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축사가 예술혼 깨우는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
〈1〉 경기 수원 ‘푸른지대창작샘터’
서울대 농대 이전하면서 남은 건물… 시각예술인 창작 작업실로 재단장
현역 작가 13명 입주해 작품 활동… 전시-체험 행사로 시민과 호흡도
공간에는 생명력이 있다.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생활하는 모든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이뤄진다. 공간 복지는 집 근처 생활과 밀접한 사회간접자본을 만들어 주민들이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복지 정책이다. 동아일보는 차별화된 생활 밀착형 공간으로 거듭난 국내 및 해외 우수 사례를 발굴해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탑동시민농장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검붉은 벽돌의 단층 건물 한 동.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녹물이 흘러내린 듯한 벽면 여기저기에는 낡고 오래된 세월의 때가 묻어있었다. 건물 앞에는 어림잡아 4, 5m는 됨 직한 파란색 사료 탑 하나가 장승처럼 떡하니 서 있다. 안내판에는 ‘숲속의 등대’라는 이름과 함께 ‘가축의 사료 탑을 재활용해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다.
이곳은 시각예술 분야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인 수원 아트 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다. 1980년대부터 서울대 농대의 실험 목장 축사로 사용하던 곳인데, 창작샘터 곳곳에는 사료 탑 같은 오래된 철제 구조물이나 여물통 등이 아직도 남아 있어 건물의 역사를 느끼게 한다.
● 축사가 예술 창작 공간으로
외관을 둘러보고 창작샘터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외관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벽을 지탱하고 있는 오래된 시멘트 기둥은 건물이 견뎌온 세월을 짐작하게 해준다.
사무실과 회의실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작가들의 개인 작업 공간이 있다. 축사 내부(1890m²)를 철거하고 생긴 공간 일부에 37.7∼62.3m²의 작업실 15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돼 있어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작업 공간과 맞닿은 ‘오픈 스페이스’는 전시나 체험 활동을 주로 하는 공간인데, 전체가 하나로 넓게 트여 있다. 한쪽 가장자리에 시멘트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듯한 길이 10m 정도의 여물통이 있다. 생뚱맞아 보이기는 해도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바닥에는 여러 목적의 공간을 하나로 이어 붙인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 구조물도 예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천장 가운데 새로 낸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공간 전체에 아늑함을 안겨준다. 장솔이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는 “작업 공간과 전시 공간 곳곳에 예전 축사로 사용했던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다”며 “시설 자체가 깔끔하고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라 작가들도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교육, 전시 등 시민들과 호흡
현재 창작샘터에는 13명의 현역 작가가 입주해 있다. 회화,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등 장르도 다양하다. 2020년부터 해마다 공모를 통해 입주 작가를 모집하는데 올해가 4번째 기수다. 입소문을 타면서 경쟁률이 약 2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작가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문화예술 갈증도 풀어준다. 1년에 한 번 창작샘터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데, 작가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엿볼 좋은 기회다. 전시도 하고 예술 교육, 체험 행사를 열어 시민들과 호흡한다.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3, 4기에 참여한 최은철 작가는 “창작 공간을 감싸안고 있는 녹지가 작가에게 무한한 영감과 편안한 쉼을 안겨 준다”며 “좋은 작가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주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오래된 축사가 시각예술 작가들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됐다”며 “해마다 훌륭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수원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수원=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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