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들 ‘트럼프 시대 방어막’ 구축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7. 1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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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체제 강화 ‘워싱턴 선언’ 채택
우크라 지원 못 박고 북·중·러 규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및 파트너국 정상 부부가 1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 행사 참석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창설 75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 DC에 모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들은 10일 발표한 공동성명 ‘워싱턴 정상회의 선언’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내년에 최소 400억유로(약 60조원) 규모의 군사 장비·훈련을 제공하기로 했다. 성명은 아울러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규탄하고, 중국의 러시아 지원 중단을 요청했다. 나토가 공식 성명을 통해 중국을 직접 규탄한 것은 처음이다.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회동한 정상들은 트럼프가 재선하더라도 공고한 동맹 체제가 유지되도록 하는 대비책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나토 정상들이 ‘트럼프 방어책(Trump-proof)’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분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귀환에도 동맹이 흔들리지 않도록, 내년 이후 수년에 걸쳐 수행할 나토 국가들 간 합의 및 제도를 미리 정비했다는 것이다. 중국 규탄은 트럼프의 적나라한 반중(反中) 기조와도 일치한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IP4(인도·태평양 4국)’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IP4 정상들은 11일 공동성명을 통해 북·러 간 불법적 군사 협력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래픽=박상훈

나토 회원 32국 정상은 회의 이틀째인 10일 38조로 이뤄진 공동성명을 통해 “강력하고 민주적인 우크라이나는 유럽·대서양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필수”라며 “회원국들의 비례적 기여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수준의 안보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또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 가입을 포함, 완전한 유로·대서양 통합을 향한 불가역적인 여정을 하는 데 계속 지원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회원국들이 ‘비례적 기여’를 하겠다고 한 것은 우크라이나 방위비 부담이 미국에 쏠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2017년부터 4년간 재임하는 동안 유럽·아시아 주요 동맹국들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대립하며 더 많은 비용을 대라고 압박했었다. 성명은 “도전받는 안보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분담하기로 한 방침을 재확인한다”고도 했다. WP는 “나토 회원국들은 국방 지출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통해 나토에 대한 트럼프의 가장 큰 분노 요인이었던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동성명은 나토 회원국들이 기증한 미국산 F-16 전투기가 이르면 올해 여름 출격을 목표로 우크라이나에 전달되기 시작했다고도 밝혔다.

나토 회원국들은 또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및 훈련 계획을 총괄할 별도 기구 ‘우크라를 위한 나토 안보 지원 및 훈련 기구(NSATU)’ 설립에 합의했다. 성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지속적인 토대에 올려놔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 트럼프가 집권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지원이 체계적으로 지속되도록 대비한 조치로 평가된다.

英 스타머와 우크라 젤렌스키 -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키어 스타머(왼쪽) 신임 영국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뉴스1

한편 미국과 독일은 10일 별도의 성명을 통해 2026년부터 독일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 등 러시아의 유럽권 세력 확장 도발에 대응하려는 조치다. 양국은 “미국은 2026년부터 독일에 다영역 태스크포스(TF) 장거리 화력 능력을 일시적으로 배치할 예정”이라며 “무기엔 SM-6, 토마호크 및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임기(2025~2028년) 이후에 이뤄질 유럽권 방위 전략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나토 정상들은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포탄 등 무기 수출을 강력히 규탄하고 북·러 관계 심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성명은 “북한과 이란은 군수품과 무인 항공기 등 러시아에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유럽·대서양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 북한의 포탄 및 탄도미사일 수출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성명은 총 3조를 중국 규탄과 우려 표명에 할애했다. 중국을 ‘러시아의 최대 조력자’라고 규정하고 “러시아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중국은 이른바 ‘무제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러시아의 방위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함으로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결정적인 조력자가 됐다. 이는 러시아가 이웃 국가와 유럽·대서양 안보에 가하는 위협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초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주요 수출국인 중국을 규탄하기를 꺼렸지만 중국의 러시아 전쟁 지원에 대한 증거를 미국이 제시했고, 결국 성명에 중국을 규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나토로서는 큰 변화”라고 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유럽연합(EU) 주재 중국 대표단은 입장문을 내고 “나토 공동성명은 냉전적 사고방식과 호전적 언사, 도발·거짓말·선동·먹칠로 가득 차 있다”며 “지금껏 어떤 한 당사자에게도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았고 이 중 용도 품목도 엄격히 통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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