫프렌즈,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농업법인 퍼스프, 쿠캣 등의 지분을 인수해 기존 유통 사업과 물류, 식품, 플랫폼 등 여러 사업 간 시너지를 만들고자 했다.

2022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딜'은 보톡스 전문기업 휴젤 인수다. 당시 GS그룹은 사모펀드(IMM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이뤄 휴젤 인수에 성공했고, 이후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M&A를 검토하고 있다.

허태수 회장은 전임자인 허창수 명예회장에 비해 '선제적 위기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리하자면 M&A를 통한 GS그룹의 신성장동력 찾기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눈에 확 들어오는 성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GS그룹이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LG그룹과 분리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룹의 주력이던 에너지·건설·유통 사업 부분이 다른 산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군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 사업들이 시장 호황에 힘입어 함께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즉 GS그룹은 위기에 부딪히며 이를 극복하거나 시장의 판을 뒤집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LG 시절 재무·회계 맡아

이러한 GS그룹의 경영 문화는 LG그룹과 함께 창업한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다. 1947년 시작된 구씨·허씨 가문의 동행은 2004년 결말까지 지금도 '아름다운 동업'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허씨 일가는 드러나지 않는 경영을 하며 사실상 보좌 역할을 했다.

허씨 일가의 경영 문화를 이해하려면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에게 자본을 출자한 효주 허만정 회장을 살펴야 한다. 2010년 5월 허정구·허학구 형제가 부친인 허만정 회장의 일대기를 문중용으로 제작한 '효주가장(曉洲家狀)'에 따르면 허만정 회장은 구한말 대한제국 비서원승을 지낸 허준의 3형제 가운데 둘째로 1897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태어났다.

허만정 회장은 청년 때 백산상회, 주일상회, 협성상회 등 설립에 적극 참여하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독립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을 통한 교육만이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교 설립 준비를 했다.

1920년 3월 일신고등보통학교(일신고보)를 설립하기 위한 기성회를 조직했고, 5월 1일엔 친구 하영진을 비롯한 102명이 참여한 발기인 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허만정 회장은 부친의 허락을 받아 논 9만3000여 평, 밭 3만5000여 평, 현금 7만 원을 재의 설립 기금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일신고보는 일본 당국의 압력으로 일반학교 허가를 받지 못했고, 대신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인가해 주겠다는 조건부 승인으로 1925년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로 개교했다. 이후 허만정 회장은 광복까지 진주청년회 후원, 중외일보사 부사장 등을 지내며 사회 활동에 전념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월 허만정 회장은 3남인 허준구(GS건설 명예회장)와 함께 부산 국제시장 내 조선흥업사를 운영하던 사돈 구인회 회장을 찾아가 동업을 요청했다. 이때 허만정 회장은 3남을 가리키며 "이 아이를 맡기고 갈 터이니 밑에 두고 사람 만들어주소. 내 사돈이 하는 사업에 출자도 좀 할 생각이오"라며 구인회 회장에게 돈과 아들을 투자했다. 구씨·허씨 동업의 시작이다.

허만정 회장이 조선흥업사에 자본출자를 얼마나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허만정 회장이 살아생전 작성한 메모, 언론보도, 경제학자들의 계산을 토대로 유추하면 자본 비율은 약 구씨가 7, 허씨가 3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2004년 GS그룹이 LG그룹과 분리할 때 자산 규모가 27대 73이었던 것이 이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1947년 12월~1948년 9월 허만정 GS그룹 창업주가 투자 금액에 대해 작성한 친필 메모. 당시는 자체 상표인 ‘럭키크림’을 직접 생산하는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때다. 인(仁)·철(哲)·정(貞)·준(準)은 구인회, 구철회, 구정회, 허준구로 추정되며 숫자는 각각 납입한 금액으로 추정된다. [효주가장]
1947년 1월 구인회 회장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하자 허준구 회장은 이곳의 영업담당 이사를 맡게 됐다. 그는 금전 관리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았고, 주로 판매·구매를 담당했다. 1968년 LG그룹 기획조정실장이 된 후 그룹의 체계를 탄탄하게 다지는 데 일조했다.

허준구 회장은 G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분리하기 2년 전인 2002년 7월 작고했다. 그의 경영 철학에서 현재 GS그룹의 경영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 및 외부 활동을 자제한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로 불렸다. 그는 대의명분에 충실하며 논리 정연한 사고와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졌다고 평가됐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그에 대해 "가장 합리적 원칙주의자이며 늘 순리를 따랐다"고 말했다. 허준구 회장이 추구한 경영 문화는 GS그룹 분리 이후 자녀인 허창수 명예회장을 비롯한 '5형제 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GS그룹 초대회장을 지낸 허창수 명예회장은 경영 대부분을 부친 허준구 회장과 함께 했다. 허창수 회장은 LG그룹 시절 구본무 회장의 그늘에 가려진 2인자로서 조용하고 차분한 행보를 보였다. 그 시절 허창수 명예회장의 별명은 아버지와 같은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였다. 그렇다 보니 허창수 명예회장 체제 GS그룹은 변화가 없는 듯 보여 '지나치게 신중해서 그룹의 성장 기회를 놓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허창수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 등장한 것은 1995년 무렵이다. 허창수 명예회장은 1977년 LG그룹에 입사해 LG상사와 럭키, LG산전 등 여러 계열사를 거치고 구본무 회장이 LG그룹 회장으로 추대될 때 LG전선 회장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들(구자경·허준구)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둘의 장남이 나란히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부친이 작고한 2002년 허창수 명예회장은 LG전선을 떠나 LG건설 회장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때부터 그룹 분리를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LG그룹에서 구씨 일가는 주로 사업 확장 등 바깥일을 도맡아 회사를 키우는 일을 한 반면 허씨 일가는 대부분 재무·회계 등 안살림을 맡았다. 허창수 명예회장도 입사 후부터 줄곧 안살림 업무를 맡아왔고, 이러한 그의 이력은 공격적 경영보다 수익성을 지키기 위한 보수적 경영을 하게 했을 것이다.

GS칼텍스 의존도 높아

LG그룹과 분리 이후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첫 10년 동안 GS그룹의 성장 속도는 매우 가팔랐다. 계열분리 전인 2004년 18조7190억 원에 불과하던 자산은 212.5% 성장해 58조5060억 원이 됐다. 특히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10.9%로 두 자릿수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GS그룹의 총자산 80조8240억 원은 2014년 대비 38.1% 증가하는데 그친 액수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성장률도 3.3%를 기록해 성장 동력이 꺾였음을 나타냈다.

GS그룹의 지난 20여 년간 매출액·당기순이익 변화를 보면 위기감이 더 드러난다. 2012년 그룹 전체 매출액이 70조4420억 원으로 정점을 찍지만 이후 2021년까지 매출 70조 원을 넘기지 못한다. 당기순이익률은 그룹 분리 초기인 2004년, 2005년 5.8%를 나타낸 이후 지난해까지 한 번도 이 수익률을 넘긴 적이 없다. 특히 2013년, 2014년엔 당기순이익 적자를 보기도 했다.

GS그룹의 매출액·당기순이익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룹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GS칼텍스다. 국제 원유가격의 영향을 받을 때마다 그룹 전체의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요동친 것. 예컨대 GS칼텍스는 수익성 악화로 2012년, 2013년 영업적자를 냈다. 당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름 유출 사고까지 터졌다.

그러자 2014년 허창수 명예회장은 STX에너지 인수합병을 마무리한다. STX에너지는 GS이앤알(E&R)로 바뀌어 GS그룹의 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게 됐다. 허창수 명예회장은 인수합병에 약 5649억 원을 투입했다. 허창수 명예회장이 성공한 첫 대형 인수합병이다.

허창수 명예회장이 이전에 인수한 기업들의 규모는 GS그룹의 덩치에 걸맞지 않았다. 쌍용(1200억 원), 새한미디어(1000억 원) 정도가 큰 편에 속했을 정도고, 신성장동력은 되지 못했다. GS그룹은 2005년 인천정유, 2007년 하이마트, 2008년 대한통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경쟁사에 밀리거나 중도 포기했다.

인수합병은 경영권 프리미엄 및 경쟁에 의한 가격 거품이 붙는 게 불가피하다. 이를 감수하고 필요하다면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과감히 선택해야 하는데, 허창수 명예회장은 그러지 못했다는 인상을 줬다. 특히 2012년엔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시자 "공격적 투자에 약하다"는 얘기가 돌기까지 했다.

2019~2020년 그룹에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까지 GS그룹은 GS칼텍스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많으면 80%, 영업이익은 50%에 이를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여파로 정유업계는 전반적으로 큰 적자를 봤고, GS칼텍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GS칼텍스는 2020년 7963억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그룹 전체 실적에 큰 타격을 안겼다. 업황 특성상 변동성도 극심하다. 예컨대 지난해 GS칼텍스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192억 원)했다가 한 분기 만에 역대급 영업이익(1조 2053억 원)을 거두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제적 에너지 시장 변화도 GS그룹의 위기의식을 높이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이 단기 이벤트라면,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은 장기적으로 비가역적 추세가 돼가고 있다. 항공·해운 등 주요 수요 업종에서 강력한 환경규제를 잇달아 내놓으며 수소연료나 바이오연료 등 대체에너지 사용이 늘고 있다. GS그룹은 GS칼텍스 의존도를 낮춰야 하고, GS칼텍스는 정유 외 사업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홈쇼핑·편의점 경쟁사에 바짝 쫓겨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던 2019년 12월 그룹 수장이 된 허태수 회장에게 취임 첫해 성적표는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을 듯하다. 허태수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었다. 허태수 회장은 허창수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30년 경력의 절반을 증권가에서 보냈다. 고려대 법대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MBA를 취득한 허태수 회장은 미국 콘티넨털 은행을 거쳐 1988년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여기서 M&A팀장, IB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며 글로벌IB 경험을 쌓았다. 2002년 GS홈쇼핑으로 옮긴 이후에도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GS홈쇼핑으로 옮길 때 LG투자증권 출신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킨 것이 이러한 뜻을 방증한다. 대표적 인물인 김호성 GS리테일 대표는 LG투자증권 인사팀장을 지내다 GS홈쇼핑으로 이동했다. 류경수 GS텔레서비스 대표도 LG투자증권 IB사업부 출신이다. 이외에도 허태수 회장은 신사업 발굴을 위해 글로벌 컨설팅 전문기업인 '액센츄어' 출신을 대거 등용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엔센츄어코리아 경영컨설팅 부문 대표를 맡은 박영훈 전 GS리테일 부사장과 우재원 전 홈쇼핑사업부장과 김훈상 상품개발사업부문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허태수 회장은 GS홈쇼핑을 통해 2010년부터 장기적 관점에서 벤처투자를 시작했다. 홈쇼핑 산업 성장이 둔화된 데에 따라 신규 먹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영훈 전 GS리테일 부사장은 10년 가까이 허태수 회장과 손발을 맞추며 GS홈쇼핑의 벤처투자를 총괄, 스타트업 투자를 진두지휘했다.

GS홈쇼핑은 2011년 '버즈니'를 시작으로 스포카(2012), 빙글(2013), 헬로마켓(2014), 스타일쉐어(2018) 등 33개 타 법인(펀드 및 투자조합 제외)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취득가액만 1580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81.8%에 해당하는 27곳이 박 부사장 부임 후 투자한 곳이다. 이러한 공로로 박 부사장은 입사 10개월 만에 전무로 승진했고, 2020년엔 부사장에 올랐다.

문제는 기대와 달리 이러한 투자 결과가 기존 GS홈쇼핑과 시너지를 내는 데 별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이 대부분 그렇듯 초기 사업에서 대부분 순손실이 이어졌다. 결국 GS홈쇼핑은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철수하기도 했다.

허태수 회장의 투자 실험은 GS그룹 회장이 된 후에도 계속됐다. 그의 신성장동력 확보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됐다. 첫 번째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시너지 증대, 두 번째는 M&A다. M&A 경우 33개 스타트업과 7개 벤처펀드 등에 약 15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사업구조조정에선 2021년 GS리테일과 홈쇼핑 계열사인 GS SHOP과 합병이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두 계열사의 합병은 O4O(Online for Offline·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를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 편의점과 같은 오프라인 인프라에 식품·세탁·청소·택배 등 밀접한 생활 서비스를 연결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마켓포(Market For)'를 론칭하는 등 참신한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편의점, 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채널 중심이었던 GS리테일과 TV홈쇼핑 및 모바일 등 온라인 채널에 주력하던 GS SHOP의 합병으로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마켓포는 운영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고, 새 이커머스 플랫폼은 쇼핑몰에 홈쇼핑 상품을 넣은 수준으로 운영됐다.

상품 구색을 늘리기 위해 반려동물용품 쇼핑몰 펫프렌즈, 간편식 생산업체 쿠캣 등을 인수했지만 기대한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팬데믹과 함께 시장은 온라인 중심으로 더 빠르게 이동해 갔고, 쿠팡과 네이버 등 경쟁업체들이 더 방대한 상품 구색을 갖춘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동안 주력사업인 홈쇼핑과 편의점 부문 성장은 더디거나 경쟁사에 바짝 쫓기는 신세가 됐다.

위험부담 최소화인가

허태수 회장의 M&A에 대한 태도는 선대 경영자들과 달라 보인다. GS퓨처스, GS비욘드, GS벤처스 등 VC 및 CVC가 설립됐고, 그룹 혹은 계열사 차원의 M&A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각 계열사에서도 신사업 발굴에 더 많은 힘을 싣기 시작했다. GS칼텍스는 석유화학 부문을 강화하며 탈정유를 추진하고 있고, GS리테일은 오너가 출신 4세대인 허치홍 전무를 배치해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하고 있다.

허태수 회장은 바이오, 순환경제, 에너지전환이라는 3가지 분야에 집중했다. 결과물로 2021년 진행된 휴젤 인수 건은 GS그룹 M&A 역사에서 가장 큰 '빅딜'이었으나 2022년 더 큰 빅딜로 기대를 모은 '메디트' 인수에선 성사를 코앞에 두고 발을 빼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GS가 갖고 있는 '소극적 원매자' 이미지가 이어졌다.

메디트는 치과용 3D 구강 스캐너 개발업체다. 200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인 장민호 고려대 교수가 창업한 기업으로 2019년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이 약 3200억 원에 경영권을 인수한 뒤 빠르게 성장했다. 업계 시장점유율 3위권 수준이다.

메디트 매각 본입찰엔 칼라일이 GS그룹과 손잡고 3조 원을 제시해 2조 7000억 원 안팎을 써낸 KKR을 제치고 2022년 10월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지만 바로 다음 달 칼라일-GS 측은 KKR보다 너무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지적에 인수가를 뒤늦게 낮추려 했고, 이에 메디트 최대주주인 유니슨캐피탈 측은 칼라일-GS 측의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GS그룹의 대규모 M&A에는 그룹 자금 지출은 최소화하고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가 존재하는 공통점이 있다. 휴젤 인수 때도 헬스케어 분야에서 성공 사례를 갖춘 IMM인베스트먼트, 아시아 최대 바이오 및 헬스케어 전문 투자 펀드인 CBC 그룹 및 무바달라와 컨소시엄을 만들어 1조7000억 원에 인수했다. 같은 해 진행된 요기요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K)' 인수 때에도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지분 30%만을 인수해 GS홈쇼핑과 합병했다.

허태수 회장이 공격적 M&A로 사업 재편과 신성장동력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부담을 높이지 않는 수준의, 위험부담 최소화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tay Hungry, Stay Foolish"

GS그룹은 허태수 회장의 등판과 함께 '홍'자 돌림자를 사용하는 4세 경영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허태수 회장 체제가 안착되면서 보수적 그룹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으며, 공격적 경영을 오너 4세들에게 요구하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해 인사에서 이러한 구도가 더욱 가속화됐다. GS그룹 창립 이후 매년 평균 30~40명의 임원이 교체돼 왔으나 지난해엔 실적악화로 인해 GS건설, GS칼텍스, GS파워, GS엔텍의 수장을 교체하는 동시에 50명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대대적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허창수 명예회장의 아들 허윤홍 사장이 임병용 부회장을 대신해 GS건설을 이끌게 됐고,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들 허서홍 ㈜GS 미래사업팀장(부사장)은 GS리테일의 경영전략SU(서비스유닛)장으로 이동해 경영지원본부와 전략, 신사업부문을 총괄한다. GS엠비즈 대표를 맡아온 허철홍 전무(허정수 GS네오텍 회장 아들)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와 함께 허명수 전 GS건설 부회장의 아들 허주홍 GS칼텍스 베이직케미칼부문장(상무), 허진수 GS칼텍스 고문 아들인 허치홍 GS리테일 MD본부장(상무)이 각각 전무로 승진해 경영 보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홍자 돌림의 4세대 오너 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경영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GS그룹은 독특한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너 일가 간 지분율 차이가 거의 없고,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일가도 많아 어느 한 집안이 권력을 독식하기 힘든 구조다. 명확한 승계 원칙도 없다. 후계 구도를 둘러싼 추측이 무성한 것도, 허태수 회장이 위로 형 세 명을 건너뛰고 회장이 된 것이 4세대 경영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허태수 회장이 건재한 만큼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그룹 '후계 레이스'에서 초반 선두를 달리는 4세 경영인은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과 허윤홍 GS건설 사장이라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유는 GS그룹 이익 기여도가 가장 큰 계열사인 GS칼텍스와 GS건설 수장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계열사는 분산된 지분 구조로 가족의 동의 없인 각자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즉 이들이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가족 간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계열분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먼저 계열분리를 준비하는 곳은 삼양통상이다. 허만정 창업주의 장남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장손인 허준홍 사장이 2019년 GS 경영에서 발을 빼고 삼양통상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GS그룹 내 자회사 가운데 지주회사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허준홍 사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을 모아 그룹 체제로 재편한다는 것.

허준홍 사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GS그룹 계열사는 옥산유통(19.04%), 위너셋(10.11%), 삼정건업(30%), 삼양인터내셔날(37.33%), 보헌개발(33.33%), 센트럴모터스(10.11%) 등 상당수다. 특히 삼양인터내셔날, 삼정건업, 보헌개발은 허준홍 사장이 최대주주다. 만약 삼양통상이 ㈜GS 밖에 있는 회사들을 모아 그룹사로 재탄생한다면 삼양통상 계열로 계열분리가 되는 것이다.

GS건설도 분리 가능성이 있다. GS그룹의 지배구조에서 GS건설은 사실상 허창수 명예회장 일가의 회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6촌 이내에 다른 혈족들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허창수 명예회장이 5.95%를, 허윤홍 사장이 3.89%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젊은 오너 4세들이 지금까지 GS그룹이 보인 보수적이고, 신중한 경영 문화를 벗어나 쇄신을 가져올 수 있을지다. 오너 4세들을 중심으로 GS그룹은 신사업 전개, DX(디지털 전환) 확산을 촉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정유·건설·유통을 대체해 사업 구조를 고도화할 법한 사업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GS그룹의 나이는 약관에 불과하지만 그룹 이미지는 이미 노쇠했다. 공교롭게도 G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한 2005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명연설의 마지막 말이 현재 GS그룹에 절실하다.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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