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던 아베크롬비, 어떻게 '월스트리트 애정템' 됐나[케이스스터디]

2024. 7.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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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부터 루스벨트 대통령까지
낚시·캠핑용품 즐겨 찾아
1992년 마이클 제프리스 CEO 선임 후
10대 타깃 쿨한 브랜드로 이미지 변신
선망의 브랜드, 수많은 논란 일으키며
비난·조롱의 대상으로 전락

[케이스스터디 - 성공에서 배운다]

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 앤 피치(아베크롬비)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젊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브랜드’로 불렸다. 젊음, 열정 등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회사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 결과였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00년대. 유색인종 차별, 종교 차별, 외모 차별, 남녀 차별, 여성 비하 등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쿨한 브랜드’에서 ‘불매 브랜드’로 이미지는 단숨에 곤두박질쳤다. 외신들은 아베크롬비가 문화적 감수성이 없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평가하며 앞다퉈 실패 이유를 분석했다. 2022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아베크롬비가 어떻게 흥하고 몰락했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내놓기도 했다. 

2024년 현재 아베크롬비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최근 아베크롬비의 수식어는 ‘월스트리트가 사랑하는 회사’다. 최근 1년 주가는 395% 뛰었다. ‘한물갔다’던 아베크롬비는 어떻게 재기에 성공했을까.


◆ 쿨한 10대의 브랜드, 망한 브랜드가 되기까지

아베크롬비는 올해로 132주년을 맞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다. 창업자인 데이비드 토머스 아베크롬비가 뉴욕 맨해튼에 만든 아웃도어 기어 용품점 ‘아베크롬비’가 그 시작이다. 낚시·등산·캠핑 용품 등을 판매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애용한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아베크롬비에는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 첫 위기는 1970년대 시작된 경영난이었다. 미국 정부가 1966년 동물복지법을 제정하고 멸종위기 동물 보호에 나서면서 사냥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베크롬비의 고객 대부분은 사냥용 의류와 사냥 용품을 구매했지만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충성도 높은 고객까지 이탈하게 됐다. 아베크롬비는 저가 상품을 출시하고 교외 지역 매장을 늘리는 등 수익성 확보를 위해 시도했지만 1975년 1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1976년 8월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한 것이다.

아베크롬비는 1990년대 재기했다. 1992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마이클 제프리스가 10대를 타깃으로 사업 전략을 결정하면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트렌드에 민감한 청소년이 유행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미남·미녀 모델을 기용한 광고 마케팅도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도발적인 이미지로 유명세를 얻은 미국의 사진 작가 브루스 웨버를 수석 사진작가로 영입해 상의 탈의하거나 최소한의 옷만 걸친 모델을 앞세운 광고 캠페인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0대는 물론 성적소수자(LGBT)의 관심을 사면서 아베크롬비는 ‘쿨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아베크롬비는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회사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공했다. 매출은 1992년 8500만 달러에서 이듬해 1억1000만 달러로 늘었고 1994년 1억6500만 달러까지 뛰었다. 아베크롬비 매출은 △1995년 2억3600만 달러 △1996년 3억4000만 달러 △1997년 5억2000만 달러 △1998년 8억500만 달러 △1999년 10억 달러 등을 기록하며 수직 상승했다.

제프리스는 아베크롬비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2000년 하위 브랜드 ‘홀리스터’를 론칭했다. 아베크롬비가 미국 고등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중저가 브랜드라면 홀리스터는 초등생부터 중등생까지를 핵심 고객층으로 삼고 가격대는 저가로 설정했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두 번째 위기다. 매출은 20억 달러(2005년)를 돌파했지만 인종차별적인 판매 전략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인 티셔츠를 출시한 게 문제가 됐다. 아베크롬비는 베트남 전통 모자인 ‘논’을 착용한 남성이 눈을 치켜뜨고 우스꽝스러운 영어 발음을 하는 이미지를 티셔츠 전면에 삽입했다. 출시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시위가 확대되자 아베크롬비는 공식 사과하고 전국 311개 매장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비판은 줄지 않았다.

아베크롬비는 ‘브랜드 정체성은 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된 논란으로는 △고객 자격 논란(2006년) △채용 과정에서 발생한 종교 차별 논란(2008년) △전용기 승무원 속옷 규정 논란(2012년) △홀리스터 모델 인종차별 논란(2012년) △고객 외모 차별 논란(2013년) △아시아 지역 가격 논란(2013년) △마이클 제프리스 성추행 논란(2023년) 등이 있다.



◆ 역시 리더가 중요해

이러한 아베크롬비는 끊임없는 차별적 발언과 논란으로 불매 운동으로 장기화됐다. 여기에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2010년대 들어 수익성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2013년 45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하락세가 시작됐다. 아베크롬비의 매출은 2014년 41억 달러로 줄었고 이듬해 37억 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2014년 처음으로 XL 사이즈를 론칭하는 등 고객 잡기에 나섰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2017년 아베크롬비의 매출은 33억 달러까지 줄었다. 

그런데 최근 아베크롬비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MZ세대 여성’과 ‘월스트리트’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주가로 나타난다. 2023년 7월 3일 아베크롬비의 주가는 37.29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 7월 1일 184.59달러를 기록했다. 1년 만에 395% 급등한 셈이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회사가 어떻게 젠지 고객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 주된 요인으로는 △프랜 호로위츠 CEO 리더십 △성적 마케팅 중단 △제품 라인업 간소화 △사이즈 다변화 및 디자인 개편 △고객 편의성 개선 등으로 꼽힌다.

우선, 리더십의 변화가 가장 컸다. 2017년 아베크롬비는 최고상품책임자(CPO)로 근무해온 프랜 호로위츠를 신임 CEO로 승진시켰다. 호로위츠는 CEO 선임 직후 “우리는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브랜드”라며 “과거에 마주한 감정과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호로위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쟁사 매장 방문이다. 소비자들이 어떤 이유로 아베크롬비 대신 경쟁사를 선택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회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장 내 시끄러운 음악과 과도한 향수 등을 없앴다. 고객의 피로도를 높인다고 파악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편한 쇼핑을 가능하게 했다.

모델의 근육을 드러내는 등 과도한 노출을 통해 남성성을 부각하는 마케팅도 중단했다. 직원의 외모보다는 고객과의 소통을 중시해야 한다는 정책을 새로 신설하는 등 외모를 중시했던 매장 직원 고용 방식도 변경했다. 또한 아베크롬비 의류만 입어야 했던 정책을 폐기하고 매장 직원들이 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복장 규정을 완화했다. 매장 직원에 대한 명칭도 ‘모델’에서 ‘브랜드 대표’로 변경했다. 

제품 라인업도 축소했다.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은 무지 티셔츠, 라운지웨어, 재킷 등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제품만 남겼다. 타깃은 10대에서 20~40대까지 확대하고 고객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사이즈 측정 방식도 변경했다. 제품 디자인에서 로고는 최소화했다. 

포브스는 “호로위츠는 포용성과 새로운 매장 콘셉트에 초점을 맞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며 “마이클 제프리스를 빠르게 대체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향수 가득한 매장, 윗옷을 벗은 모델, 로고플레이 등을 없애고 다시 MZ세대를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아베크롬비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젊은 고객들을 확보하며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경제포털 야후 파이낸스는 “의류업계 실적이 처참한 상황에서도 20~40대의 수요에 힘입어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사업이 마침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크롬비 매출은 2020년 31억3000만 달러까지 떨어졌으나 이듬해 37억1000만 달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42억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6% 성장했다. 이 수치는 2012년 매출 45억1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두 번째로 높다. 

호로위치는 “우리는 지역, 브랜드 및 채널 전반에 걸쳐 최고의 성장을 달성했다”며 “영업이익률은 8% 이상으로 올라섰다. 새로운 아베크롬비의 시대다. 이제 글로벌 매출 50억 달러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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