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수요 해외의존 갈수록 심화…식량안보 확보 ‘발등에 불’
기후변화·전쟁 등 불확실성 확산
곡물가격 변동 심해 수입국 위협
곡물자급률 22%…계속 악화돼
쌀 제외한 자급률 한자릿수 고전
우리나라 세계식량안보지수 39위
OECD 최하위…안보전략평가 ‘0’
수출국 영향력 행사 땐 위기 직면
日·中 국가안보 인식 관련법 보강
안정적 공급 시스템 구축 나서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5개 국제기구는 최근 ‘2023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현황’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세계에서 기아로 고통받는 인구가 7억3500만명으로 추산됐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인 2019년에 비해 1억2200만명이 증가한 수치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확량 감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발생하며 식량과 원자재의 가격 변동성은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식량안보 취약 국가나 계층은 더욱 위태로워져 전세계 인구 약 30%인 24억명이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다.
식량안보는 재난·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해 적정한 수준의 식량을 항상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안보는 개별 국가 입장에 따라 초점이 달라진다. 빈곤국은 기아 해방, 식량을 수출하는 선진국은 자국 저소득층의 식량 접근성을 향상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식량 수입국은 식량자급률을 유지·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식량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식량 생산 기반을 유지해 국제 수출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는 연간 국내 곡물 수요량 2300만t 가운데 18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7대 식량 수입국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료용을 제외한 국내 식량자급률은 49.3%,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2.3%다. 쌀 자급률은 100%를 넘지만, 밀·옥수수·콩의 곡물자급률은 각각 0.7%, 0.8%, 7.7%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을 기점으로 계속 악화하는 추세다.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원인은 농경지 감소, 육류·가공식품 위주의 소비 패턴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물 부족, 농업인력 고령화문제 등이 심각해지며 경지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51만2000㏊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1.24% 감소했다. 1인당 60㎏을 넘은 육류 소비량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사료용 곡물 수입은 더욱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식량을 둘러싼 최근 국제 정세는 우리나라 같은 식량 수입국에 더욱 위협을 가한다. 공급량 부족에 기인한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푸드체인 붕괴로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 중단·제한 조치 등을 선언하며 식량민족주의(food nationalism)가 재가열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식량 수입국은 자본이 있어도 충분한 식량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러·우 전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허용했던 ‘흑해곡물협정’을 지난해 7월 종료하면서 세계 5위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통로가 막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곡물에 의존도가 높았던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의 식량수급이 어려워지며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지역간 분쟁이 빈번해지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원유와 곡물 등의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은 더욱 확대됐다.
최근 영국 경제분석지 ‘이코노미스트 임팩트’가 발표한 ‘2022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13개 국가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다. 2021년 대비 7단계 하락한 순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며 일본(6위)·중국(25위)에 비해서도 식량안보 경쟁력이 낮다. 특히 식량안보 전략에 대한 평가에서 0점을 받아 국가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일본과 중국은 식량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한다. 일본은 5월 식량안보 확보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식료·농업·농촌 기본법’ 개정을 단행했고, 중국은 식량자급률 목표(곡물 95% 이상, 식용 곡물 100%)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취지로 ‘식량안보보장법’을 제정해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식량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안보 차원으로 식량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식량 수출국은 식량을 무기 삼아 수입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이에 대응하지 못한 식량 수입국은 곡물 부족과 물가 폭등으로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곤 했다. 우리나라도 1980년 쌀 생산량 급감으로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경험이 있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식량안보 확보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이를 기반으로 비상시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식량안보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자급률이 낮은 기초곡물 생산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2020년 ‘제1차(2021∼2025년)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세우고, 제2의 주곡인 밀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025년까지 밀 자급률 5%(재배면적 3만㏊, 생산량 12만t)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산 밀 판로 확보문제 등으로 재배면적이 오히려 감소해 올해 자급률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인 자급률 목표 설정과 실효성 있는 우리 밀 판로 확보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식량 위기 때 완충 역할을 수행하도록 탄력적인 공급과 비축 물량 확대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하지만 170여개 국가에서 식량을 탄력적으로 들여오고 ‘국외 생산(growing overseas)’ 전략을 통해 식량 위기에 대응한다. 연간 450만t의 밀과 1160만t의 옥수수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역시 지정학적 위기를 고려해 수입선 다변화, 효율적인 해외 곡물 유통사업 참여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
비축의 경우 2013년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공공비축 대상을 쌀에서 밀·콩 등으로 확대했지만 밀·콩의 재고율은 8∼14% 수준에 불과하다. FAO가 권장하는 곡물 재고율 17∼18%(연간 소비량의 2개월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최소 6개월분의 식량 비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식량안보와 수급안정을 위해 국산 곡물의 비축 매입량을 확대하고 식량 공공비축을 위한 물류·저장 시설 등의 전략 비축기지 조성사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와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범부처 차원에서 체계적인 식량안보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최영운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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