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영향에 추상화가로…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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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셨어요. 제겐 일상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아들 파트리스의 기억이다.
드브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추상 회화가 많이 그려졌을 때 서정적인 추상으로 사랑받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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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후 유럽서 추상화 늘어
드브레, 서정적 추상으로 유명
“아버지와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셨어요. 제겐 일상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아들 파트리스의 기억이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드브레의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개막을 맞아 9일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에선 프랑스 투르의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소장품과 드브레의 자녀들이 소장한 회화, 드로잉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서는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장에서 보이는 1940년대 흑백 드로잉들은 감각적인 선과 초현실주의적 표현에서 피카소의 영향이 드러난다. 특히 이 시기 드브레는 전쟁 때문에 투렌 지방에서 홀로 지냈다.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1946년),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1946년) 같은 작품은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 그로 인한 공포를 고발한다. 드브레의 형 미셸 드브레는 이 무렵 샤를 드골과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는데, 이후 드골 정부 총리로 임명된다. 파트리스는 “저의 증조부도 19세기 풍경화와 인물을 그린 화가였고, 할아버지는 국내외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며 “저도 의사지만 늘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아버지 덕분에 회화에 심취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끝나고 드브레는 서예처럼 선으로 인간을 표현한 ‘기호 인물’ 연작부터 풍경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폭풍우 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년) 등 추상 회화로 더 나아간다. 특히 프랑스 투르 지역 루아르 강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유명하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 3점은 완전히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천장에 매달려 전시돼 눈길을 끈다. 드브레가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을 맡아 1997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초연한 공연 ‘사인’ 영상도 마지막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한 작가는 한국도 여러 번 찾았으며, 에콜 데 보자르 교수를 지내 파리로 유학 온 한국인 제자도 여럿 있었다. 파트리스는 “아버지가 한국의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풍경과 한글, 기호에 흥미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
수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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