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들이 날 왕따 시켜"…쇠파이프로 교도관 살해한 수형자[뉴스속오늘]

채태병 기자 2024. 7.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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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했던 옛 영등포교도소 내부 독방의 모습. /2014.04.03. /뉴스1

20년 전인 2004년 7월 12일 오전 10시40분쯤 대전 유성구에 있는 대전교도소 17동 거실에서 40대 남성 수형자 김모씨가 교도관 A씨(7급 교위)를 쇠파이프로 마구 구타했다.

피해자 A씨는 뒷머리와 목 부분에 심한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A씨는 결국 3일 뒤 병상에서 숨졌다.

가해자 김씨는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A씨와 만나 면담을 진행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1997년 9월 상해치사 등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그는 복역 중 다른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징역 2년이 추가됐다.

김씨는 평소에도 다른 재소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교도관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소 삽화. /사진=뉴스1


둔기 폭행을 저지른 김씨는 대전교도소의 사건 조사에서 묵비권 행사로 일관했다. 현장 CCTV를 확인한 교도소 측은 "면담부를 정리하던 고인을 (뒤에서) 김씨가 갑자기 쇠파이프로 무차별 폭행했다"고 밝혔다.

고인 A씨의 응급치료를 맡았던 건양대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언론에 "피해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며 "X선 촬영에 나타났던 피해자 두개골과 목 부위 상처는 (보기에) 처참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김씨는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입을 열었다.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에 따르면 김씨는 인권위원회 제소를 위해 신청한 면담이 지연된 것에 불만을 품고 A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검찰에 "독방 생활 중이라 대필 교도관을 직접 접견할 수 없어, A씨에게 여러 차례 (대필 교도관) 면담을 요청했다"며 "이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홧김에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범행 둔기에 대해선 "빨래를 널다가 우연히 주웠고, 나중에 쥐 잡을 때 쓰려고 빨래 안에 숨겨 몰래 보관해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살해 방법이 잔인하고, 둔기를 미리 준비한 점 등을 고려해 김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교도소 관련 이미지. /사진=뉴시스


2005년 1월 대전지법에서 열린 김씨 재판에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이어 2005년 2월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 구형을 받아들여 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006년 4월 대전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김씨는 상고까지 했으나 2006년 9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교도관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기망, 가혹 행위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김씨는 교도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인권위원회 제소를 준비 중이었는데, 소멸시효 만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고인 A씨가 사건을 빨리 처리해 주지 않는다고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씨가 범행 당시 피해자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해 둔기로 폭행했다"며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 또는 위험성이 있음을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씨는 원주교도소로 이감돼 복역했고,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14년에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머니투데이DB


A씨가 숨진 지 이틀 후인 2004년 7월 17일, 대전교도소에서는 고인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지방교정청장(葬)으로 거행된 이날 영결식에는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 강귀근 당시 대전지방교정청장 등 1500여명이 함께했다. 고인은 7급 교위에서 6급 교감으로 1계급 추서됐다.

대전교도소 교도관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의 교정직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은 분노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고인의 동료들은 △교정 직원들의 생명권 보장 장치 마련 △극성 수형자에 대한 엄격한 징벌 제도 도입 △교정 인력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A씨를 비극적으로 떠나보낸 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잇따랐다.

2004년 8월 청송교도소 교도관이 60대 재소자에게 폭행당해 중상을 입었다. 2005년 4월엔 의정부교도소에서 교도관이 30대 재소자 2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고, 같은 해 7월 부산교도소에선 20대 재소자가 교도관을 때렸다.

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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