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김다은 기자 2024. 7. 12. 05: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기후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빅테크 기업과 각국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전력 수요를 감당하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내에 만들어진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의 서버실. ⓒ카카오 제공

인공지능(AI)이 기후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탄소중립’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가 됐다. 생성형 AI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정확한 최신 정보를 계속해서 학습한 AI만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공부’시키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연산해 실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는 단순 검색을 통해 답변을 얻는 것보다 수십 배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일반 검색을 할 때 사용되는 전력은 0.3Wh(와트시)이지만 같은 내용을 챗GPT로 검색할 경우엔 10배인 2.9Wh가 사용된다. 만약 구글 검색엔진에 AI 기능이 통합될 경우, 최대 30배까지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개별 검색당 6.9~8.9Wh).

AI가 구동되는 모든 과정은 ‘데이터센터’에서 이루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 네트워크 회선, 데이터 스토리지(저장장치) 등 IT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한 건물에 모아둔, 연중 24시간 전력을 써야 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서버 수천 대를 돌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버 수십만 대를 운영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집적하고 연산하는 AI 전용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데이터센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AI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한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지갑을 열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와 2028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5조원)를 투입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가장 큰 데이터센터에 투입된 금액보다 100배 많은 규모다. 이런 막대한 투자 추세는 당분간 계속 이어지리라 보인다.

당연히 이런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탄소 배출량과도 연결된다. 서버 수십만 대가 가동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탐욕적일 만큼’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서버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뿐만 아니라,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써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모량은 460TWh(테라와트시)로, 프랑스(425TWh), 독일(490TWh)의 국가 연간 전력 소모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2026년에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량은 그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의 탄소중립 계획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MS는 2022년 일명 ‘탄소 문샷(Moonshot)’ 계획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순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AI 기술 개발 등으로 지난해 MS의 탄소 배출은 오히려 30% 늘었다. 지난 5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은 “AI 열풍과 전력 수요 때문에 2020년에 비해 탄소 네거티브라는 달(목표)이 5배 더 멀리 떨어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기업에서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 선언에 동참한 빅테크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전력 공급망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엄청난 양의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시급한 과제가 떨어졌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전 세계에 ‘전기가 흐르는 땅’을 찾아 돈을 풀고 있다. 한국에도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인천 서구에 첫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고 2027년까지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약 8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한국에 60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 투자계획을 밝혔다. ⓒREUTERS

하지만 이런 투자에는 ‘전력난’이라는 비싼 청구서가 붙는다. 토지와 전력이 저렴한 미국 조지아주는 구글, AT&T 등의 데이터센터 50여 개가 세워진 대표적인 ‘신흥 유망’ 지역이다. 조지아주는 두둑한 법인세 수입을 반겼지만, 정작 주민들은 전기요금 인상을 감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이 높아져 전력 수급에 불안을 느껴야 했다. 미국 전력업체 조지아파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따라 2030년 겨울까지 조지아주에 필요하다고 예측했던 산업용 전력 수요는 6600MW로 기존 예측보다 17배나 많은 양에 이르렀다. 충분한 발전원과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블랙아웃(출력 제한)과 전기요금 폭등이라는 리스크가 불가피하다.

빅테크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발전원은?

이런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립을 규제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허브라 불리는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서는 올 1월, 데이터센터 신설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아일랜드는 2028년까지 더블린 지역의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지어진 데이터센터들이 국가 전체 전력의 28%를 쓰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도 변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70여 개 설립돼 있는 싱가포르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7%를 데이터센터가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싱가포르 정부는 ‘그린 데이터센터 로드맵’을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총량을 규제하고 개별 기업 투자계획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데이터센터 설립에 제동을 걸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만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이다.

5월31일 정동욱 중앙대 교수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AI 혁명에 부응한 선제적 전력공급·전력망 확충 긴요’ 보고서에도 AI 데이터센터가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6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는 점을 짚으며 AI 시대 전력 수요 증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전기(적정 전원)를 제공해야 하는가’ ‘미흡한 송배전망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등이다. 이는 AI 시대를 맞이하며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각 과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첫 번째 과제에 대한 정부의 답은 지난 5월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통해 알 수 있다. 앞선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까지 건설을 요청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은 총 4만9297MW 수준이다. 이 경우 발전기 및 변압기에서의 전력 손실 등을 고려해 1000MW(1GW)급 발전기 5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필요한 전력 수요량을 예측해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2030년 전력 수요량이 2023년 수요량보다 2배 증가할 것이라 봤다. 이에 대응하는 발전설비 계획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밝힌 것과 전력수급기본계획 최초로 한국식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우선 실무안에서는 2038년까지 이전 계획보다 10.6GW 더 많은 신규 발전설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추가 전력 수요를 위해 대형 신규 원전 최대 3기(4.2GW) 건설을 권고했다. 신규 원전 증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픈AI를 비롯해 MS 등도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헬리온에너지’ 등에 적극 투자하며 전력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원자력을 통한 전력 확보를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빅테크 기업들은 태양광·수소·지열 같은 다양한 발전원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MS는 지난 5월,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 10.5GW 상당의 재생에너지 용량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핵융합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주 발전원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예비 투자’에 가깝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는 ‘탄소 문샷’ 계획을 발표했지만 최근 AI 개발 등에 따른 전력 사용 증가로 오히려 탄소 배출이 늘었다. ⓒREUTERS

지난 5월5일 〈이코노미스트〉는 ‘빅테크 기업의 AI 전력 장악’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MS는 미국 최대 원자력 운영업체인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원자력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할 때를 대비한 투자다.”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민간 테크기업의 생존을 건 전방위적 투자의 일환인 것이다. 특히 2024년 3월 기준, 미국에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약 8000곳 중 3분의 1인 5400여 개가 설립돼 있다. 미국은 빠른 시간 안에 전력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다양한 발전원에 대한 투자를 이끌고 있다. 반면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관할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어떻게든’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력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그에 따른 에너지 전략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당장 필요한 전력’과 이들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전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전력을 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빅테크 기업에게 원전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AI 기술 경쟁을 하는 빅테크 입장에서 시간은 돈이다. 하루라도 빨리 전력을 조달할 수 있다면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투자한다. 원전은 당장 신규로 지으려고 해도 전력 생산까지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인공지능 기술 경쟁 구도에서는 당장 2~3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신규 원전은 1순위가 될 수 없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역시 대형 원전의 경우 건설기간이 13년11개월가량 걸린다는 점을 짚고 있다.

“한국, 재생에너지 구하기 너무 어렵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입장으로서는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는 것은 악몽이다. 그런 만큼 해당 기업들은 여러 발전원의 장단점을 고려해 전력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발전원은 재생에너지다. 올해 2월 발간된 신한투자증권의 데이터센터 추세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투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RE100 달성’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이를 강제하는 외부적 요인도 있다. 유럽에서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 중립 데이터센터 협약’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마존, 구글, MS 및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 기업 에퀴닉스(Equinix) 등이 이 협약에 가입했다. 보고서는 미국 역시 이러한 유럽의 규제 추세에 따라 데이터센터 전력을 규제해나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역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초기 5년 내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원전을 가동해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AI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은 당장 몇 년 내외에 일어날 일이다. RE100에서 인정하는 에너지원은 아니지만 원전과 천연가스 같은 무탄소 전원을 다변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에너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보는 다국적 빅테크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한국에 요구되는 과제다.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한국에서 첫 번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인 60MW 규모의 태양광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5년부터 AWS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아마존 사업장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자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6월11일 켄 헤이그 AWS 아시아태평양 및 일본 에너지 환경정책 총괄은 MBC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투자할 기회가 생긴다면 투자 우선순위가 (한국이 아닌) 그 나라로 바뀔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허가를 받는 일뿐만 아니라 발전소 완공 뒤 전력망을 연결하기도 어렵다며 “한국 내 기업들이 굉장히 작은 규모의 재생에너지 파이를 두고 극심한 경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예정 부지에서 천막 투쟁을 이어갔던 경남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의 765㎸ 121번 송전탑. 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에 따르면 현재 데이터센터 60%가 수도권에 설립돼 있고, 전력 수요의 70% 역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그에 따라 2029년까지 설립을 신청한 수도권 지역 신규 데이터센터 601곳 중 고작 40개(6.7%)에만 전력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은 송배전망 설립에 따른 갈등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수도권 전력자급률은 0.67이다. 가장 전력자급률이 높은 강원권은 1.96에 이른다. 수도권은 재생에너지가 있는 호남권, 화력발전소가 있는 강원권, 원전이 있는 영남권 등에서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전력을 ‘수혈’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다소비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지어질 경우 추가 전력망 확충 문제가 새로운 사회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전력공급에 제약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발전 능력이 아니라 송전 문제다. 예를 들면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강원 동해안 화력발전소들은 일부 가동을 멈추거나, 발전량을 20~30% 수준으로 낮춰 적자 운영을 이어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결국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 장거리 송전망 건설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데이터센터 수도권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시설 부담금 할인과 예비전력 요금 면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를 제안했다. 대규모 전력소비 기업들이 지역별 전력 여건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전력공급 여유정보 공개 시스템’도 구축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그림〉 참조). 동시에 신규 데이터센터가 전력 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엄격히 평가(전력계통 영향평가)해 전력 계통에 부담을 줄 경우 전기 공급을 유예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한전에 부여하는 규제책도 시행했다.

정부 계획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비수도권 지역은 IT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지자체들은 세수 확보 및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민생토론회에서 강원특별자치도를 데이터산업 중심의 ‘강원데이터밸리’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소양강댐의 수력발전, 수상태양광 등을 활용해 무탄소 에너지를 제공하는 ‘데이터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 될까?

전라남도 해남에서도 2037년까지 40MW급 데이터센터 25곳을 한곳에 모아 총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이 영농회사법인으로 참여하는 태양광 집적화단지를 조성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남군 데이터센터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 지자체 차원의 지원은 없지만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따른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6월14일 시행된 분산에너지법에 따르면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울 경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 적용을 받아 저렴하게 전기를 이용할 수 있고, 내년에 공모가 시작되는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될 경우 한전을 거치지 않고도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솔라시도 데이터센터파크 조감도. 전라남도 해남에 2037년까지 데이터센터 25곳을 모을 예정이다.ⓒ보성산업 제공

다만 분산에너지법이 실효성을 갖고 지역에너지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시장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지난해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요금제’ 도입이 산업계의 반발로 현재까지 무기한 유예된 상황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기업이 전력을 직접 구매할 경우 한전에서 PPA 요금제를 적용받게 되는데, 문제는 해당 요금제가 적용되면 지금보다 더 비싼 전기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고 해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혹은 발전원의 수리보수 등에 의해 전기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때 기업은 한전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이런 업체를 대상으로 한전은 ‘PPA 전용 요금제’를 신설해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산업용 요금과 비교해 기본요금을 최대 1.5배나 더 높였다. 그러면 어떤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계약을 맺겠나? 재생에너지 직접거래 활성화를 한전이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전이 판매 독점에 따른 지위를 악용하는 사태를 보완할 제도가 없는 한, 분산에너지법을 시행한다 해도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결국 산업계가 반발하면서 한전은 예고된 PPA 요금제를 수정·완화하겠다는 방침만 밝힌 채 현재까지 시행을 무기한 유예 중이다.

조성봉 회장은 정부가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규제하면서 한전의 전력 판매 독점권을 보호해주는 것은 ‘전기가 필요한 곳에 한전이 책임지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암묵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더 이상 전기를 안정적으로 배달(송전)하지 못한다면 한전이 전력 생태계를 독점하는 수직적 구조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 그 권한을 나누어야 한다. 전력 다소비 시대인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첫 걸음은 한전의 전력 공급 독점 체제를 넘어서서, 다양한 전력 사업자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기회를 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민주적인 ‘전력 선택권’을 보장히는 일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연구위원은 한전 독점체제의 부작용으로 전기요금이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득 역진성이 강한 기존의 ‘전기요금 할인’으로 ‘선심성 복지 정책’을 반복하는 대신 대신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게 효율성을 높인 ‘에너지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AI 기술 발전과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은 글로벌 경쟁의 문법을 바꿨다.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다. 에너지 패권 시대에 접어드는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걸맞은 전력 확보를 위한 국가 전략이 필요한 때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