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물에도 빛이 드니까… 절망의 뜻은 ‘희망 없음’이 아니랍니다

황지윤 기자 2024. 7. 1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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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진영의 신간 ‘쓰게 될 것’… 암 환자·모녀 등 개개인의 삶 투시
최진영은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그걸 알기 위해 계속 써야 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소설가 최진영(43)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2015년 출간된 소설 ‘구의 증명’(은행나무) 판매 관련이다. 죽은 연인을 먹는다는 그로테스크한 설정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인데 출간 당시엔 초판도 다 안 나갔다. 그러다 5년쯤 지나 판매에 속도가 붙더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누적 25만부가 팔려 ‘출판계 미스터리’로 불린다. 한 아이돌 멤버의 추천 때문이라는 설과 사춘기 정서를 건드렸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지난달 신작 소설집 ‘쓰게 될 것’(안온북스)을 낸 그를 서울역 근처에서 만났다.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0년을 목전에 두고 여느 때보다 왕성하게 쓴다. “초창기엔 나에게 소설이 너무 필요해서 썼다면, 2020년쯤부터 소설 쓰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데뷔 때보다 지금이 더 의욕적인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그는 “전주를 거쳐 서울에 왔고, 곧 부산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와야 한다”고 했다. 글 쓰는 양이 늘어난 만큼 불러주는 곳이 많아져 활동량도 덩달아 늘었다. “제 나이에 직장에 있다면 차장 정도 되지 않을까. 이때가 제일 일이 많지 않은가요?”

최진영의 소설은 깊은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어느 독자가 붙여준 ‘다크 진영’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그는 “우울감, 고독감, 고립감, 적당한 절망감이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라며 “그게 내 평소 성격”이라고 했다. 한없이 밑으로 꺼지는 식의 절망감은 아니다. “절망감에 젖어 있지만, 그것이 희망 없음이란 뜻은 아니에요.”

소설가 최진영이 서울역 인근 골목에서 신간 소설집 '쓰게 될 것'을 들어보였다. 북토크, 강연 등 행사로 전국 곳곳을 다니는 그는 "KTX에서 생각보다 글이 잘 써진다"며 웃었다. /김지호 기자

작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자 이번 소설집을 매듭짓는 단편 ‘홈 스위트 홈’이 그 정수를 보여준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나’는 시골의 폐가를 수리해 그곳에서 살기로 혹은 죽음을 맞이하기로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같은 문장을 곱씹게 된다. 소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이야기”이자 “질병권(잘 아플 권리)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평생을 아픈 채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게 삶이거든요. 회복이나 완치가 아니면 실패인 것처럼 치부하는 건 너무 얄팍해요.”

최진영이 판 검고 축축한 굴은 어디론가 향해 간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연결된 감각이 소설에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전쟁들이 있어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엄마와 딸을 그린 표제작 ‘쓰게 될 것’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다. 그의 작품 세계를 구분 짓는 분기점은 ‘구의 증명’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랑’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어른의 역할’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구의 증명' 초판(왼쪽)과 개정판. /은행나무

‘구의 증명’이 10~20대 독자에게 사랑받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소설가도 이 미스터리를 풀고 싶다. 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면 무조건 수락하는 이유다. “’너희 이거 왜 읽어?’ 물으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요. 물론 제가 쓴 작품 중에 가장 자극적이에요. 야한 장면도 나오고(웃음).” 그는 “순애보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감정이 청소년기의 정서와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말 제주로 이사한 그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바다, 세찬 바람, 계절마다 달라지는 새소리 등이 소설에 녹아든다”고 했다. 주로 겨울에 장편 작업을 하는 그는 올겨울 새 장편을 쓸 계획이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랑하는 마음 그다음을 자꾸만 보고 있어요.” 사랑 다음을 쓰려는 최진영은 또 다른 능선을 넘어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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