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비상 상황인데 '혈세로 유럽行'…현실 망각한 공직자들 [혈세 누수 탐지기①]

신현보 2024. 7.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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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푼 세금 먹는 하마들
"혈세로 12박 14일 유럽行"
나랏빚 1100조원 돌파…GDP 50% 넘어서
2070년 나라채무 7138조 예상…GDP 200%
실질수지비율 하락세…"지자체 안정성 위협"
지자체 업추비·지방의회비 절감 노력 부족
엔데믹 후 외유성 출장·무리한 사업 포착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해외로 떠나려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스1


A시의회는 최근 12박 14일 유럽을 다녀왔다면서 대놓고 '해외 배낭 연수'라는 제목의 출장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연수 목적은 '관광 산업 육성 방안 강구', '도시재생 사업 활성화 대책 수립'이라고 명시했지만,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내내 일정표에는 단 한명의 해당 지역 관계자나 전문가를 만났다는 내용 없이 오로지 관광지 방문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최근 이렇게 지난 2년간 전국 지자체에서 외유로 의심되는 해외 출장이 1000건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었습니다. 이렇게 쓰인 혈세가 200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빚더미에 중앙정부·지자체 '비상'
 …이러다 나랏빚 GDP 200% 된다

이런 혈세 낭비는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이 굉장히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속출해 굉장히 뼈 아픕니다. 지난해 나랏빚은 1100조원을 돌파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국민 1인당 2000만원씩 갚아야 하는 규모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나랏빚이 처음으로 50%를 넘어 이 또한 사상 최고치입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년 전 내놓은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2070년 국가채무는 7137조6000억원으로 GDP의 약 2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출생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인구 고령화는 진행되면서 나랏빚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직 사회는 이러한 현실을 망각한 듯,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쓰자는 분위기 같습니다. 재정건정성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지방자치단체 통합재정수지비율(지자체의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나타내는 수치)은 지난 2022년 5.26%로 전년 대비 3.32%포인트 상승하며 개선되기는 했습니다.

출처=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종합보고서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게 실상입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최근 재정분석종합보고서를 통해 "자치단체 재정운영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통합재정수지비율이 개선된 것은 예상치 못한 지방교부세 등 재원의 급증, 이월금 증가 등으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경고입니다. 실질수지비율은 2020년 15.09%→2021년 13.59%→2022년 11.93%로 하락세입니다.

 혈세로 외유성 출장에 무리한 사업 '속속'

상황이 이렇지만 지자체에서는 각종 경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착시에 가까운 흑자재정 확대에 방심한 걸까요. 행정안전부는 업무추진비·지방의회경비 절감률이란 통계를 발표합니다. 해당 비용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파악하는 지표입니다.

전년 대비 경비 절감한 지자체 수. /그래프=신현보 기자


이 지표를 통해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업무추진비를 절감한 곳은 2017년 1곳→2018년 157곳→2019년 72곳→2020년 204곳→2021년 239곳→2022년 1곳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방의회 경비를 절감한 곳은 2017년 0곳→2018년 205곳→2019년 143곳→2020년 223곳→2021년 212곳→2022년 26곳입니다.

두 지표 모두 2017년과 2022년에 지표가 악화했다가 이듬해 다시 개선된다는 패턴이 발견됩니다. 이는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공무원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지방선거는 2018년과 2022년 6월에 각각 실시됐는데, 임기가 끝나기 전 지자체에서는 각종 경비를 최대한 쓰려고 한다는 겁니다. 2021년이 아니라 2022년에 급감한 이유는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소진하지 못한 비용을 2022년 임기 직전 대거 사용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됩니다. 굳이 안 써도 되는 혈세지만, '나는 떠나니 그냥 쓰고 가자'는 의중이 담겼다는 얘기입니다.

한경닷컴이 취재한 여러 사례에서도 불편한 진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지방의 한 B시의회는 최근 시의원이 22명이 8박 10일 일정으로 튀르키예와 크로아티아를 갔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다른 당 소속 의원들이 "세금 낭비 외유성 출장은 반대한다"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된 탓입니다. 이 시의회는 2년 전 국외연수 취소로 여행사에게 혈세 1억원의 경비를 그냥 날린 전례가 있습니다.

무리하게 여러 사업을 벌여 재정 지출이 재정수입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통합재정수지비율이 악화된 곳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서울의 C구는 "인구 감소 지속 등 세입기반의 약화로 재정 수입이 소폭 증가에 그쳤는데, 각종 재생사업·복지관·보건지소 등 대규모 투자사업 및 복지예산이 증가해 지표가 악화됐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한 공무원은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눈먼 돈이 많을 것"이라면서 "공직 사회를 지켜보는 눈이 없을수록 방심하고 방만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는 "어쩌다 보도가 나온다고 해도 '이때만 버티자'는 주의"라고 귀띔했습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작년이 재작년보다 더 안 좋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이 되면 지자체별로 더 불편한 현실을 담은 통계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에는 경기부진과 기업실적 악화로 통합재정수지비율이 적자로 전환될 일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입니다.

이미 엔데믹으로 하늘길이 열리면서 외유성으로 의심되는 해외 출장이나, 재원 증가에 무리한 사업 진행이 추진되는 모습도 속속 포착됩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면밀한 세입예측과 효율적 세출관리에 기반한 재정운영의 지속가능성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걱정이 큽니다.
 
한경닷컴은 앞으로 국민들의 세금이 허튼 곳에 쓰이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찾아 실태를 점검하는 '혈세 누수 탐지기' 시리즈를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 또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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