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고 자는 아내 모습에 눈 뒤집어진 남편…"그놈 짓" 살인극
열대야에 속옷만 입었는데 성폭행 오해, 만취 상태서 엉뚱한 보복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월요일이었던 2022년 7월 11일은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가는 등 전국이 찜통더위를 보였다. 11일 밤에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12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런 더위와 동료들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해 취한 결과, 20여 년간 형 동생 하던 사이가 한 사람은 살인자, 또 한 사람은 피해자로 갈라서게 했다.
◇ "내가 사람을 죽였다"…섬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2022년 7월 12일 새벽 1시 무렵 인천광역시 중구와 동구, 옹진군을 관할하는 인천중부경찰서 112상황실에는 '살인사건' 경보가 울렸다.
인천시 옹진군 대청면의 공무원 A 씨(49)가 "내가 동료를 죽였다"며 112신고를 한 것.
이보다 몇 분 전 A 씨는 119에 "사람이 죽어간다"고 신고했다. 119는 급히 구급 차량편으로 흉기에 찔린 B 씨(52세)를 보건지소로 옮겼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이 소식은 백령도 남쪽에 위치한 인구 1400여명의 대청도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다.
◇ 친목 다지자며 부부 동반 모임…1차 뒤 "우리 집 가서 한 잔 더"가 결국 7월 11일 저녁, 대청면사무소 공무원인 A 씨와 B 씨는 친목을 다지자며 가까운 이들과 고깃집에서 식사 모임을 했다.
B 씨를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은 모두 부부 동반으로 나와 식사와 함께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A 씨는 "우리 집으로 가 한 잔 더 하자"며 일행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행들은 A 씨 집 거실에서 술상을 펼쳐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정이 다가올 무렵, '내일 봅시다'는 인사와 함께 각자 집으로 갔다.
◇ "여보 다들 갔어" 안방 문 열고 들어가자 옷 벗고 자는 아내 모습…눈 뒤집어져
일행을 보낸 A 씨는 늦은 밤까지 술자리가 이어진 것을 미안해하면서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A 씨 눈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아내가 옷을 벗은 채 누워있었고 이부자리도 어지럽혀져 있었기 때문.
아내는 열대야에 힘들어하다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잠자리에 들었고 더위에 이부자리를 걷어찬 것이었지만 A 씨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혼자 온 B가 우리 집사람을 덮쳤다. 그놈 짓이다"며 분노에 휩싸였다.
◇ 만취 상태로 피해자 집까지 음주 운전, 다짜고짜 찔러…쓰러지자 발로 차
아내를 깨워 자초지종을 알아볼 생각조차 못 한 A 씨는 만취 상태에서 자신의 차를 몰고 4㎞가량 떨어진 B 씨 집으로 갔다.
(자수한 A 씨를 상대로 경찰이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는 0.150%였다.)
A 씨는 "야 나와"라며 B 씨를 불러냈다. 막 잠이 들려던 B 씨는 후배 공무원의 외침에 집 앞으로 나갔다가 다짜고짜 휘두른 A 씨의 흉기에 찔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A 씨는 쓰러진 B 씨를 발로 차기까지 했다.
그때가 2022년 7월 12일 0시 5분쯤이었다.
◇ 아내 "그런 사실 없다" 남편 "술에 취해 내 정신이…" 후회했지만 때는
수사에 나선 경찰은 A 씨의 아내를 불러 "혹시"라고 물었다. A 씨의 아내는 성폭행당한 적도, 누가 방에 들어온 적도 없다며 어이없어했다.
술에서 깬 A 씨는 "술에 의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김에 오해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오열했다.
◇ 영장심사 나온 A 씨 "죄송하다" 고개만…1심, 징역 24년 구형에 15년형
7월 14일 오후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법에 나온 A 씨는 쏟아지는 질문에 "죄송하다"며 고개만 숙였을 뿐,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등의 물음에 답을 피했다.
A 씨를 살인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자수했지만 피해자가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징역 24년을 구형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이규훈 부장판사)는 2022년 12월 1일 살인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 항소심 징역 10년형으로 감형…피해자 유족과 합의 등 감안
A 씨는 형량이 많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A 씨는 B 씨 유족과 합의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23년 3월 31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는 "범행 수법이 잔인해 엄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 범행 후 자수한 점 △ 피해자 유족과 합의한 점 △ 유족 측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징역 10년형으로 감형했다.
A 씨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2032년 7월 13일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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