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이 구의원 면담 요청한 까닭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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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도 하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돼지를 산책시키기 위해서다.
'뚱이'는 인천 동구 서흥초등학교에서 사는 돼지다.
돼지 수명은 약 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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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도 하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돼지를 산책시키기 위해서다. ‘뚱이’는 인천 동구 서흥초등학교에서 사는 돼지다. 2018년 3월28일 당시 6학년 학생들의 요청으로 서흥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들은 뚱이의 집을 수리하면서 실과를 배우고, 왕겨와 짚의 효과를 경험하며 과학을 익혔다. 미술 교과는 뚱이 그리기 대회로, 국어 교과는 뚱이 시 쓰기 대회로 연결됐다. 단순히 교과 수업에만 영향을 준 건 아니다. 돼지 수명은 약 20년이다. 뚱이를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모둠은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졌다. 선배들이 졸업해도 후배들이 뚱이를 돌볼 수 있게 됐다.
현재 반려 돼지 뚱이를 돌보는 ‘뚱아리’ 회원은 김상우(12), 배준영(12), 김상준(10), 송해석(12), 황우주(10), 이정인(12·왼쪽부터)을 포함해 4~6학년 15명이다. 당번을 정해 매일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산책을 시킨다. 알고 보면 산책은 뚱이가 아이들을 시킨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아이들보다 학교 구석구석 잘 아는 뚱이가 산책 코스를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뚱이를 돌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교를 오가는 고양이를 위해 교내 급식소 두 곳을 설치해 아침저녁으로 사료와 물을 챙기기도 한다.
활동은 학교 바깥으로도 넓어졌다. 2020년에는 뚱아리 회원 몇몇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관리하는 ‘묘한건축사무소’라는 동아리도 만들었다. 마침 서흥초등학교가 있는 송림동 일대는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사람은 대다수 떠났지만 고양이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동아리 지도교사인 송한별 선생님의 도움으로 동물권 단체와 함께 길고양이 지도를 만들고 현황을 조사했다. 몇 차례 현장 조사를 한 후 지자체 동물복지조례도 찾아봤다. 재개발 상황을 대비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7월8일 뚱아리와 묘한건축사무소 회원들은 구의회를 방문할 예정이다. 원태근 동구의회 부의장(국민의힘), 장수진 구의원(더불어민주당)과 면담을 잡았다. “공사가 시작되면 고양이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공사 전에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구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랑, 고양이들이 살던 곳을 떠나서도 안전하게 지낼 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거예요(이정인).” 아이들은 길고양이 이주 문제를 통해 일상에서 정치의 필요와 쓸모를 배우는 중이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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