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서울문화사 2024. 7.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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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잘 안 타는 차. 그래도 내게는 좋은 차. 생소하고도 특별한 나만의 자동차 생활. 자동차 오너 여섯 명이 자신의 ‘카 라이프’를 말했다.
박문수 / 패션 브랜드 ‘더 뮤지엄 비지터’ 대표

“내 자동차 취향은 간단하다.
아주 빠르거나 아주 편하거나.
아바스 595는 둘 다 충족한다.”

2021 Fiat Abarth 595 Competizione

‘B급 감성이 있는 A급’. 늘 이 차를 소개하는 문구다. 사실 내가 아끼는 모든 물건을 같은 문장으로 소개할 수 있다. 애호가적 요소가 가득하면 불편해서 싫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요소로 채운 건 재미가 없다. 완성도는 물론 사용자만 알 수 있는 재미 요소를 갖춘 차. 그래서 고른 차가 피아트 아바스 595다. 내가 돈을 주고 산 첫 차이기도 하다. 내 자동차 취향은 간단하다. 아주 빠르거나 아주 편하거나. 아바스 595는 둘 다 충족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외관이다. 일단 전체적인 비율이 너무 좋다. 차를 사고 2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바꾼 것 하나 없이 순정 상태를 유지 중이다. 고성능 모델이니 배기 사운드와 주행 질감이 훌륭하고, 크기가 작아 서울 시내 골목을 돌아다닐 때도 쾌적하다. 노을 지는 저녁 퇴근길, 소프트톱을 열어젖히고 라디오헤드의 ‘Creep’을 크게 틀어놓은 채 강변북로를 달릴면 그저 행복하다. 앞으로 다른 차를 사게 되더라도 이 차를 팔 일은 없을 것 같다.

조영민 / 패션 브랜드 ‘떠그클럽’ 대표

“요즘 G바겐은 럭셔리 SUV 냄새가 풀풀 나지만,
1세대 G바겐은 투박하고 거친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내게도 그런 면이 있다.”

1992 Mercedes-Benz G 300

이 차를 살 때 다른 고민은 없었다. 무조건 클래식 G바겐이어야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멋있으니까.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특별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기존 차에 있던 새카만 범퍼 그릴은 떼어내고, 외장 전체에 샌드 컬러를 입혔다. 30년 가까이 된 차라 스피커가 부실했는데, ‘마포 도인’이라 불리는 자동차 오디오계의 귀인을 만나 JBL 스피커를 트렁크에 박아 넣었다. 스페어타이어 오른쪽에 올린 떠그클럽 로고 역시 볼 때마다 만족스러운 요소 중 하나다. 가끔 에어컨이 안 될 때가 있긴 하지만, 창문을 열고 빨리 달리면 그만이다.

앞으로 더 비싼 차를 구입할 기회가 와도 신형 G바겐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돈으로 지금 차의 바퀴를 크롬 휠로 바꾸고, 새로운 색을 칠하고 싶은 정도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차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아빠가 태워주는 차에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면 그저 좋았다. 지금도 나한테 자동차는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차는 ‘내게 어울리는 차’다. 요즘 G바겐은 럭셔리 SUV 냄새가 풀풀 나지만, 1세대 G바겐은 투박하고 거친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내게도 그런 면이 있다. 나는 늘 그런 내 모습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다.

김건호 / 그래픽 아티스트

“자동차는 보는 재미, 타는 재미, 꾸미는 재미로 탈 텐데,
그런 점에서 작고 희귀한 이 차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차다.”

2003 Daihatsu Mira Gino

지금 보이는 차는 2003년 출시된 다이하쓰 미라지노 터보. 국내에 들어온 차는 4대 안팎인 걸로 알고 있다. 엄청난 희소성이 첫째 장점이다. 차를 타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엔진 배기량이다. 엔진은 660cc. 국내 경차 기준에 부합한다. 공영 주차장 요금과 고속도로 통행료가 50% 할인되는데, 아직도 할인가를 볼 때마다 식상함 없는 쾌감을 느낀다. 그뿐만 아니다. 작업실이 있는 합정동은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다른 차였다면 엄두도 못 낼 공간에 이 차는 들어간다. 그때의 쾌감도 상당하다. 터보 버전이라 고속도로 위에서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나는 작은 차를 좋아한다. 세상에 큰 차는 너무 많으니까. 내게 좋은 차는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차다. 차는 바퀴 달린 방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모든 방이 거실만큼 클 필요는 없지 않나. 자동차는 보는 재미, 타는 재미, 꾸미는 재미로 탈 텐데, 그런 점에서 작고 희귀한 이 차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차다. 실내에 여러 액세서리를 달았을 뿐 차 자체는 순정 상태 그대로다. 보닛을 자세히 살펴보면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내게는 이마저도 이 차를 타는 즐거움 중 하나다.

최진화 / 빈티지 숍 ‘리틀리들’ 대표

“빈티지가 됐다는 건 그만큼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는 뜻.
1990년대 닛산 피가로도 그렇다.”

1991 Nissan Figaro

피가로는 닛산에서 딱 1년 동안만 생산한 차다. 총 2만 대를 만들었고, 대부분 일본과 영국에서 팔렸다. 그래서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고, 지금 한국에는 100대 정도 있는 걸로 안다. 1990년대에 1960년대 경비행기를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으니, 처음 출시될 때부터 클래식한 외모였다. 요즘 차들과 달리 실내에 스테인리스 소재가 많이 들어갔다. 경비행기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의 계기판 모습도, 조개 모양 버튼들이 손에 닿는 촉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운영하는 리틀리들에서는 1980~1990년대 옷을 가장 많이 소개한다. 그 당시에 만들어진 옷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 시절 물건들은 재료와 노동력을 아끼지 않고 만든 티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빈티지가 됐다는 건 그만큼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는 뜻. 1990년대 닛산 피가로도 그렇다. 디자인도 멋지지만 튼튼한 내구성도 만족스럽다. 이 차를 탄 지난 4년 동안 엔진 오일이나 배터리 등 소모품을 제외하면 교체한 게 하나도 없다. 언젠가 고장이 나도 이 차를 팔아버릴 만큼 밉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웅 / 패션 브랜드 ‘크리틱’ 대표

“아무리 예쁜 차도 결국 탈 수 있어야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2002 Hyundai Santamo

지금까지 여러 올드카를 타왔지만, 내 자동차 취향의 종착지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갖춘 동시에, 출퇴근길에서도 탈 수 있는 차가 딱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보다 오래되면 정비성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차가 녹아드는 느낌이 모자란다. 아무리 예쁜 차도 결국 탈 수 있어야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매일 출퇴근길을 이 차와 함께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준수한 외모와 유지비. 잔고장이 나도 수입차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수리할 수 있다.

싼타모는 현대자동차가 아닌 현대정공 시절에 만들어진 차다. 내 차를 비롯해 중고차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싼타모는 LPG 모델인데, 덕분에 새로운 동네에 갈 때면 근처 LPG 충전소를 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세상에는 좋은 차가 너무 많다. 빠른 차, 편한 차, 예쁜 차. 하지만 결국 ‘내게 좋은 차’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차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과 캠핑을 떠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 그런 내게 싼타모는 가장 좋은 차라고 자신할 수 있다.

박성재 /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 한국 지사장

“나는 지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내 차도 그렇길 바란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 아름다운 자동차.”

1995 Alfa Romeo 916 Spider 2.0 TS

2017년 1월 25일 오후 2시 40분. 이 차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박근혜 정권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시기였는데, 때마침 차가 서는 바람에 세종대로에서 차가운 손을 비벼가며 차를 밀어야 했다. 이 차를 구입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사지 않았다. 그때의 내게 알파로메오 916은 오래되고 느리고 못생긴 차였다. 그 사이 빠르고 견고한 독일 차를 여러 대 탔다. 막상 독일 차를 타다 보니 새로운 디자인과 감성에 눈을 떴다. 알파로메오 916 스파이더는 생산 시기에 따라 ‘페이스 1’ ‘페이스 2’ ‘페이스 3’로 구분하는데, 이 차는 페이스 1에 해당한다.

‘견인차에 실을 때 가장 아름다운 차’. 이탈리아 자동차 타는 사람끼리 하는 농담이다. 견인차에 태워 수리를 보낼 일이 잦다는 뜻이기도, 여러 각도에서 볼수록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차는 지금까지 견인차에 13번 태웠다. 그 와중에도 요트처럼 보이는 옆모습 라인은 늘 최고다. 요즘 차에서는 볼 수 없는 선으로 빚어진 디자인도 질리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차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다. 나는 지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내 차도 그렇길 바란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 아름다운 자동차. 이 두 가지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세종대로에서 견인차를 부를 수 있다.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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