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플로리다 바다도, 시칠리아 농업도 곳곳이 기후위기...지구의 고민과 희망 담았다
영국 산림청과 파커해리스 공동 주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장 마크 카이미와 발렌티나 피치니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농부들의 삶이 큰 변화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중해의 섬인 시칠리아는 연중 온화한 날씨로 유럽 내 밀과 과일, 채소의 주요 산지로 자리를 잡아왔다. 하지만 기후변화 영향으로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고 강수량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수천 년간 이어온 전통 작물을 버리고 망고와 아보카도, 파파야 같은 아열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기후변화 시대에 적응하고 있는 시칠리아 농부들의 노력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국왕립지리학회는 11일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 마크 카이미와 발렌티나 피치니가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 시리즈인 ‘트로피칼라(Tropicalia)′를 포함해 사진작가 31명이 촬영한 사진 112점과 영화감독 13명이 출품한 영상 12편을 올해 ‘지구 사진(Earth Photo) 2024′의 수상작과 후보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진과 영상은 디지털 시대에도 대중을 독려하고 설득하는 데 강력한 수단으로 활약한다. 올해 6년째를 맞은 이 사진전은 영국 왕립지리학회와 영국 산림청, 시각예술 컨설팅사인 파커해리스가 함께 열고 있다. 지구 기후와 동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를 주제로 다룬다. 사진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인류가 사는 세계와 사람, 환경, 변화하는 기후에 대한 소통을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1900편 이상의 작품이 출품돼 사진과 영화, 지리, 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의 심사를 받았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루이스 페도토프 클레망 영국 포토웍스 사무국장은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뛰어난 사진과 영상이 출품됐다”며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한 선견지명을 제시하는 가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사진과 영상 통해 기후와 생태 이슈 알려
올해 지구 사진상은 카이미와 피치니의 다큐멘터리 사진작 ‘트로피칼리아(Tropiclia)’가 받았다. 시칠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가 식량 주권에 미치는 급격한 영향을 기록한 이들 작품은 이 사진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작가들은 농부들이 선택한 대안과 함께 실제 농부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적응하거나 또는 저항하는 농부들에게 노하우를 전달했다.
작가들은 “유럽이 전례 없는 기상이변을 경험하면서 시칠리아에서 발생한 기후 변화의 광범위한 결과를 기록으로 담았다”며 “온난화 전쟁의 새 진원지가 된 시칠리아섬에서 벌어진 투쟁만 봐도 앞으로 이 지구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상과 별도로 영상 작품에 주는 동영상 상은 폴란드계 출신 영국 다큐멘터리 작가인 줄라 래비코프스카의 단편영화 ‘국경선’에 돌아갔다. 그는 1939년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옛소련에 점령 당한 시기에 태어난 할아버지가 다시 폴란드를 찾는 모습을 따라가면서 정체성과 정치적 상징으로서 국경의 의미를 되짚었다.
독일이 폴란드 국토의 48.4%를 점령하면서 강제 이주와 착취, 학살이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 결국 이 과정에서 전체 인구의 21.4%가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감독은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자연, 국경,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상’은 눈에 보이지 않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담은 작품에 돌아갔다. 미국 사진작가 제니퍼 애들러는 2023년 백화현상으로 황폐해진 미국 플로리다의 키스 해안의 황량한 바다에 들어선 산호 양식장을 담은 사진에 ‘미래의 산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화현상은 해양 폭염으로 수온이 급격히 올라가며 하얗게 죽어가는 현상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관찰되고 있다.
키스 해안 산호도 한때 질병과 백화현상으로 90%가 사라졌다. 사진에서 잠수를 하고 있는 록산느 분스트라 미국산호복원재단 연구원은 키스 해안 일대에 설치된 세계 최대 산호 양식장에서 엘크 혼 산호의 회복력을 검증하고 미래 해양 생태계 복원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영국 산림청은 올해의 ‘산림 생태계상’ 수상작으로 열대우림 파괴를 일삼는 농업 자본과 마약 조직에 맞선 원주민 공동체 단체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택했다. 프랑스 출신 사진가인 마크 라투월리에르는 2022~2023년 콜롬비아 북부의 ‘바조 아트라토(Bajo Atrato)’에서 벌어진 불법 산림 개간 문제에 주목했다.
아프리카계 원주민 수백 명으로 이뤄진 공동체는 오랫 동안 이곳에서 대대로 소규모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 지역을 벌목하려는 농업기업들과 이들과 결탁한 마약 조직이 이들을 내몰자 ‘어머니 나무의 수호자’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예술가와 부호들이 지원하는 지구 자연의 기록물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고 인식한 예술가와 재력가들은 현장에서 취재하는 사진가들과 작가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구 사진전에도 이들이 후원하는 상들이 많다.
호주 출신 유명 화가인 시드니 놀런의 이름을 딴 시드니놀런트러스트는 기후위기 증거를 수집하는 영상 예술가인 루이스 비어와 존 후퍼에게 놀런이 살던 영국 더로드의 옛 집에 2주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호주의 블루 마운틴에서 찍은 영상을 이용해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시간을 재해석한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이들은 소감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별이 생성되고 바위와 바다가 만들어지는데 137억 년이 걸렸다”며 “이런 우주적 관점이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도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데이비드울프케이재단은 25세 이하 작가들에게 상금과 유명 감독과 작가의 멘토링을 지원하고 있다. 재단은 올해 데이비드울프케이 미래잠재력상 사진 부문 수상작에 중국 출신의 레이먼드 장 작가의 작품 ‘팔레트 위를 걷다(Walking on the Palette)’를 선정했다.
올해 14세 학생인 그는 중국 남부 한 농촌 마을에서 논두렁을 걷는 농부 모습을 담은 작품을 출품했다. 농부가 형형색색의 논 사이를 걷는 모습은 물감을 풀어놓은 거대한 팔레트 위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영상 부문에선 인도 출신의 작가 프라헬리카 데카가 촬영한 ‘지난날(The past)’이 선정됐다. 영화는 1964년 사이클론이 강타한 인도 팜반섬 남쪽의 유령마을 다누쉬코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폐허가 된 마을과 바다의 장관을 즐기려고 몰려온 관광객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서 인간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라질 여성 작가인 마릴린 리베이로는 2019년 8월 10일 ‘지구의 허파’ 아마존에서 벌어진 최악의 산불을 기록으로 남겼다. 훗날 ‘불의 날’로 기록된 이날 불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농부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태우면서 시작됐다. 불은 며칠 만에 2000㎞ 떨어진 상파울루에 도착했고 밤이 낮처럼 훤해 질 정도로 대도시를 위협했다.
작가는 중형카메라를 직접 매고 들고 다니며 브라질 판타날처럼 생물다양성에서 중요한 지역을 촬영하고 이를 담은 필름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컴퓨터그래픽 소프트웨어사인 포토웍스는 리베이로 작가에게 온라인에서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표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정책을 바꾸는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날카로운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잠재력 있는 사진가와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발굴해 멘토링을 해주고 있다. 올해 뉴사이언티스트 에디터상 사진 부문에는 캐나다 사진작가 테일러 로즈가 촬영한 ‘알래스카의 녹슨 강’이 선정됐다.
로즈는 알래스카의 브룩스 산맥 지역의 토양층이 녹으면서 암반에 붙어있던 금속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을 담았다. 작가는 2023년 투팔레릭크릭 지역과 지류에서 산화된 철이 주황색을 띠며 따라 흐르는 모습이 포착했다. 이곳은 지난 2006년 이후 기온이 2.4도가 오르며 심각한 환경 변화를 맞고 있다.
온라인 영상 부문에선 필리핀 출신 브리치 애셔 하라니 감독의 애니메이션 ‘황폐해진 자의 꿈’이 수상작에 올랐다. 작품은 필리핀을 강타한 가장 치명적인 슈퍼 태풍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는 인터뷰와 음성, 뉴스보도, 영상에 낙서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조합해 지역사회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문제를 알렸다.
영국 시민운동 기구 내셔널트러스트는 사진작가이자 고대숲연합의 공동 창립자인 티제이(TJ) 와트 작가를 올해 내셔널트러스트 애팅엄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했다. 기후 변화 위협으로부터 동식물 서식지를 보호하는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는 평소 기후변화의 위협에서 고대 나무를 지키기 위해 위성 이미지, 라이다, 드론을 사용해 다양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수상작인 ‘플로레스 섬 삼나무’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발견된 높이가 46m에 달하는 거대한 붉은 삼나무를 담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이 나무가 1000살이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와트의 작품활동은 고대 숲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캐나다 정부와 여론은 숲을 지키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상작과 후보작에 선정된 작품의 전시는 내달 21일까지 영국 런던의 영국왕립지리학회에서 열린다. 또 내년 3월까지 영국 내 영국 산림청 지사 6곳에서 또 오는 11월 3일까지 내셔널트러스트 4개 지사에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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