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광장] 무기력의 시대, 정치가 바꿔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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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실패의 두려움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무기력함'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전부인 시대는 지나갔다.
더불어 산업화를 거치며 형성된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인식 체계를 바꿔야 한다.
지금도 독자의 일상을 함께하는 AI가 희망이 되려면, 우리 사회가 함께 기술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변화의 공감대를 모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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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실패의 두려움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무기력함’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무기력증이 일상화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지표가 나왔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달 일을 하지도, 일을 구하지도 않고 ‘그냥 쉰’ 2030 구직단념 청년이 66만 5000명이라고 발표했다. 5월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66만 5000명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이 11만 7000명이다. 수도권 대학생 전체의 5~6배에 달하는 청년들이 구직을 포기하고 쉰다는 뜻이다. 구직단념 청년의 증가는 정책 담당자들의 뼈저린 반성을 요구한다. 개인으로서는 청년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삶에 빠지도록 만든다. 사회적으로는 양질의 인적자본 축적을 어렵게 한다. 이는 결국 국가의 경제성장률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 등 다른 국가들을 보면 청년의 무기력, 불만을 토양 삼아 사회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자라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정부와 지자체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은 쏟아진다. 문제는 철학에 있다. 인간 노동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 특히 청년의 인식 변화를 정책 당국이 면밀하게 포착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전부인 시대는 지나갔다. 한 인간이 어떤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동기와 목적이 ‘밤하늘의 별만큼’ 다양해졌다. 과거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일정 나이에 맞춰 가정을 꾸리고, 가장으로서 부양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 버티는 시대는 끝났다. 미세화된 자아실현의 욕망과 욕구, 높아지는 근로 조건에 대한 의식은 더욱 정교한 고용·노동정책을 요구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혁명이 시작됐다. 챗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등장이 비즈니스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작년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LLM이 더 보급될수록 세계적으로 3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카이스트가 올해 내놓은 ‘2024 미래전략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로봇 밀집도가 다른 국가들보다 높아 3·4차 일자리 감소가 다른 나라들보다 빠를 것이며,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의무가 있는 정치인들에게 AI 혁명과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다. 인류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혁명이 이뤄지면 감소하는 일자리 규모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정치는 이러한 기회의 장을 활짝 열어젖히되, 산업 변화에 따라 소외되는 이들을 보호하고 재교육 투자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파도가 들이치면 올라타야 살 수 있다. AI 혁명의 파고는 피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동 양극화 해소, 디지털 교육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불어 산업화를 거치며 형성된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인식 체계를 바꿔야 한다. 여전히 우리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권에 포진한다. 노동시간과 총량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은 산업화 시대에나 주효하다.
경쟁압력이 높은 대한민국 수도의 시의원으로서, 저성장과 저출생 시대에 시장의 역동성과 활력이 크게 떨어짐을 체감한다. 지금도 독자의 일상을 함께하는 AI가 희망이 되려면, 우리 사회가 함께 기술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변화의 공감대를 모아 가야 할 것이다.
전병주 서울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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