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책] 연극 클로저의 ‘안나’ 진서연...1년째 제주서 바다 쓰레기 줍는 까닭은

장우정 기자 2024. 7.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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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독전(2018년)’, 드라마 ‘원 더 우먼’(2021년)에서 빌런(악당)으로 존재감을 키운 배우 진서연(41) 씨가 최근 환경보전대응본부가 유엔(UN) 제정 53주년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진행한 ‘2024 대한민국환경공헌대상’에서 문화 예술인으론 유일하게 수상해 주목받았다. 최근 제주로 이주한 그는 자원봉사 모임 ‘크크루(kkroo)’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1시간가량 바다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서연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만들어내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를 미미하게나마 시작한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배우 진서연은 1년째 제주도에서 바다 쓰레기를 줍는 봉사 모임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연극 ‘클로저’ 안나로 변신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 등 네 명의 남녀가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04년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상류층에 속한 사진작가로 똑똑하면서도 이성적인 캐릭터를 맡게 된 진서연은 “그간 영화, 드라마를 통해 밖으로 뿜어나오는 에너지를 표현했다면, 안나는 안에서 요동치는 에너지(욕망)가 많다”며 “2008년 ‘클로저’ 앨리스 역으로 연극 무대 데뷔했는데 16년 만에 그땐 이해가 안 가던 안나를 맡게 됐다. 나에게도 많은 경험과 내공이 쌓여서 이제는 안나를 이해하고 깊이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 중인 진서연을 지난달 18일 서울시 강남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화 예술인으로서 환경 관련 수상한 것이 인상적인데.

“제주로 이주한 지 1년쯤 됐다. 집이 바닷가에서 4분 거리라 산책을 자주 나가는데, 아이가 보석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소주병 파편을 주워 와서는 ‘보물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보석 아니라고 했더니 ‘다른 돌과 다르게 반짝반짝하잖아’ 하더라.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랬다. 아이에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사실은 쓰레기라고, 어른들이 술 먹고 버린 거라고 어떻게 말하나. 나라도 쓰레기를 주워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였다. 근데 혼자 줍기 심심하니 크크루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대가 하나 없이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8명이다.

최근엔 아이들을 데리고 쓰레기를 줍는 키즈 줍깅(플로깅) 모임 위주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오면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부모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아이 손을 잡고 나온다. 한 번 할 때 35~40명씩 모이고, 1시간~1시간 반 정도 쓰레기를 줍는다. 줍깅을 마친 아이들을 만나보니 ‘바다야, 미안해. 이제 우리가 널 지켜줄게’ 하더라. 또 아이들 스스로 쓰레기를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부모도 각성한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큰 기여를 할 순 없지만,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만들어내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미미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있는 점을 평가받은 것 같다.”

진서연은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함께 쓰레기 줍기 모임을 하고 있다. /진서연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1월 제주 서귀포시 사계해변에서 쓰레기 줍기에 나선 아이들. /진서연 인스타그램 캡처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운동하는 식의 루틴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들은 프리랜서다.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무조건 대체가 된다. 원하는 캐릭터에 딱 맞아야 하고, 그중에서 가장 뛰어나야 하는 직업인 거다. ‘죽어라 공부해서 1등 했는데, 이미지가 안 맞아서 안 될 것 같아’ 하는 식이다.

압박감이 굉장하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이 캐릭터를, 이 작품을 못 할 가능성이 대부분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패배자야’라는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요가를 시작해 마음 수련을 했고, 명상을 하게 됐다. 신체가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선택당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실제로 외부의 영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제주도로 이사 가면서 건강한 루틴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집에는 TV가 없어서 해가 지면 할 게 없다. 밤 8시면 자고, 새벽 4~5시면 깬다. 아침에 명상하고, 운동하고, 책 읽고 해도 해가 안 뜬다. 하루를 매우 길고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비건(채식주의자)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안다.

“요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기 전에 뭘 부대끼는 걸 먹으면 동작을 할 수가 없다. 간단한 것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채식과 육식을 섞어서 먹게 됐다. 그러다 독일 베를린에 가서 살게 됐는데, 거긴 건강한 채소가 한국보다 현저히 싸고 비건 인구도 많았다. 고기를 안 먹어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비건 식당도 많다 보니 채식 생활에 익숙해졌다.

또 공장식 사육으로 자란 동물들이 굉장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다큐에서 접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이런 고기를 먹는 것이 환경을 해치고, 우리 몸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오고 나선 고기를 안 먹으면 식사 약속을 잡기 어렵고, 메뉴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식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직접 연구해서 요리해 먹기 시작했다. 최대한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서연(왼쪽)은 연극 '클로저'에서 사진작가 안나 역을 맡아 공연하고 있다. /클로저 SNS 캡처

─1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어려운 점은 없나.

“드라마나 영화는 마이크가 코 앞까지 온다. 귓속말이 하고 싶으면 속삭이면 된다. 연극은 그러면 뒤에까지 안 들린다. 감정은 똑같이, 대신 볼륨을 크게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좋은 점은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간다는 점이다. 배우로선 감정을 켜켜이 쌓아나가기에 좋다.

주변에서 ‘같은 공연을 50회씩 하면 지겹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함께 공연하는 배우진이 매번 바뀌고(더블 캐스팅), 날이 가면서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 지니 공연 때마다 매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울컥하던 시간이 10초 걸렸던 게, 5초로, 다시 2초로 줄어들고, 이젠 상대가 어떤 멘트만 해도 ‘욱’하고 감정이 터져 나온다. 매번 너무 재밌다.”

─'안나’ 역을 맡았는데, 기존에 카리스마 있던 역할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이미지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밖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를 표현했다면, 안나는 안에서 엄청나게 요동치는 에너지가 많은 인물이다.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다. 16년 전에 앨리스 역으로 데뷔했다. 2007~2008년을 앨리스로 살면서 당시엔 남의 남자를 뺏는 안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는 안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른이라면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 때 이를 이성적으로 선택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모든 걸 버리고라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무엇이었나.

“영화 ‘독전’을 찍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셨다. 당시 안 되면 연예계를 떠날 작정으로 ‘보령’ 역을 준비했었다. 그것만큼 죽어라 준비한 게 있었나 싶을 정도다. 촬영 기간 진서연으로 있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약물에 취해서 흥분된 상태를 연기해야 하니 현장에서도 맨발로 이상한 음악 들으며 춤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협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불안한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랐고, 그렇게 느꼈다면 오해를 풀고 싶지 않았다. 배우들과는 무대 인사를 돌면서야 친해졌다. 감독님도 보령을 존중해주셨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보라고 해주셨다.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임했던 작품이라 굉장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깐깐한 예술단 감독 설아를 맡은 배우 진서연이 등장하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혜영 감독 제공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느낀다. 노력한 것을 관객들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한다. 거짓말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작품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고, 왜 루틴이 많냐고 한다.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게 아니라 뭘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배워두고 만들어두는 것이다.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있다. 수석 무용수 출신 감독으로 나온다. 보통 3개월 전, 짧으면 한 달 전부터 준비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3달 준비해서 20년 무용수의 태를 표현할 수 있겠나. 늘 준비돼 있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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