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일인칭에 가두지 마라

한겨레 2024. 7.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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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벗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농담조로 나를 일러 '흙수저' 출신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에게는 가난의 생채기가 없다는 걸 알기에 하는 소리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만 가난하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이 다 가난했다.

왜 선생님은 굳이 학생들 있는 자리에서 교무실 와서 우유 받아 가라며 번호를 불렀을까?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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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특정 음식은 높은 계급정체성의 표식이자, 우월한 심미적 기호와 연결된다. 반대로 하층 계급의 빈곤상태를 나타내는 음식들도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일인칭 가난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안온 지음 l 마티(2023)

친한 벗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농담조로 나를 일러 ‘흙수저’ 출신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에게는 가난의 생채기가 없다는 걸 알기에 하는 소리다. 이 나라의 가난한 소도시만 전전해온 신산했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만 가난하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이 다 가난했다. 가난의 평등은 가난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해주었다.

이런 사실을 새삼 안온의 ‘일인칭 가난’을 읽으며 깨달았다. 1997년생에게 가난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중산층의 성채가 견고히 쌓였을 때다. 가난한 삶이 적었고 도드라졌고 그래서 상처투성이였다. 왜 선생님은 굳이 학생들 있는 자리에서 교무실 와서 우유 받아 가라며 번호를 불렀을까?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다. 이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은 늘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지은이는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아버지가 진짜 눈이 안 보이는지, 어머니가 교통사고 탓에 정규직으로 일을 못 하는지 늘 확인당했다. 심지어 지원받은 쌀은 진짜 가족이 먹었는지, 이 집에 사는 게 맞는지 되풀이해서 물었다고 한다. 그때 느꼈을 모욕감은 말해 무엇하랴.

드라마 뺨치는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양가 어른들은 부유했다. 할아버지가 통 큰 선물을 주어 가난한 집이지만 피아노가 있었다. 콩쿠르에 나가 입상도 했다. 어느날 학교 갔다 돌아오니 피아노가 사라졌다. 자세히 보니 텔레비전도 카세트도 없어졌다. 아버지가 외상값 밀린 술집에서 패악까지 부렸으니, 어디에 쓰였는지 뻔하다. 그렇게 가난은 한 어린 영혼의 가능성을 말라비틀어지게 한다.

다행히 공부가 가성비 좋은 행위였단다. 타고난 암기력 덕에 성적도 좋았고, 공부할 적에 가난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단다. 어머니한테 간헐적으로 학원비를 받으며 노력한 끝에 국립대학 국문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과외에 알바에 학원 선생 일로 지쳤다. 공부할 절대 시간이 없으니, 장학금도 놓칠 뻔했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항상적 과로’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도 알코올 의존증과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가쪽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부산 출신인데도 대구로 대학을 간 데는 아버지를 버리고 싶은 심정도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들으며 대성통곡한다. 다 잘못했으니, 전화는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삶의 이력을 토로한다. 할머니가 자살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고, 아버지도 자살했다. 자신도 자꾸 자살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안 죽고 싶다고도 했다. 가족한테 물려받은 게 고작 ‘자살 디엔에이(DNA)’라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순간, 읽는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학교에서 무료 10회 상담을 받은 지은이에게 센터 직원은 “고생했어요”라고 답해주었다. 나도 지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가난을 1인칭으로 만들어버리면 이들 삶을 바꿀 기회가 봉쇄된다. 20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산 청년은 백석을 사랑하는 문학박사의 꿈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학원강사가 되었다. 가난은 3인칭,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삼아야 한다.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공동체는 왜 존립해야 하는 것일까?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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