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참사 1주기]마지막 발견된 희생자 유족…"아내, 하루도 못 잊어"

서주영 기자 2024. 7. 1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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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지나서야 싸늘한 주검으로 마주한 아내
아내 떠나보낸 뒤 심한 우울증에 17㎏ 빠져
붙임성 남달랐던 아내…이웃들 모두 그리워해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오태욱씨가 자택에서 아내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2024.07.12.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앞이 캄캄하고 차문이 안 열려. 나갈 수가 없어!"

아내(65)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충북 청주의 한 택배회사에서 물류 분류일을 하던 아내는 오송읍 집이 물에 잠겼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59시간30분이 더 흘렀다. 그녀는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200m가량 떨어진 풀숲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난해 7월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마지막 희생자였다.

오송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오태욱(69)씨는 아직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공사장에서 안전요원 일을 하던 오씨는 사고 발생 전날 오송의 한 공사 현장에 출근했다. 현장에선 다음 날 예정된 폭우로 아침까지 비상 밤샘 근무 지시가 내려졌다.

"연장 근무만 안 했어도 아내에게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슨 출근이냐고 집에서 말렸을 거 같아요. 밤샘 근무가 이런 결과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전 7시30분 현장에 있던 오씨에게 아내 황씨의 전화가 왔다. 미호강 강물이 많이 차오르긴 했는데 가까스로 출근했다는 전화였다. 그는 "물이 넘쳐 외출 자제 문자도 왔는데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걱정되는 마음을 내비쳤다.

아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차를 타고 지하차도에 들어왔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다. 앞이 캄캄하고 차문이 안 열린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뒤 통화가 끊겼다.

오씨의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아내의 차량이 지하차도에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타지에서 지내는 자녀들을 불러 함께 현장을 지켰다. 실종자 발견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지만 끝내 아내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13명의 희생자를 수습하고 지하차도에 더 이상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참담했습니다. 물살에 떠내려갔으면 생존 가능성은 고사하고, 시신까지도 찾지 못할까봐…"

이틀이 지나서야 "아내를 찾았으니 병원으로 와서 확인하라"는 경찰의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넘어 다급한 목소리를 전하던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오씨 부부는 7년 전 오송읍 한 마을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오씨는 세종을 거쳐 2016년 오송으로 발령을 받았다.

서로 떨어져 지내던 부부는 오송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으로 마을에 땅을 구입해 집을 지었다.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평화롭고 행복한 노후를 즐기고 싶었다.

그 꿈은 미호강의 물살에 망가졌다. 아내는 떠나고 집에는 물이 들어차 엉망진창이 됐다. 집은 복구됐지만 떠나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상심에 빠진 오씨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심한 우울증 속에 제대로 먹지도 않고 3개월간 내리 잠만 잤다. 그의 몸무게는 83㎏에서 66㎏로 줄었다.

"인생에 낙이 사라졌어요. 혼자서 하염없이 우는 날이 이어졌죠. 나도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제초제를 뿌리고 남은 게 어디 있나 생각만 하고 지냈습니다."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오태욱씨가 아내의 유품인 신발을 바라보고 있다. 2024.07.12.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같은 해 11월 딸의 집에서 한 달간 머물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자녀와 이웃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 덕에 지금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나 운동센터를 다니며 조금씩 삶을 이어 나가고자 애쓰고 있다.

오씨는 저녁마다 함께 산책하던 아내를 추억했다.

"저녁을 먹은 뒤 함께 마을 논길을 걷곤 했어요. 고즈넉한 시골 농로길을 거닐며 서로 얘기 나누는 그 시간이 인생의 행복이었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함께 걸었는데… 지금은 혼자네요."

아내 황씨는 활발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매번 반찬을 담아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녀에게 요리를 배우러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이웃 주민인 김수남(60대)씨는 "붙임성과 사교성이 남달라 동네 주민들과 가족처럼 지냈다"며 그녀를 떠올렸다.

자녀들에겐 자상한 어머니였다. 다 큰 자녀들이 혹시라도 끼니를 거를까봐 김치, 나물무침, 감자볶음 등 반찬을 해 주말마다 부쳤다.

"비오는 날마다 자전거로 출근하는 제가 걱정돼 차로 태워다 주겠다던 다정한 아내였습니다. 아내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신이 없네요. 평생 빈자리를 그리워하겠지요."

오씨는 사고 당시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새끼줄 하나라도 지하차도에 쳐져 있었으면 이 정도까지 피해가 크진 않았을 겁니다. 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아야지요. 다시는 이런 일이, 더는 이런 희생자가 없어야 합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지난해 7월15일 오전 8시40분께 발생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미호강 범람으로 침수되면서 차량 17대가 침수됐다. 이 사고로 오씨의 아내를 비롯한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청주=뉴시스] 안성수 기자 = 15일 미호천 범람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진입도로에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청주에는 이날 오후 3시까지 245.4㎜의 비가 내렸다. 2023.7.15. hugahn@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juyeo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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