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 위한 글이 또 만회를 요청하여…멈추지 못한다 [책&생각]
1981년 첫 소설이자 등단작에서
첫 창작집까지 6년 걸린 ‘행운’
시인 지망하다 운명적 전환
1981년에 소설가가 되었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에 쓴 소설로 신인상을 받았다.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그 소설이다. 그해 5월에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저격당했고,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휴학 중인 신학생은 ‘문학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자극을 받았고, 후속 보도를 찾아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충동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두어 달 만에 300장이 넘는 분량의 소설을 완성해 ‘한국문학’에 응모했는데, 운이 좋아 당선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은, 그 작품이 내가 쓴 첫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꾸준히 시를 썼고, 신춘문예에 응모도 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내 시는 신춘문예는커녕 대학신문사에서 주관하는 교내 문학상 본심에도 오르지 못했다. 연극에 빠져 지내던 몇 년 동안은 희곡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내 마음이 ‘소설쯤이야…’였는지, ‘소설은 차마…’였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는 건 확실하다. 주제가 작가를 찾아온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소재가 문학 양식을 결정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로마에서 날아온 그 사건은 내게 소설을 쓰라고 주문했고 나는 그에 따랐다. 쉽게 쓴 것은 아니지만, 글이 막히는 자리에서 웬만큼 궁굴리다 보면 신통하게 길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행운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 작품 말고 써둔 소설이 없었고, 습작의 경험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어찌어찌 소설가가 되었지만, 다음 작품을 발표하는 순간 실력 없음이 들통날 수 있었다. 그런데 행운이 한 번 더 찾아왔다. 내가 휴학을 한 것은 병무청의 신체검사에서 폐결핵을 진단받아 입대가 미뤄졌기 때문인데, 이듬해 재검에서 완치 통보를 받아 입대하게 된 것이다. 군대 기간을 포함하여 3년여의 기간 동안 나는 비로소 소설 공부를 했다. 뒤늦은 습작기였던 셈이다.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첫 창작집 ‘구평목씨의 바퀴벌레’가 1987년 문학사상사에서 나왔는데, 데뷔작을 포함해 그때까지 쓴 모든 작품을 수록했다. 거기에는 군대 가기 전에 발표한 소설도 한 편 포함되어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청탁을 받고 쓴 그 소설은, 그러나 2007년 다시 펴낸 개정판에는 들어 있지 않다.
작가들의 첫 소설집들을 다시 펴내기로 기획한 ‘책세상’ 출판사의 ‘소설 르네상스’ 시리즈를 위해 20년이 지나 첫 창작집을 다시 읽은 나는 복잡한 심사에 사로잡혔다. 복간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작가의 말’에 고백한 대로, “교정을 보면서 헐어낸 다음 다시 쌓고 싶은 욕구와 싸우느라 힘들었”다. 그 소설들에는 20대의 나와 1980년대의 대한민국이 들어 있으니, 그 시대와 나의 시절이 그러하였으니, 헐고 다시 쌓는 대신 보존해 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로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물리치지 못한 것이 있다. 군대 가기 전에 쓴, 습작기 이전의 소설 한 편을 포함해서 두 편의 소설을 제외시킨 것이다. 후회라고 할 수는 없는, 민망한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제외시켜야 할 소설이 어찌 그 두 편뿐이란 말이냐,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 이의제기에 대해 나는 항의하지 못한다.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 목소리는 그때만 들린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낼 때마다 이 까다로운 독자는 내 안의 염치를 자극한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목소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작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책상에 앉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목소리가 꾸준히 쓰게 하는 동력인 셈이다. 만회를 위해 쓴 글이 다시 만회해야 할 글이 되니 글쓰기가 ‘꾸준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것은, 그렇게 쓰인 글들이 만회할 필요가 없는 수준을 여태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이 동력을 한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가
그리고 다음 책들
생의 이면
프랑스에 번역 소개된 내 소설들 가운데 6편을 꼼꼼히 읽고 한 권의 책(‘다나이데스의 물통’, 문학과지성사)을 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는 내 소설 작업의 중심에 ‘생의 이면’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1980년대 20대가 끝날 무렵 나는 내 문학에 위기를 느꼈고, 수렁에 빠질 각오와 함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했다. ‘드러내기, 그러나 감추면서’가 유일한 전략이었다. 다행히 이 소설을 타고 새로운 시대, 시절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문이당(1996)
캉탕
장년이 되어 쓴 ‘생의 이면’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엑상프로방스에서 1년간 연구년으로 있는 동안 이 소설을 썼다. 나는 ‘걷고 읽고 쓴다’는 계획만 가지고 낯선 곳으로 갔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의미를 모르는 언어들이 부유하는 낡은 거리들을 산책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애써 피해온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나’와 마주치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세상의 끝’이라는 깨달음이 이 소설을 쓰게 했다.
현대문학(2019)
식물들의 사생활
전업 작가 시절, 한 선배가 말했다. 마흔 살까지는 글만 쓰며 살 수 있는지 실험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마흔 살이 되면 결정을 해야 한다. 마흔 살을 앞둔 가장이었던 나는 초조해졌고, 마지막 실험을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중을 의식하며 소설을 썼다. 문학적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고 기억된다. 그러나 전업 작가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취직을 해야 했다. 이 소설은 그 시절의 나를 생각나게 한다.
문학동네(2000)
지상의 노래
같은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장년이 되어 쓴 ‘식물들의 사생활’이라고 할까. 개인의 내면에 웅크린 욕망과 개인을 조소하는, 정치로 대표되는 외부 구조,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초월적 요소의 요청이 두 소설의 공통적 기반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저 소설을 만회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민음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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