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옆 최익현 순국비, 정육점 뒷마당의 조선인 귀무덤...쓰시마섬의 쓸쓸한 한국유산
창고에 숨겼거나 방치되는 한국 유물들
2012년 절도 사건으로 한국인 접근 통제
2년 전 박물관 개관...폐쇄적 운영 우려
#1. 대한해협 가운데에 있는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의 사찰 '슈젠지(수선사·修善寺)'. 조선 말 위정척사운동을 펼친 지사 면암 최익현(1833~1906)의 순국비가 있다. '대한국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大韓國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란 글이 새겨져 있는 역사적 유산이지만, 방치돼 있다. 한국일보가 얼마 전 슈젠지를 둘러보니 관리가 엉망이었다. 개똥으로 보이는 오물이 순국비 바로 앞에 묻어 있었고, 키가 사람 허리만 한 잡초, 거미줄, 방치된 손수레 등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뒤숭숭한 가운데 "뜻을 잊지 않겠다"고 쓴 빛바랜 한글 편지가 사찰 제단에 놓여 있었다.
#2.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 일본인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잘라 전리품으로 가지고 갔다.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은 일본 전역에서 6개가 발견됐다. 2014년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가 찾아낸 쓰시마섬의 귀무덤 역시 방치돼 있었다. 무덤은 섬 북쪽의 한 정육점 뒷마당에 있다. 수풀이 무성한 마당엔 앙상한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 쌓여 있는 돌무덤이 귀무덤이다. 동행한 김 명예교수는 "문헌에 따르면 이곳에 조선인 8,500명의 귀가 묻혀 있는데, 사유지이다 보니 비석도 없다"고 말했다.
초고령화 쓰시마, 한국 유래 유물 사각지대
쓰시마섬은 부산에서 직선거리가 49.5km로 가까워서 한반도와 교류가 활발했다. 국외 문화유산 환수운동을 하는 문화유산회복재단의 실태조사에 동행해 둘러본 쓰시마섬은 '한국박물관'이라는 별명처럼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한국 유물과 흔적이 있었다. 사찰이나 신사에선 삼국시대와 고려 때의 불상을 모시고 있고, 쓰시마 번주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덕혜옹주, 조선이 200여 년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조선통신사들과 관련한 역사적 장소들이 있다.
불교미술사학자인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의 2013년 논문 '서일본지역의 고려불상과 부석사 동조관음보살좌상'에 따르면, 쓰시마를 포함하는 서일본지역의 불상들은 매매, 기증, 약탈 등 다양한 경로를 거쳤다. 모두 '불법 반출 유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유입 경위나 내력이 알려진 건 극소수다. 소장자, 소재지, 시대 등의 정보가 명확한 한국 유물은 140여 점. 미공개 개인 소장품까지 고려하면 규모는 훨씬 크다. 일본 규슈대학의 쓰시마섬 유물 조사 결과를 담은 책 '쓰시마의 미술(1978)'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불상만 87점이다.
그러나 한국 유산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초고령화와 인구 절벽의 영향으로 인한 인력 부족이 결정적 이유다. 1980년 5만810명이던 쓰시마 인구는 2020년 2만8,502명으로 줄었다. 노년 인구 비율은 38.6%에 이른다. 문제는 유산 절도 사건이 발생한 곳을 비롯한 위험 지역에도 후속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2012년 불상 절도 사건으로 꽁꽁 잠긴 유물 창고
2012년 사찰 가이진신사(해신신사·海神神社)와 간논지(관음사·観音寺)에선 한국인 절도범들이 허술한 경비를 틈타 통일신라 동조여래입상(일본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과 고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훔쳐 한국에 들여왔다. 그러나 가이진신사는 여전히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매점 문도 닫혀 있었다. 낡은 신사 건물과 대비되는 현대식 철문과 폐쇄회로(CC)TV 두 대만이 중요 유물이 소장된 곳이라는 걸 알렸다. '미네마치 고향 보물관'이라 적힌 안내판에는 2015년 반환된 동조여래입상, 고려청자 등이 적혀 있지만, 실제 이곳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7년간의 소송전 끝에 지난해 소유권이 다시 간논지로 넘어갔다.
절도 사건 이후 쓰시마 주민들은 한국 유물을 꽁꽁 숨겼다. 한국인 경계 분위기도 상당하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찰 세이잔지(서산사·西山寺)는 입구에 "숙박 손님 외에는 출입을 삼가달라"는 안내를 한글로만 써놨다. 이 사찰에는 고려 대일여래좌상, 여래형좌상, 여신입상과 조선통신사 김성일의 시비가 있다. 문화유산회복재단과 동행한 조계종 강화도 선원사 주지 성원스님도 폐쇄적 출입 제한 때문에 유물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 많은 쓰시마섬의 한국 유물은 어디로 갔을까
지역 유물을 관리하고 한국과 일본의 우호를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2022년 쓰시마박물관이 뒤늦게 개관했다. 현재 소장품은 약 12만 점. 상당수가 지역의 신사나 사찰, 주민에게 기증·기탁받은 것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수장고에 있는 간논지 불상도 이 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박물관 윤리강령을 적용받는 박물관이 유물을 관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고려 금동여래좌상과 향로, 13세기 고려청자 벼루 등 극소수의 한국 유물만 전시돼 있었다. 일본 국가지정문화재인 고려시대 청동 금고(쇠북) 등 수장고에 있는 대다수 유물은 소유자 승인을 받아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우호라는 설립 명분이 무색하게 전시된 유물의 설명도 대개 일본어로만 제공되고 있었다. 히로세 유이치 부산대 박물관 특별연구원은 "설립 취지에 맞게 한국어 설명을 병기하고 유물 열람 기회를 늘리는 등 더욱 개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간 한국 유물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것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1985년 쓰시마 내 불상 학술조사를 진행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가이진신사의 불상 등 쓰시마섬의 일부 불상은 한국의 국보나 보물급 가치가 있다"며 "유물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 해도 학계가 꾸준하게 연구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시마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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