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말로만 ‘유소년’…돈없는 유망주도 뛸 환경을” [한국축구, 뒤집어야 산다]

정인선 기자 2024. 7.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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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전문가 4인의 제언
유소년, 축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기획 시리즈 ‘한국축구, 뒤집어야 산다’의 마지막 5회는 전문가 토론으로 대안을 모색해봤다. 9일 온라인 화상회의에 김대길 축구해설위원, 백영철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 마쿠스 한 한겨레 분데스리가 통신원이 참여했고, 김창금 선임기자가 사회를 봤다. 재일교포 프리랜서 기자인 신무광 피치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전화로 의견을 개진했다.

“유소년, 유소년 30년 동안 지겹게 들었다”

사회자(이하 사) 한겨레가 이번 기획을 통해 던진 문제의식은 ‘유소년 축구가 미래’라는 말로 집약된다. 동의하는가?

김대길(이하 김) 유소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늘 나왔지만 실행 과정에서 착오가 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초등 선수들에게 집중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를 짚어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백영철(이하 백) 협회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들이 많지만,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신무광(이하 신) 미안한 얘기지만, 한일 축구 비교가 될 때마다 ‘유소년’이 화두가 되고 거론 되는데, 지난 30년간 지겹게 들었지만 바뀐 게 없다. 저는 그게 더 문제라고 본다. 30년간 말만 한 것 아닌가.

신무광 프리랜서 기자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지도자들이 선수 발전만 신경 쓰며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지금 지도자들은 선수를 가르치고, 운동장을 구하고, 선수 모집에도 나서고, 아이들 픽업도 해야 한다. 성적에 본인의 생계가 달려 있어, 장기적인 시야로 아이들을 육성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축구를 안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밑거름될만한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

마쿠스 한(이하 한) 선수의 연령 체계가 12살, 15살, 18살 이하 등 3년 단위로 돼 있는 것이 문제다. 중학교나 고교의 1, 2학년 선수들은 게임을 뛰기 어렵다. 중요한 시기인데, 잘하는 선수들만 기회를 얻게 된다. 독일에는 7살부터 시작해 19살까지 1년 단위로 리그가 있다. 더 어린 나이에도 축구를 할 수 있고, 12살부터는 1~2부 식으로 수준별 대결과 승강도 이뤄진다. 어떤 나잇대라도 ‘강대강’ 경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돼 있다.

발상의 차이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일본에서는 유소년 축구로 대표팀을 강화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유소년 축구의 발전으로 유럽 축구 문화의 좋은 점을 가져오면, 아이들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대표팀의 경기력을 위해 유소년을 키운다는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유소년 기반이 나중에 대표팀 역량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수 선수들이 결국 대표 선수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부모의 재정 부담을 덜고, 지도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자질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축구를 할 수 없는 시대인 데다 인구절벽까지 겹친다면 15년 뒤에 유소년 축구의 양과 질도 달라질 것이다.

김대길 축구 해설위원

“유소년 축구에 혁명적인 투자해야”

축구협회의 재원이 A대표팀의 마케팅에서 나오지만, 협회 예산을 A대표팀에서 유소년 투자로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규모의 협회 예산으로 유소년 투자를 대폭 늘리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지도자 처우를 개선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협회는 후원 유치를 위해 A대표팀 성과에 매달리면서도, 재원 확충을 위해 새로운 물길을 내야 한다.

축구협회가 2014년 독일, 벨기에 등 유럽의 유소년 육성 정책을 모델 삼아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엔 유망 선수를 발굴·육성하는 데 초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KFA 철학과 경기모델을 기준으로 그 연령에 맞는 선수를 ‘선발’하고 국제 대회 경험을 주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마저도 예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A대표팀이 우선시 되면서, 유소년이나 프로팀 유스 정책조차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풀뿌리 축구에 대한 투자가 상당히 많이 이뤄지는데, 대표팀보다는 축구의 보급이 우선이다. 축구를 통해 생활이 풍요해지고, 일본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일본축구협회가 2050년 월드컵 우승을 내걸었지만, 그것은 지상과제가 아니라 여러 목표 중 하나일 뿐이다.

백영철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

“옳은 소리 하면 불편한 사람 되면 안 돼”

협회 행정으로 눈을 돌려보자. 시리즈를 위해 만난 현장의 지도자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했다. 다만 이들의 생각이 협회 상층부에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축구협회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 애초 입사하기도 어렵다. 언제부터 이 재원들이 개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협회를 발전시키기보다, 내부에 동화돼 창의성을 잃어버리게 됐다. 집행부가 현장과 발을 맞추고 내부 사기를 끌어올리려면, 정무적 판단은 임원들이 하더라도 컨트롤타워 역할은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지금 협회에서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경기인 출신 임직원도 집행부에만 들어가면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다.

지도자 강습회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데, ‘옳은 소리를 하면 불편한 사람이 되는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데에 소극적이 된다. 리더십을 발휘해 상하로 소통하도록 하고, 제도적으로는 ‘젊은 지도자 모임’ 같은 것을 만들어, 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협회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최근 대표팀 사령탑에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는데, 협회가 ‘왜?’에 대해 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행정이 다이내믹하고, 일본은 차근차근 일하는 문화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 조직이 경직되거나 과정보다는 결과 위주의 행정이 될 수 있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유럽에서 활동하는 일본 감독 배출 고민”

일본의 경우 축구협회나 프로연맹의 수장이 젊은데...

노노무라 요시카즈 J리그 회장은 대표팀 선수로 유명하지 않았고, 지도자로도 별로였지만 홋카이도 지방 축구단의 대표를 맡으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그런 힘이 프로연맹을 이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미야모토 쓰네야스 일본축구협회 회장도 전무이사 등을 거치면서 수련 과정을 거쳤다. 둘 다 한국의 홍명보나 최용수급이어서 선배들은 싫어하지만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팀 사령탑에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는데, 잡음이 많다. 일본에서 보는 시각은 어떤가?

선임 과정이 중요한 것은 맞는데, 내부의 말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당황스럽다. 일본에서는 프로세스에서 일정하게 비밀을 유지하고, 내부 정보도 컨트롤한다. 내부의 얘기가 자칫 거론된 후보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파 감독 얘기도 이슈가 되는 것 같은데, 일본의 A대표팀 후보군에는 60~70명의 해외파 선수가 있지만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다루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일본 축구계의 관심은 해외파 감독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럽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마쿠스 한 분데스리가 통신원

“여성들 자연스럽게 축구할 환경 만들어야”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있는가?

여성 지도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초등학생 선수들이 갈 중학교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운동을 마음껏,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여자축구 경기가 대형 구장에서 열려도 매진되는 경우가 있다. 팬 이벤트도 다양하다. 여자축구에 관심이 생겨나도록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환경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남녀 구분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프로축구 구단들이 산하에 연령별 여성 축구 클럽을 의무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끝)

정리/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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