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홍원식과의 악연… 한앤코, 남양유업 500억 손배소 쟁점은

노자운 기자 2024. 7.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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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소송 끝에 남양유업 경영권을 갖게 된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와 창업주 2세인 홍원식 전 회장이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홍 전 회장이 주식 양도 소송전에서 패소했음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한앤코는 2022년 홍 전 회장을 상대로 5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지금까지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가 올해 3월에야 첫 변론기일이 잡혔다. 이제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한앤코는 남양유업의 경영권 지분 양수도가 3년이나 미뤄지는 바람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홍 전 회장 측은 손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뉴스1

12일 투자은행(IB) 및 법조계에 따르면, 한앤코와 홍 전 회장의 손배소 1심 두 번째 변론기일이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다. 한앤코는 법무법인 화우를, 홍 전 회장 측은 법무법인 바른을 선임했다. 화우는 정진수 전 대표변호사를 필두로, 바른은 부장판사 출신 고일광 변호사를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앞서 지난 2021년 5월 한앤코는 남양유업 오너 일가가 보유한 경영권 지분 53.08%를 인수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그러나 석 달 뒤 홍 전 회장 측이 “한앤코가 회사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했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한앤코는 홍 전 회장 측을 상대로 주식 양도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1월 4일에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같은 달 30일 한앤코는 지분 양수 대금 3100억원을 홍 전 회장 측에 넘기며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매매 계약을 맺은 지 약 3년 만의 일이었다.

한앤코 측은 이미 2022년 말 홍 전 회장을 상대로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홍 전 회장이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버티는 동안 회사의 정상화가 늦어졌고, 이에 따라 한앤코가 피해를 봤다는 취지다. 500억원은 일부 청구 금액에 불과하다. 전체 청구액은 향후 손해액이 확정되면 다시 계산해 정한다.

홍 전 회장이 휘말린 소송전은 이 외에도 여러 건이 있다. 일단 홍 전 회장은 한앤코에 넘어간 남양유업을 상대로 최근 443억원 규모의 ‘임원 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해둔 상태다. 또 대유위니아그룹이 홍 전 회장을 상대로 320억원 규모의 위약벌 청구 소송을 내 상고심까지 가 있으며,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심혜섭 남양유업 감사가 홍 전 회장의 보수한도 결의 취소 및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IB 업계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한앤코의 손배소를 주목하는데, 법원의 판단에 따라 M&A 시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손배소의 핵심은 ‘한앤코가 경영권을 3년 늦게 넘겨받는 바람에 손해를 봤느냐’다. 한앤코는 남양유업과 주식매매계약을 맺고 인수 대금 3100억원을 에스크로에 넣어뒀다. 에스크로 계약은 제3자를 통해 자금이나 자산을 보관하는 것을 뜻한다. 거래 당사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이는 한앤코가 언제든지 홍 전 회장 측에 돈을 줄 준비가 돼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3년 전 남양유업 기업가치를 3100억원으로 보고 주식매매계약을 했지만 소송이 장기화하는 동안 오너 리스크 등으로 인해 가치가 하락했다는 게 한앤코 측 주장이다. 한앤코 입장에선 돈만 에스크로에 묶여있고 정작 회사 몸값은 떨어진 것이다. 즉, 물건값을 먼저 치렀는데 3년 뒤 값이 떨어지는 바람에 손해를 본 셈이다.

여기서 ‘기업가치’를 어떻게 볼지를 놓고 양측의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의 기업가치는 표면적으론 3년 전보다 오히려 높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남양유업 주가(55만원대)는 2021년 5월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되기 직전(37만~38만원대)보다 오히려 높다. 올해 1월에는 64만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장내 주가가 실제 기업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액면분할을 하지 않아 주식 수가 72만주밖에 안 돼, 주가의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앤코가 홍 전 회장 측과 주식매매계약을 맺은 직후 주가가 이틀 만에 70%나 오른 바 있다.

때문에 남양유업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다른 숫자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순자산의 변동을 근거로 기업가치 훼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작년 말 남양유업의 순자산은 6782억원으로, 주식매매계약 직전인 2020년 말(8732억원)과 비교해 22%가량 줄었다.

적자 기업이기 때문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나 주가수익비율(PER)로는 평가하기 어렵다. 다만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적자 폭이 꾸준히 확대됐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당기순손실은 527억원에 그쳤으나 이듬해 589억원, 2022년 784억원으로 늘었으며 작년엔 670억원에 육박했다. 경영권 이전이 이뤄지지 않은 3년 동안 기업가치가 훼손됐다고 볼 만한 근거가 되는 셈이다.

홍 전 회장 측에서는 남양유업의 기업가치 하락에 대해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민법 제392조는 “채무자는 자기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그 이행지체 중에 생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이행기에 이행해도 손해를 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한다.

즉 주식 인도가 지체되는 동안 발생한 손해이기 때문에 원래는 홍 전 회장이 배상하는 게 맞지만, 이번 경우엔 제때 지분을 넘겼더라도 기업가치의 훼손을 막기 어려웠을 것이어서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게 홍 전 회장 측 주장이다. 쉽게 부동산 매매에 빗대어, 계약을 하고 석 달간 인도를 이행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옆집에서 불이 나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민법에 따라 매도인은 매수인의 피해를 보상해 줄 책임이 없다. 제때 집을 인도했더라도 옆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 전 회장 입장에선 출산율 하락에 따른 유업계의 업황 악화 때문에 기업가치가 ‘불가피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만 같은 기간 경쟁사의 재무가 개선됐다는 점은 홍 전 회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매일유업의 경우 순자산이 2020년 4400억원에서 지난해 54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한앤코가 3년 전 남양유업을 인수했다면 기업가치를 올려놓을 수 있었을지 여부도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될 전망이다. 홍 전 회장 측에선 단지 ‘가정적 상황’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손해배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살아있었다면 남은 생애 동안 얼마를 벌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손해를 배상해 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 한앤코가 기업을 인수했을 때 3년 동안 몇%의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했는지 계산해 보면, 남양유업을 제때 인수했을 경우 몸값이 얼마나 올랐을지도 추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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